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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감독 Oct 05. 2021

<스마트기기와 육아> 소셜 딜레마

소셜 딜레마


앞의 글과 이어집니다.


이 글은 육아를 하면서 든 생각을 쓴 일기를 가지고 왔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몸에 달고 사는 것들에 대하여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저도 스마트폰 사용 때문에 아주 골머리를 썩고 있어요. 매일매일…
 스마트기기는 이제 막는다고 막아지는 단계를 지났다고 봅니다. 지금 자라는 아이들은 앞으로 더 신기 방기한 물건들이 쏟아져 나와 가까이 지내게 될 것이 구요. 아이들에게 무조건 못하게 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를 고민하면서 나름대로 자료를 찾아보았습니다. 어쩜 모든 사항이 이렇게 극명하게 나뉠까요. 누가 답 좀 주세요. 이번에도 역시 부모가 선택을 해야 합니다.
 
 교육학자들은 ‘되도록이면 아이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는 최대한 멀리하는 것이 좋다’라고 하고 IT 관련 과학자들은 앞으로 ‘스마트기기와 친숙 해져서 아무렇지 않은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라고 하는군요. 자기들이 일하는 필드에 따라 입장의 차이가 있지요.
 
 이런 입장은 우리 주변의 여러 분야에서 볼 수 있어요.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GMO 관련 식품도 그렇습니다. GMO는 유전자를 조작해서 생산하는 식품을 말하는데요. 얼마 전에 그린피스라는 환경단체에서 GMO를 반대하는 활동을 하자 노벨상 수상자 출신 과학자들을 비롯해서 100여 명의 박사들이 그린피스는 지구인을 굶어 죽일 생각이냐고 반발하기도 했지요. 어쨌든 그린피스와 여타의 환경단체들의 활동으로 식료품에 GMO 표기를 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아마 GMO가 아닌 식료품에는 가격이 상승할 것이라고 보입니다. 
  
 육아를 함에 있어 스마트기기의 재주는 천사의 날갯짓 같습니다. 밥도 잘 먹일 수 있고, 공공장소에서 소란을 피우지 않게 하고, 말을 듣게 하는데 훌륭한 미끼가 되기도 하지요. 이것은 근본적으로 어른들을 위한 행위입니다. 아이는 이것이 앞으로 자기 두뇌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모릅니다. 마치 GMO 식품이 미래에 인류의 생물학적 진화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르는 것처럼요. 야속한 IT 과학자들은 육아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개개인의 사용방법은 각자 알아서 판단해야 합니다. 스마트기기의 몰입도는 당장 어른들의 사용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전철을 타보세요. 카페를 가보세요. 이미 다들 아시죠? 굳이 보지 않아도 습관처럼 손에 올려서 홈버튼을 누르고 화면을 이리저리 터치를 합니다. 게임을 하게 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겠죠.
  
 저는 첫째 휘운이가 20개월 초반까지 완벽하게 차단을 했습니다. 사실 그때는 조금씩 해도 딱히 잘 모릅니다. 두 돌이 지나고 할머니 집에 자주 가면서 봉인이 해제되었습니다. 사실 할머니 집에서 해제된 봉인은 스마트기기뿐만이 아니라 각종 영상, 달달한 군것질 거리에 난리도 아닙니다. 집으로 돌아오면 다시 단물을 빼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스마트기기를 잘 이용하면 교육적으로도 좋긴 합니다. 실제로 교육목적의 앱도 많고요. 하지만 이것은 어른이 굉장히 신경을 써서 직접 해보며 면밀히 따져봐야 합니다. 앱에는 광고가 있어 여차하면 유튜브로 넘어가서 자극적인 동영상의 나락을 떨어지고 마니까요. 어차피 아이가 중학생 정도가 되면 제어를 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 시기 전까지 습관이 잘 들어야 합니다. 휘운이가 두 돌 즈음에 환경을 이렇게 세팅을 했습니다.


 TV는 첫돌 시기부터 아이 앞에서는 켜지 않고 구석방으로 치워버렸어요. 아이의 조부모와 우리 부부 스마트폰에서 동영상과 다른 게임은 삭제된 상태여서 아이가 핸드폰을 가지고 가면 사진 앨범을 보다가 카톡으로 글자 몇 개와 이모티콘만 찍어 보기만 합니다. 흥미가 유발되는 것들은 다 삭제를 했습니다.
 
