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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감독 Sep 26. 2021

<TV와의 전쟁>


부산에 내려와서 좋은 점은 부모님 댁이 바로 옆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내가 좀 흔들린다 싶으면 부모님 댁으로 아이를 보냈다. 보내면서 나의 모든 육아 기준을 그대로 적용시키려고 했다. 예를 들면, TV는 보여주지 말고, 언제 밥을 먹이고 인스턴트는 주면 안 되고, 과일주스를 주려면 생과일주스를 줘야 하고, 잠은 언제 재워서 언제 깨우고 등등. 사실 나도 100% 해내지 못하던 일을 부모님께 전가시켰다. 부모님은 나의 요구에 최선을 다하셨다. 말이야 쉽지 거의 불가능하다. 아이가 하나하나 다 따라와 준다면 그건 아이가 아닐 것이다. 어머니는 버티다가 TV를 한 번 보여주면 감당이 안된다고 하셨다. 그런데 안 보여 줄 수도 없다고 했다. 어머니는 여느 할머님들처럼 드라마 보는 것이 낙이고 찬거리 재료 다듬으면서 노래 방송 보며 노래 흥얼거리는 것을 좋아하셨다. 아무리 예쁜 손자가 왔지만 당신의 개인적인 기쁨을 제약받는다는 것은 부모님에게도 고통이었다. 


잠깐 노래 한 곡을 소개하려고 한다. 타블로의 ‘Dear TV’라는 곡이다. 


Dear TV, desensitize me. 존경하는 TV, 내 감각을 빼앗아봐 

Gimme more genocide please. 학살의 충격적인 장면을 부탁이니 더 보여줘 봐 

The world is your aphrodisiac 세상은 이미 그대의 최음굴이잖아 

so you stay turned on every minute, every second I breathe. 

그러니 내가 숨 쉬는 매 일분일초도 계속 켜져 있잖아 

You weaponize greed, 그대는 탐욕을 무기 삼아 

kill me with incessant I needs. 끊임없이 "나는 필요해" 들로 나를 죽이고 있지 

Got me checkin' out those and checkin' out these. 

이런저런 프로그램도 모두 기웃거리게 하지 

Mainstream me, 바보로 만들어봐 나를 

disinfecting my breed. 내 핏줄도 아주 소독을 해버리지 

I'm looking for nirvana 나는 열반에 오르고 싶은데 

but you Geffenize me. 그대는 나를 발에 채이는 돌로 만드네 

Point me to the skies 그대가 원하는 하늘을 가리켜봐 

till heaven's eye bleeds. 그 천국의 눈으로 피를 흘릴 때까지 

Anoint me with your lies 그대 거짓말로 나에게 향유를 부어봐 

then divinize me. 아예 나를 신격화시켜봐 

If heaven is a show, 만약 천국이 어떤 쇼 프로라면 

well, televise me. 그래, 나를 등장시켜봐 

But I won't lie my way in, 그렇지만 나는 그 프로에 출연하기 위해 거짓말하지 않을 거야 

no fakin' IDs. 위조 신분증은 물론이고 

I'll die standing. 나는 서서 죽을 작정이니 

Try breaking my knees. 내 무릎을 부숴버리지 그래 

I'll do a handstand like I'm breakin'. 마치 브레이크 댄스 하듯 물구나무서기로 버틸 테니까 Now freeze. 자 이제 동작 그만 

Don't act like you know me 나를 아는 것처럼 행동하지 마 

'cause you recognize me. 나를 알아본다고 해서 

You sell my record not me. 그대는 내 레코드를 파는 것이지 나를 파는 건 아니잖아 


다시 선택의 기로에 섰다. 현재 TV를 보는 것은 부모 세대의 TV를 보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통신사마다 연결된 각종 프로그램과 유튜브도 TV를 통해 시청할 수 있다. TV를 켜면 헤어 나올 수가 없다. 그중에는 아이에게 좋은 프로그램도 있었다. 나는 프로그램들을 선별했다. 해당 영상을 구입을 해서 파일로 다운을 받아 태블릿 PC에 옮겨 담았다. 그리고 와이파이는 끈 상태로 아이에게 보여주었다. 휘운이는 너무 좋아했다. TV를 보고 싶어 했지만 TV는 고장 났다고 둘러댔다. 전기코드를 뽑아버리고 리모컨으로 안 켜지는 시늉을 했다. 

태블릿에는 한글을 가르쳐주는 프로그램과 디즈니 애니메이션과 동요, 휘운이가 좋아하는 댄스음악을 몇 개 넣어 놓았다. 휘운이는 그 영상들을 보고 또 보았다. 정말 질리도록 보았다. 그렇게 본 후 휘운이는 한글을 조금씩 읽기 시작했다. 거기에 맞춰 나는 기회를 놓칠 새라 휘운이가 알게 된 글자를 이용해 다른 단어들을 써서 함께 읽고 쓰고 했다. 몇 개월 후에는 휘운이가 좋아하는 트와이스 누나들의 이름을 써 놓고 따라 쓰기를 했다. 멤버들의 이름을 다 쓸 수 있게 되고 나서 가사를 출력했다. 가사를 읽으면서 쓰기도 했다. 학습지는 필요 없었다. 아이는 즐거워했다. 받침이 복잡한 글자는 잘 못 썼지만 그 외에 글자는 3세때 다 읽고 쓰게 되었던 것 같다. 일정 시간마다 한 번씩 난 와이파이가 혹시 켜졌을까 확인을 했다. 


아이에게 스마트 기기를 적절히 이용하면서 이외의 학습적인 성과를 내자 휘운이는 스마트 기기에 대한 통제력을 가지게 된 줄 알았다. 왜냐하면 보다가 어느 순간 끄고 다른 놀이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혹시나 해서 유튜브를 켜서 휘운이가 좋아하는 영상을 보여주었다. 유튜브는 계속해서 연관된 영상으로 아이를 이끌었고 끝이 없는 세상으로 아이를 침몰시켰다. 이건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나 역시 그랬다. 인지하지 못하는 순간 수십 분의 시간을 낭비하고 있었다.


휘운이 가 한글을 떼고 TV의 시스템적인 작동방식을 터득한 후, 태블릿을 숨겼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지금 둘째 규리가 4세가 되어 오빠가 썼던 방법으로 한글 공부를 하려고 한다. 원래 휘운이처럼 3세때부터 시도를 하려고 했으나 할머니 핸드폰으로 유튜브의 세계를 자주 접하고는 모든 스마트기기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 신경이 쓰여서 그러지 못했다. 규리가 4세가 되고 휘운이가 초등학생이 되면서 이해를 해주지 않을까 싶어 수년간 숨겼던 오래된 태블릿을 꺼냈고 똑같은 영상을 규리에게 보여주었다. 역시나 흥미로워했고 즐거워했다. 반면 휘운 이는 자기는 태블릿을 주지 않는다고 삐졌다. 그런 휘운이를 데리고 잘 타일렀다. 동생도 너처럼 글자는 알아야 되지 않겠느냐고, 저 태블릿은 와이파이가 고장나서 유튜브나 게임을 할 수가 없다고. 물론 거짓말이다. 미안 아들. 아들은 거래를 하길 원했다. 규리는 태블릿을 주었으니 그때 자기는 엄마 핸드폰으로 음악을 듣겠다는 것이다. 나는 음악스트리밍 서비스 앱 한 곳에 가입이 되어 있다. 딜은 성사됐고 지금은 규리가 태블릿을 볼 때, 휘운이는 음악을 들으면서 춤을 춘다. 기분 내키는 대로 흔들고 땀을 낸다. 나름 나쁘지 않은 거래였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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