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을 했다 (LOVE SCENARIO)
오늘의 여행 콘셉트는
[마지막 촬영]입니다.
첫 이야기를 '이별 여행'으로
시작하는 이유는
오래 사귄 애인 같은 일박이랑
잘 헤어지고 싶기 때문입니다.
유명한 노래 가사처럼
'사랑을 했다 우리가 만나
지우지 못할 추억이 됐다'
2024년, 7월 21일 일요일. 내가 마지막으로 촬영한 여행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충주 편이 방송 중이다. 오늘은 내가 애정하는 배우, 연정훈과 나인우의 마지막 방송이기도 하다. 영화 제목인 것 같지만 이번 여행 콘셉트 속에 숨겨진 의미는 이제 인우와 정훈도 볼 수 없다는 뜻이다.
나의 이별 여행은 4월에 이미 결정됐다.
두 달 동안 마지막 촬영을 어떻게 마무리할까 고민했다. 눈을 뜨자마자, 머리를 감으면서, 출근하는 지하철 안에서, KBS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집에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도 이별을 생각하면 울컥하는 마음에 잠 못 드는 밤이 많았다. 이별이 처음도 아니었다. 나는 시즌1, 시즌2, 시즌4까지 무려 세 번째 이별을 앞두고 있었다. 그러나 지난 이별은 내 선택이 아니었고 이번에는 내가 먼저 이별을 고했다. 결국 차인 꼴이지도 하지만. 아무튼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최후의 이별을 준비하며 오랜만에 지난 시즌 이별 여행을 떠올렸다.
시즌1 마지막 촬영지는 전북 정읍에 있는 40년 된 작은 영화관이었다.
당시 멤버들에게 주어진 미션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관객들에게 이름이 불리지 않는 것.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영화를 보면 성공, 한 명이라도 이름이 불리면 실패. 멤버들은 긴장한 채로 어두운 극장 안에 들어갔다. 영화가 시작되고 멤버들이 한시름 놓았을 때, 갑자기 상영되던 영화가 끊기고 블랙 화면에 자막이 흘렀다.
[화면이 갑자기 꺼져서 놀라셨죠?]
[갑자기 옆자리 여성이 말을 시켜서 놀라셨죠?]
[뒷자리 남자가 계속 어깨를 치던가요?]
[하지만 이 모든 것들도 지나고 나면 추억이 됩니다.]
영화 『클래식』OST <너에게 난 나에게 넌> 노래와 5년 동안 함께했던 추억이 파노라마 필름처럼 흐른다.
1박 2일 팬분들의 인사말과 그동안 방송을 만드는 데 도움을 주신 분들의 영상 편지가 공개됐다. 반전은 그분들이 극장에 앉아 그 자리를 빛내주고 있었다. 우리들만의 서프라이즈 파티였다. 멤버들은 금세 눈가가 촉촉해졌고 객석에서도 훌쩍훌쩍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심지어 마지막 순간을 담아야 하는 감독님들도 숨죽여 우느라 카메라가 흔들렸다고 한다.
늘 밝고 유쾌하셨던 나영석 피디님도 마이크를 잡고 인사를 하려다 울먹이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때는 모두 이별이 처음이라, 감당하기 힘든 슬픔이었다. 나와 몇몇 제작진은 시즌2를 바로 이어가기로 해서 남는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내 인생에서 가장 슬픈 영화를 본 날이다.
마지막 촬영을 끝내고 바로 제작진 포상 휴가를 떠났는데. 반짝이는 홍콩의 밤거리에서도 울고 방송 전까지 편집본을 보면서 또 울고, 마지막 방송을 다 같이 모여서 봤는데 그때도 눈물바다였다. 인생에서 이렇게 헤어지기 싫은 마음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계속 눈물이 났다. 첫정이 너무 무섭게 들어서 시즌2에 새로 오는 작가들에게 정을 주지 않겠다는 텃세까지 있었으니까.
그런데 이 결심은 시즌2 첫 답사 장소, 인천의 백아도라는 섬에서 무너졌다.
만난 지 일주일밖에 안 됐는데 같이 배를 타고 멀미를 공유하고 한방에서 잠을 자고 민낯을 보여주는 사이. 겨울의 섬은 바닷바람을 피할 길도 없고 정말 춥다. 서로 품에서 데운 핫팩을 나누고 팔짱을 끼며 온기를 더해야 산다. 식량이 부족한 섬에서는 라면 한 그릇도 나눠 먹는 마음이 얼마나 뜨거운지... 그렇게 하루아침에 식구가 된다.
