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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호할미 Apr 28. 2021

널 만나려고

꼭 말을 해야 하나?

 남편과 한 가정을 이루고 나름 가족계획을 세운답시고 피임을 했었다. 양쪽 집에서 장남, 장녀였고 집안이 넉넉하지 않은 터라 전적으로 우리 둘만의 힘으로 결혼을 했기에 부족한 게 많았다. 주변의 친구들과 비교하면 특히 더 그랬다. 보통은 부모님 아래에서 취업 후 버는 월급 족족 모아 부모님 도움도 얻어 집을 장만하고 결혼생활을 하는 친구들이 주변에 많았다. 시작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어 어느 정도 쫓아가고 아이를 낳고 싶은 생각이었다. 하지만 남편과 나는 아이를 엄청 좋아한다. 지금도 길에 가는 애들만 봐도 눈에 꿀이 떨어지고 조카들 중에도 남편이나 나를 싫어하는 애는 없다. (아! 나는 잔소리 이모라고 불리긴 한다.) 그래서 결국 계획보다 빨리 아이를 가지기로 결심했었는데 이제 우리가 계획했던 기간을 훨씬 넘어섰다.

 아이를 갖기로 결심했는데 생기지 않아 당황했을 그때부터 나를 괴롭히는 사람이 있었다. 시댁에서도 며느리 눈치 보느라 설날 덕담으로나마 한마디 "올해는 너네 닮은 예쁜 아이 하나 낳아라"하시고 끝이었는데 매주 꽁무니를 따라다니며 잔소리를 하는 거다. 교회에 애가 셋이나 되는 집사님이 있다. 나이를 정확히는 모르나 (이 정도면 많이 친하지 않다는 거겠지?) 삼촌뻘은 아니다. 그분의 아내분이 아는 언니의 사촌언니인 아주 복잡하지만 한 교회에 다니고 있는 집사님인 거다. 이분은 아마 본인 인생에서 제일 잘한 일이 아이를 많이 낳은 일이라 생각하고 사시는 듯했다. 그래서 너무나 행복한 나머지 우리 부부에게도, 그리고 교회의 신혼부부들 모두에게 그 행복을 강요했다. 처음엔 괜찮았다. 그냥 무시하고 넘어가기도 했고, 어쩔 땐 "열심히 기도 해 주세요."라고 넘어가기도 했다. 근데 난임 판정을 받고 교회에 가서 지나가는 아가들만 봐도 눈물이 나는 그 주에... 그분과 만나 버렸다. 피하려고 했는데 절대 놓아주지 않으셨다. "야... 너는 결혼한 지 얼마나 됐는데... 왜 아이를 안 가지니? 노력은 하고 있니? 너네 남편도 애기 엄청 좋아하잖아."  순간 머리가 핑 돌면서 정신줄을 놓쳤다. 교회 예배당 한가운데 서 있다는 것도 잊어버렸다. 주먹으로 그분의 등을 내리쳤다. 막 내리치면서 미친 여자처럼 울부짖었다. "뭘 알고 떠들던지 해야지. 눈치도 없어요? 계속 피하면 눈치라도 알아차리던가. 누구보다 아이 갖고 싶어요. 안 갖는 거 아니고 못 갖는 거라고요. 계속 후벼 파지 말고 차라리 총을 쏴요. 그냥 죽여. 미치게 만들지 말고." 조용히 기도하고 앉아 계시던 몇 분이 놀라 쳐다보고 계셨다. 하지만 금세 내 눈물을 보셨는지 고개를 숙이셨다. 저 멀리서 남편이 달려왔다. 남편은 나한테 두들겨 맞고 있던 집사님의 손을 잡고 끌고 나갔다. 그러곤 둘이 무슨 이야기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항상 천사 같지만 남편이 한번 맘먹으면 엄청 무서워지는 사람이라 다른 사람에게 가 봐달라고 부탁을 하곤 주저앉아 울며 기도아닌 기도를 했다.

 나중에 사과를 받았다. 몰랐다고... 하지만 진심으로 열심히 기도하고 있었고 진짜 행복하다는 걸 우리에게도 알려 주고 싶었다고 했다. 특히나 예뻐하는 부부였기에 더 그랬다고 했다. 그래... 이해한다. 좋은 것 나누고 싶은 좋은 의도였을 거다. 그렇지만 할 이야기는 했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부부 중에도 이야기를 못하고 앓고 있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본인이 아이들로 인해 행복한 거 말 안 해도 알고 엄청 부럽다. 티 내지 않고 조용히 기도해주시는 방법으로 모두를 응원해 주셨으면 좋겠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주먹질은 한거에 대한 사과도 했다. 난 마음이 아팠지만...때리려는 행동 이라기보단 그냥 분노의 표현이였고 아프지는 않았겠지만...그건 내사정 이고 내 손이 남의 몸에 동의 없이 닿은것 자체가 정말 미안했다.

 나의 손맞을 본 충격을 받아서 인지, 나와의 대화에서 깨달음을 얻으셨는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 부부에게도 다른 부부에게도 더 이상 아이 낳으라는 이야기를 하시지 않았다. 나는 그날 교회 한가운데서 울부짖은 덕분인지 많은 어른들이 나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부끄럽지만 그것도 또한 감사했다. 나에겐 한줄기 빛이고 동아줄 같은 소식이었다.

 이 사건이 있고 일 년쯤 후에 우린 시험관 시술을 했고 첫 시술에 쌍둥이를 얻었던 거였다. 쌍둥이 생긴 건 조심하느라 교회 몇몇 분께만 알렸는데 유산이 되고는 수술을 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많은 분이 알게 되셨다. 그때 받은 문자를 보고 얼마나 감사하고 또 눈물이 났던지... 한 어르신이 이런 문자를 보내셨었다. "내가 처음으로 하나님한테 왜 너한테 이렇게 모질게 하시냐며 원망하는 기도를 해 봤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딸이 너무 괴로워 한나처럼 울부짖고 힘들게 노력했는데... 주지를 말던지. 왜 다시 거두어 가시냐고. 나도 엄만데... 네 마음 왜 모르겠니. 많이 힘들지? 지금은 이해하려고도 하지 말고 아무리 하나님이라도 원망하고 화도 내고 짜증도 내고 해. 너무 한 건 맞잖아. 이건 아니지. 나도 그렇게 기도 하마. 협박이라도 해서 다시 달라 하자." 문자를 저장해 두고 시험관 시술이 힘들 때마다 읽었다. 누가 내 어깨를 안아주며 힘내라고, 안돼도 너무 절망하지 말고 쟁취해 보자고 응원해 주는 기분이 들었다.

 진짜... 꼭 이야기해야 아나? 얼마나 속상하고 힘든지를... 물론 겪지 않은 일을 공감하고 진심으로 위로하기란 힘든 일이겠지. 그렇다면 어설픈 위로 보다는 때론 침묵을 택해 주시길... 그 침묵이 오히려 큰 응원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그나저나 말도 없이 기도해 주시는 분들의 이 빚을 언제 갚을까? 아가... 어서 네가 우리에게 와서 미소 한번 지어주면 그 빚도  다 탕감이 될 것 같은데... 언제 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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