[퀴네필 스타터 팩 08]
영화 델마(Thelma, 2017)는 눈 쌓인 숲에 사냥을 나간 부녀의 모습을 비추며 시작한다. 아버지는 사슴을 보고 있는 어린 딸의 뒤통수에 총구를 겨누다가 거두는데, 아이는 그 이후로도 한동안 아버지의 속내를 알아차리지 못한 채 성장한다. 다음 장면에서 카메라는 대학생이 되어 도시에 온 델마를 주시한다. 성인이 된 아이는 부모를 떠나 삶의 주체가 되기 위해 현실에 발을 내딛는다. 그러나 부모와 매일 통화하며 수강할 과목까지 간섭 받는 델마는 아직 자신의 삶에 제대로 진입하지 못한 듯이 보인다.
학교에서 델마는 아냐를 보고 발작을 일으킨다. 새들은 창문에 부딪혀 죽는다. 병원에서 (새로운 환경에서 생활하는 스트레스로 인한) 심인성 비뇌전증 진단을 받고 돌아와 잠든 그녀의 꿈에는 뱀이 등장한다. 뱀은 인간의 욕망을 상징한다. 겉으로 표현해도 괜찮고 노력하면 이룰 수도 있었던 욕구들, 그러니까 집을 떠나겠다, 대학에 진학해서 공부를 더 하겠다 같은 것들 이외의 바람이 주인공 안에 잠들어 있었던 것이다.
델마는 (왜인지 그녀를 꺼리는) 어머니보다는 아버지와 더 가까이 지내며 항상 그에게 의존해왔다. 유능한 의사로 아내와 딸의 치료와 약 처방에 관여하며 영향력을 행사해온 아버지 트론드는 금욕적이고 독실한 신앙인이다. 그는 딸의 손을 촛불에 가까이 가져다대며 세상의 사악함과 그 안에서 타락하여 지옥에 갈 인간에 대해 말해왔다. 스스로가 이미 타인의 삶을 지옥으로 만들고 있었으면서도, 그는 자신이 옳다고 믿는다.
주인공은 아버지의 욕망을 자신의 것처럼 생각하며 자라났다. 세상과 단절되었다고 봐도 좋을 정도로 종교와 가족에게만 둘러싸인 채 인정을 갈망하면서 살아왔다. 이들은 불완전하고 영원하지 않은 존재들인데도. 부모와 물리적으로 분리되자 델마의 욕망이 비로소 고개를 든다. 주인공은 더는 모른 척할 수 없는 강렬한 운명을 안다. 억누르지 못하고 거부하지 않는다. 아냐는 델마의 방에 찾아오고 아버지는 끊임없이 전화를 건다. 이 두 개의 삶을 동시에 지속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델마는 계속해서 발작을 겪는다. 의사는 가족력을 언급하며, 오래 전 사망한 줄 알았던 할머니의 생존 사실을 알려준다.
할머니는 아들(델마의 아버지)에 의해 병원에 갇혀 죽음을 기다릴 뿐인 말년을 보내고 있다. 그녀는 델마와 같이, 소원을 실제로 이루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할머니는 남편(델마의 할아버지)을 실종시켰고, 델마는 어린 동생을 얼음물에 빠뜨려 죽음에 이르게 했으며 연인으로 욕망하던 대상(아냐)을 유리창 안쪽에 가두어버렸다. 그러나 주인공은 할머니와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는다. 그녀는 단죄받을 생각이 없다. 내 본능이 과연 어디에서 왔겠는가, 그리고 그 본능이 돌이킬 수 없게 폭발할 때까지 억압한 이는 누구인가. 내가 나인 것은 나만의 책임이 아니다. 델마는 압도적으로 각성한다. 경계를 넘어선다.
사냥은 많은 매체에서 보통 아버지와 아들의 경험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델마는 아들이 아니고, 심지어 아버지는 자신의 아이에게 총을 쏠지 말지 망설이기까지 했다. 부모가 델마를 사랑하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정상가족과 가부장의 신화는 화형당한다. 세계를 지키려던 아버지는 결국 실패한다. 델마는 (종교가 불어넣은 의미없는) 죄의식이 영혼을 잠식하게 두지 않는다. 인간이 감정을 드러내지 못하게 되면 그 에너지는 어디로 흘러가 어떤 일을 불러오는지를, 영화는 퀴어여성의 성장통을 통해 말하고 있다.
<델마>는 북유럽의 스산한 배경에서 <렛 미 인(Let the Right One In, 2008)>을, 서사의 측면에서는 <캐리(Carrie, 1976)>나 <더 위치(The VVitch, 2015)> 등을 떠올리게 한다. 소수자성과 초능력을 결부하는 데서는 엑스맨 시리즈를 연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타이틀 롤의 에일리 하보 Eili Harboe 는 이 익숙함에 서스펜스를 더하는 연기를 보여준다. 그만으로도 볼 가치가 있다.
극은 등장인물들의 얼굴을 클로즈업했다가, 이내 대학 캠퍼스의 전경을, 숲과 호수를 부감샷으로 담아낸다. 때로는 다소 과격하게 느껴지는 화면의 전환은 주인공의 혼란을 감상자에게도 전염시킨다.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이 세계에서 무엇인지 알기 어려운 감각이다. 주인공의 초능력이 선도 악도 아니고 축복도 저주도 아닌 것처럼,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다. 델마는 히어로나 악당이 되지 않는다. 그저 눈 시린 풍경만큼이나 고요하게 마녀의 이야기를 전복한다. 빛이 깜빡이는 건 그녀가 눈을 깜빡이기 때문일 터다. 폭력과 트라우마를 지나 주인공은 마침내 자신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