또 일 년 넘게 정이 퍽 들었는데. 시즌2는 예상치 못한 이별이었고 장소는 제주도였다. 비자림 삼천 그루의 나무 중 가장 오래된 새천년 나무에서 단체 사진을 찍는 것으로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제주의 3월은 한창 봄날이었는데. 내 눈앞은 흐려서 종일 우기였다. 그날 내가 너무 많이 울어서 섬세한 성시경 오빠가 “너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지?” 걱정할 정도였으니까. 작가 인생에서 가장 미련이 많았던 사랑이었다.
그리고 11년 후, 다시 사랑한 일박이랑 세 번째 이별 여행을 앞두고 있다. 이번에는 정말 울고 싶지 않았다.
한 달 전, 시즌4 마지막 촬영 회의를 하던 날. 긴 회의 끝에 막내작가 다영이의 아이디어로 ‘라스트 댄스’가 결정됐다. 몸이 힘들면 슬픈 생각을 할 틈도 없는 법. 그래서 신나게 춤을 추며 기쁘게 헤어질 결심을 했다.
한때 우리 멤버들이 아이돌이라면?이라는 상상으로 만들었던 그룹명은 '흥청망청'. 즉 흥해도 청춘 망해도 청춘!이라는 뜻이다. 멤버 여섯 명이 함께하는 마지막 무대 '흥청망청'의 라스트 댄스 준비가 시작됐다.
멤버들도 새드 엔딩보다 훨씬 좋다며 반겼다. K-POP 대표 댄스 크루, 원밀리언에게 의뢰한 안무 영상을 보면서 사뭇 진지한 모습으로 마지막 호흡을 맞춰갔다. 서로의 합이 맞아갈수록 이상한 찌릿함과 뭉클해지는 순간, 누군가는 일부러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고 누군가는 우스꽝스러운 몸짓으로 웃음을 유도했다. 그 순간에도 눈은 별이 박힌 것처럼 반짝거렸다.
수십 번의 리허설을 끝내고 본 무대를 찍기로 한 탄금공원으로 이동하는 길,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것처럼 비가 쏟아졌다. 오래된 노래 가사가 떠올랐다. ‘이별 장면에선 항상 비가 오지...’ 하필이면 이별 공식을 제대로 만났다. 리얼한 프로그램 특성상 늘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었지만 현장은 비상이었다. 그냥 비 오는 상황을 살려서 비를 맞으며 촬영할지, 이대로 서울까지 올라가서 KBS에 가서 찍을지, 갑자기 실내 장소를 섭외하느라 연출팀은 긴급회의를 시작했다.
마지막 촬영만 아니었다면 리얼로 비가 오는 상황을 살려서 찍었겠지만 마지막 인사말(오디오 수음)이 너무 중요해서 빗소리를 무시할 수 없었다. 충주에서 서울까지 아무리 빨리 가도 2시간은 넘는다. 하지만 지금 비는 폭포수처럼 쏟아지고 오늘은 토요일이다. 차가 더 막히면 멤버들이 힘들게 숙지한 안무를 까먹거나 감정선이 이어지지 않는 것도 문제였다. 당장 비를 피해 찍을 실내 공간이 간절했다.
미리 선발대로 탄금공원에 가 있던 작가는 실시간으로 비가 오는 상황을 찍어 공유했고, 진행팀은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 자바라(*방송국 놈들이 부르는 천막) 세팅을 시작했다. 또 다른 작가는 일기예보를 수시로 확인해 강수량을 알려주었다. 새삼 마지막까지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주는 제작진에게 고마웠다.
연출팀은 플랜 비로 당장 섭외가 가능한 실내 공간을 찾기 위해 뿔뿔이 흩어졌다. A팀은 수안보온천의 웨딩홀로 답사를 떠났고, B팀은 충주시육아종합지원센터로, C팀은 충주공예전시관으로 달려갔는데. 공간은 좁지만 목소리가 울리는 곳은 아니었다. 그렇게 우리의 마지막 무대는 뜻밖에 예술적인 갤러리에서 장식했다.
♫ 우리 다시 만나
곧 다시 만나
하늘 위로 추억이 퍼져갈 때쯤에
내 마음 전할 거야
이 느낌 영원해 크게 불러줘
어디서든 들을 수 있게♫
- 더 윈드 <다시 만나>
방송에서 이 노래가 마지막으로 울려 퍼지자 멤버들 춤을 보며 마냥 웃던 아들이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일곱 살 된 아들은 엄마가 일하는 방송을 알람까지 맞춰놓고 본방 사수를 하는 1박 2일의 찐 팬이다. 그동안 최애인 딘딘 씨가 게임에서 져서 밥을 굶거나 야외취침을 하면 속상해서 울었는데. 오늘은 엄마를 잃어버린 아이처럼 꺼이꺼이 울었다.