 ‘책이나 기타 다른 활동이 스마트기기보다 더 재미있다’ 까지는 힘들더라도 굳이 스마트폰이 아니더라도 다른 것 하면서 놀면 된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그에 맞게 열어주어야 할 겁니다. 앞으로 과제를 한다던지 할 때에는 써야 하니까요. 나이를 어느 정도 먹고 10살 이후가 되거나 사춘기 시절로 접어들면 너무나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중에는 몇 년을 달고 살다가 아이가 어느 날 정신을 차려서 스스로 공부를 하는 집도 보았으나 대체로 하루 종일 부모와 신경전의 연속이었어요. 아이의 태도가 바뀌는 집은 부모님들이 책을 항상 본다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이제 세월이 좀 지나 휘운이가 32개월이 되었을 때 앱스토어 앱을 누르더니 유튜브 모양의 그림을 찾아 설치를 했습니다. 본능적으로 버튼을 눌렀는데 곧장 설치가 된 것이죠. 다행히 유튜브는 아니었고 유튜브 뮤직 앱이었어요. 그날 우리 부부는 의논을 했어요. 폰 약정이 끝나는 사람부터 2G로 돌아가서 1년만 써 보자고요. 이달 중순에 아이 엄마가 약정이 끝나고 저는 조금 더 있어야 합니다. 그나마 2G 폰이 집에 쓰던 것이 있어서 다행입니다.(현재 직업상 폰을 바꾸진 못했습니다) 제 고민을 들은 주변 친구들이 그러더군요.
 
 뭘 또 그렇게 까지…’
 
 저는 이 ‘뭘 또 그렇게까지’가 핵심이라고 봅니다. 작은 차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이 나중에 큰 차이의 결과를 나타낼 것이라고 믿습니다.
  
 세상 살면서 느끼는 건, 부모라고 해도 할 수 있는 게 마땅히 없다는 겁니다. 다들 그러시죠? 그게 제일 답답합니다. 이웃나라에서는 원전이 터져서 방사능에 오염된 식품이 들어오고, 굶어 죽는 사람 없이 다 같이 먹고살자고 과학자들이 개발한 식품은 인간의 유전자를 변형시키게 될지 모른다고 겁을 주고, 컴퓨터가 손안에 들어왔다고 좋아할 때가 엊그제 같은데 아이들의 머리가 바보가 된다고 하니… 우리 부모들은 뭘 어떡해야 하나요.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은 그래도 무언가 읽고 쓰고 사유할 수 있는 계기와 기회를 더 마련해주는 것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이거 하나는, 정말! 이거 하나는 해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니해 줄 것이 이것밖에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우리 애들이 대학을 갈 때쯤 또 얄밉게 스마트폰을 끼고 살았는데 명문대 갔다고 하는 애들이 있겠지만, 저는 제 아들이 그리 천재적이지 못한 것 같아서 노력해 볼 생각입니다. 아이가 보는 태블릿에는 좋아하는 가요 몇 곡과 동요 몇 곡, 그리고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의 휘운이 사진만 있어요. 놀라운 건 수십 번을 본 이것들이 매일 봐도 그리 재미있나 봅니다. 그래서 더욱 스마트기기의 중독성에 놀랍니다. 지금 첫째가 8세, 둘째가 4세가 되었습니다. 첫째는 학교 과제와 기타 공부할 것들 사이에 폰으로 게임을 조금 합니다. 시간을 정해놓고 해야 할 것과 놀이를 교차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이 할머니 집에서 하는 루틴이고 집에서는 폰은 일절 하지 못합니다. 단, 하루 30분 음악 듣기는 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집에는 크롬캐스트 (애플티브이 같은 구글에서 나온 TV용 미니 셋톱) 를 연결해서 넷플릭스에 키즈만 볼 수 있게 설정하고 시간을 정해놓아서 보고 싶은 애니메이션은 한편씩 보고 있습니다. 둘째 규리는 오빠가 했듯이 태블릿으로 '한글이야호'만 볼 수 있게 해 놓았습니다. 아직까지는 이 패턴으로 잘 돌아가고 있습니다. 육아 에세이를 쓰는 동안 이후에 변화도 기록하겠습니다.   




휘운이가 두 돌이 되기 전, 초반에 무방비로 보여주었던 유튜브 영상에는 장난감을 소개해주는 영상들이 가득하다. 와~ 이렇게 창의적일 수 있나! 아이는 그 영상을 보고 또 보고 한다. 말도 제대로 못 하는 녀석이 ‘캐리와 장난감 친구들’에서 나오는 캐리의 대사는 잘도 따라 한다. 이걸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점점 무섭게 몰입하기 시작하는 아이를 보고 스마트 기기를 떼려고 온갖 잔머리를 쓴다.