“정훈삼촌이랑 인우삼촌 가지 말라고 해! 못 보는 거 싫어!”
“다른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면 돼! 다시 못 보는 거 아니야.”
“엄마도 1박 2일 다시 해! 나 이제 엄마 보고 싶다고 안 울고 아빠랑 잘 있을게!”
아이를 안고 달래는데 목구멍이 뜨거워졌다. 어쩌면 지금 내 품에 안긴 아들보다 일박 식구들과 더 자주 밥을 먹었고, 부모님보다 한방에서 잠을 더 많이 잤으며, 남편에게 ‘하숙생’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밖에서 수많은 밤을 보냈는데... 그래, 이별이 그렇게 쉬울 리가 없지. 갑자기 마지막 촬영 때부터 애써 참았던 눈물이 터졌다.
시즌4 마지막 촬영 날, 내 전적을 아는 오래된 스태프들이 아침부터 놀려댔다.
“고작가 눈 마주치면 (눈물) 사고! 눈 마주치지 마!”
나는 오늘이 진짜. 최종. 마지막. 이별 여행이었다. 그래서 미소를 띠며 떠나고 싶었다. 스태프들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일부러 이를 악물고 애써 웃었다. 예전에는 우느라 남기지도 못했던 사진도 많이 찍었다. 그날은 웃으며 안녕하고 싶었다.
마지막 슬레이트를 치고 모든 촬영이 끝났다. 다들 내가 오열할 줄 알았는데 솔직히 시즌4는 마흔이 넘은 나이에 모든 열정을 불태워서 후회가 없었다. 그래서 아주 씩씩하게! 웃으면서 잘 헤어졌는데. 마지막 방송을 보면서 울게 될 줄이야... 나는 아들을 꼭 안고 아이처럼 울었다.
나의 1박 2일 첫 촬영은 2011년 여름이었다. 시즌1 <명품 조연 특집> 고창석, 김정태, 성동일, 성지루, 안길강, 조성하 배우님과 떠나는 여행이었다. 당시 일박 출연자(강호동, 이수근, 엄태웅, 은지원, 김종민, 이승기)도 처음 봐서 떨리는데! 100명이 넘는 스태프들 사이에서 게스트 스태프들까지 섞여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때 여행 콘셉트가 ‘남자들의 즉흥여행’ 이어서 정해진 것 없이 리얼하게 찍기로 했는데.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현장이 훨씬 더 리얼하게 돌아가서 미쳐 돌아버릴 것 같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1박 2일을 완전히 끝낸 2024년의 여름을 얼마나 오랫동안 품고 살아갈까. 시즌1과 시즌2를 마치고 ‘1박 2일이 너무 좋아서’ 10년 만에 돌아온 이 프로그램을 또 얼마나 그리워하게 될까. 매주 답사와 촬영장에서 만 보 걷기는 기본, 이만 보 이상이라도 걷는 날이면 허리디스크가 무너져서 병원에서 주사를 맞았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마라톤 선수세요? 그만 걸어요!”라고 경고하며 멈춰야 한다고 했는데. 진짜 나의 레이스가 끝나던 날, 허리가 아니라 마음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18년 동안 방송작가로 일하면서 26개의 프로그램을 했고 수많은 이별이 있었다. 작가는 프리랜서라 프로그램이 끝나면 다시 안 보는 얼굴이 많다. 하지만 1박 2일에서 만난 사람들은 보고 싶은 얼굴들 뿐... 나와 함께 긴 레이스를 뛰어준 분들에게 정말 고맙다. 덕분에 하루하루 잘 버텨서 쓰러지지 않고 완주할 수 있었다. 지금도 열심히 뛰고 있는 일박 식구들을 진심으로 격하게 응원한다.
오래오래 추억하며 살아가다가 그리워지면, *깔깔깔깔깔 웃으면서 “우리 꼭 다시 만나!”
*깔깔깔깔깔
: 촬영장에서 너무 크게 웃는 고작가의 목소리를 피디님은 그대로 방송 자막에 쓰셨다.
숨넘어가는 작가의 웃음소리로 현장의 재미를 더 부각하고 싶다고. 부끄럽다만 솔직히 나도 내 웃음소리가 크고 특이하다는 걸 인정한다. 깔깔깔깔깔^^
*** 다음 화 예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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