어느 분야의 산업이 발달한다는 것은 양날의 칼과 같이 득과 실이 동시에 존재한다. 디지털 세상이 열리고 스마트 기기가 발달하자 없던 생태계가 생기기 시작했다. 장난감-콘텐츠-마케팅이 서로 꼬리를 물고 돌고 도는 생태계 말이다. 


TV에서 방영된 만화를 본 아이들은 TV 속 멋진 캐릭터를 내가 가질 수 있는 현실 속에서 산다. 바로 그 장난감을 가지고 큰 소리로 하하호호 웃는 형, 누나들은 스마트 기기를 통해서 늘 볼 수 있다. 엄마, 아빠를 따라 놀러 간 대형마트에선 그 장난감들의 실물을 직접 확인하게 되는 이 순환의 고리는 부모세대가 어린 시절 단순히 무한 반복되던 장편 만화영화에서 튀어나온 조잡한 ‘로봇 태권 V’와 ‘들장미 소녀 캔디’ 인형과는 비교도 안 되는 산업적 확장성을 가지고 있다. 


<아이가 보는 태블릿 안에 넣어준 내가 만든 장난감 소개 영상. 유튜브를 보지 않게 하기 위한 노력>


장난감은 아이에게 필요하다. 하지만, 애니메이션 속의 장난감은 어른 세계와 비교했을 때, 술과 담배 등과 같이 중독성이 강하다. 건전지를 넣고 작동하면 소리나 음악이 나오면서 아이의 눈과 귀를 현혹시킨다. 하지만 그 움직임은 단순함의 끝이다. 아이의 소유욕만 채워줄 뿐 두뇌발달에는 1도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만약에 도움이 되려면 그 장난감을 가지고 아이와 역할 놀이를 하면서 부모가 꼭 함께 눈높이에 맞게 놀아주면 괜찮겠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나는 내 나름대로의 기준을 만들었다. 


-    시즌제 애니메이션 아이템은 최대한 피해야 한다. 피하기 위해서는 시즌제 애니메이션은 애초에 단절되는 것이 방법이다.

-    최대한 수동 장난감이 좋고 혼자 창의적으로 창조할 수 있는 것이 좋으며 부모도 함께 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    내용이 훌륭한 극장용 애니메이션의 아이템은 사줘도 된다. 이유는 시즌제 시리즈물보다는 확장성이 덜 하고 일반 마트에서는 극장에서 다음 편이 나오기 전에는 보기 힘들다.


장난감의 세상에 아이들이 쉽게 빠질 수 있는 이 시스템에서 연결고리를 끊어주는 방법은 결국 스마트기기와 TV로부터 멀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불가능하다. 시청은 할 수밖에 없다. 앞에서도 썼지만 육아에서 부모의 몸이 편하면 아이의 교육에는 좋지 않은 것 같다. 부모가 귀찮고 피곤하고 선택에 생각을 많이 해야 하고 뭔가 수고스러워야 아이에게는 도움이 되었다. 웃긴 사실은 이 모든 공들인 탑은 둘째가 태어나면서 무너지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최후의 마지노선을 설정해두고 최선을 다 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냐고 물으신다면 수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경험을 접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아이 스스로 자기만의 우주에서 상상의 날개를 펼쳤으면 하기 때문이다. 그건 책이라는 것이야 가능하고 일방적으로 보여주는 시각적인 자료는 그다음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것은 글에서 시작된다고 믿는다.


언젠가 가족끼리 아웃렛을 구경 간 적이 있다. 없는 형편에 조금 저렴한 가격에 괜찮은 브랜드를 구입해볼까 하는 생각으로 찾았는데 쇼핑은 고사하고 아이가 푹 빠져 버린 회전목마만 5번을 타고 온 기억이 있다. 이때 난 대단히 럭셔리한 아이를 보았다. 나이는 휘운이 와 같아 보였는데 단란한 세 가족이었다. 아이는 자전거형 탈것에 앉아 있었고 아빠가 밀어주고 있었다. 아이는 모자와 선글라스를 하고 귀에는 beats 헤드폰을 쓰고 앞에는 자동차에 쓰는 태블릿 전용 거치대를 설치해서 유튜브를 보고 있었다. 그리 넓지 않은 아웃렛에서 그 가족과 우리는 동선이 비슷했고 식사 시간대에는 식당도 같은 곳을 이용하게 되었다. 아이는 한 번도 헤드폰을 벗지 않았고 태블릿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완벽히 외부와 차단된 세팅이었다. 부모는 여유롭게 대화를 나누고 식사를 했다. 그러면서 중간중간 아이 입에 밥을 떠먹여 주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 궁금하다. 나는 절대 반대다. 육아를 하다 보면 조용히 커피 한잔을 아무런 방해받지 않고 마시고 싶을 때가 정말 많다. 너무나 간절하다. 밥 한 끼 내가 좋아하는 음식, 쫓기지 않고 천천히 여유 있게 먹었으면 좋겠다. 나는 아이가 미취학 전까지, 그러니까 논리적인 대화가 어느 정도 통할 때 까지는 부모가 희생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식당에 가서 밥을 먹으려고 하면 아이들은 호기심이 발동해서 식당 여기저기를 기웃거리고 테이블과 테이블 사이를 다니며 구경을 한다. 그때 부모 중에 누군가가 따라다니면서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을 설명도 해주고, 대화를 계속해 나가야 한다. 그 시기만 참아내면 된다. 부모의 잠깐의 여유를 위해서 스마트 기기를 아이에게 보여주면 모든 게 후퇴한다. 이런 습관이 쌓여서 나중에 안된다고 하면 강한 저항에 부딪힌다. 


나는 휘운이는 특별한 교육을 받은 적이 없지만 식당에 가면 잘 앉아 있다. 절대 외부에서 스마트 기기를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정말 보여주고 한숨 돌리고 싶은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그 잠시의 시기를 지나자 훨씬 편해졌다. 식당에서 음식에 대해서 대화도 나누고 전에 갔던 식당과 지금의 식당 비교도 하고 대화를 더 나누게 되었다. 식당을 가게 되면 주변을 돌아본다. 아이들 앞에는 거의 다 스마트 폰이 세워져 있다. 아이는 먹는 게 메뉴가 뭔지도 모르고 그냥 먹는다. 그 이후로 육아를 하면서 저항에 부딪히면 이 경험을 떠올리며 참으려고 노력한다.


이 글을 쓰는 동안 최근에 나의 생각을 서포트해주는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넷플릭스의 ‘소셜 딜레마’라는 다큐멘터리다. 이 작품은 2020년 선댄스 영화제에서 소개된 93분짜리 영화다. 이 다큐멘터리는 업계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지만 아무도 제대로 언급하지 않았단 비밀 같지 않은 비밀을 누설한다. 

<다큐멘터리 소셜 딜레마 포스터>


작품에는 구글, 트위터, 인스타그램, 유튜브, 페이스북에서 일했던 핵심 관계자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열심히 일했던 회사의 수익모델이 결국은 대중들을 끊임없는 유혹으로 광고를 파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유혹은 무차별적으로 성인뿐만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공개된다. 위에서 말한 우리 휘운이가 유튜브 영상을 하나 클릭하면 끊임없이 볼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휘운이의 성향을 슈퍼 컴퓨터가 알고리즘을 돌려 계속 비슷한 종류의 영상을 추천해서 보게 만드는 것이었다.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에서 ‘좋아요’를 받기 위해서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과장되고 자극적인 모습만 노출시키는 10대들의 모습도 아주 설득력 있게 그렸다. 미국의 10대 자살률은 소셜 미디어의 사용 빈도수와 정비례한다는 결과도 나왔다고 한다. 


다큐멘터리 끝부분에 인터뷰를 했던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자기들 자녀들에게는 스마트폰을 중학교까지는 절대 주지 않는다는 것이고, 설사 보여주더라도 하루에 2시간을 넘기지 않게 하는 것을 규칙으로 만들어 놓았다는 것이다.


이 다큐멘터리를 보고 나는 나에게 물어보았다. ‘자신 있어? 10대가 끝날 때까지 스마트폰을 사주지 않는 것…’ 이것은 부모만 막무가내로 실천한다고 될 일은 아닌 것 같다. 아이가 성장하며 아빠와 엄마가 왜 너희들에게 스마트기기를 사주지 않는지 설득에 설득을 거듭해야 할 문제인 것이다. 나는 아이들이 머리로 이해가 되기 시작하면 동기부여가 되어 잘 따라오는 것을 지금까지 확인했다. 부모로서 내가 작은 목표가 있다면 이렇게 설득을 해야 하는 힘든 과정에 들어서기 전에 책에 재미를 붙여서 스마트기기가 옆에 있어도 책이 더 재미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제발 그렇게 되길, 하나님, 부처님, 공자, 맹자, 알라신에게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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