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말고 예능을 합니다.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서
<흑백요리사>가
'방송 부문' 대상을 받던 날!
기립 박수를 쳤습니다.
언젠가 예능판에서 만난 유명한 배우가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
"다음엔 예능 말고 드라마에서 봐요!
작가가 예술을 해야지!"
"예능은 너무 가볍잖아요?
라디오처럼 글을 잘 쓰는 것도 아니고!"
예능국 개구리는 개구지게 웃었지만
그 말이 오래 아팠는데
예능프로그램이 새 역사를 쓰던 날
그 말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예술처럼 예능도 배고프고 고단한데.
예술만큼이나 '정말 좋아해야' 버틸 수 있는 일인데...
무엇보다 예능이 얼마나 재밌는데!
오늘의 여행 콘셉트는
<최고의 밥친구>입니다.
시터 선생님이 집에 계시던 날, 내가 주방으로 갔더니 아들이 양팔을 뻗어 선생님을 온몸으로 막으며 말했다.
"선생님! 조심해요!!!"
고백하건대, 나는 요리를 못 한다.
베이컨을 구울 때 식용유를 넣는 바람에 기름이 사방으로 펑! 펑! 그날 주방에서 불꽃놀이를 했다.
일명 '베이컨 튀김 사건' 이후로 내가 가스레인지 앞에만 서도 남편과 아들은 긴장한다.
결혼할 때도 <1박 2일>을 하고 있어서 외박을 밥 먹듯 했기에...
신혼 때부터 요리는 자연스럽게 남편이 했다. 남편도 요리를 잘하는 사람은 아니었는데 당시 감사하게도 <집밥 백선생>이라는 프로그램이 화제였다. 남편은 백종원 선생님 레시피로 혼밥을 해 먹다가 스스로 '집밥 오선생'이 되어가는 기적이!
아이가 태어나고 모유수유만 내가 했을 뿐, 이유식과 아이 반찬까지 모두 남편의 몫이었다. 아들이 다섯 살 때 어린이집에서 부모님 직업을 소개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때 당당히 아빠의 직업을 '요리사'라고 소개할 만큼... 아들은 요리사급 아빠의 밥을 먹고 무럭무럭 자랐다. 나 역시 우리집 오셰프님에게 항상 감사하고 있다.
여전히 내 요리 실력은 늘지 않았다는 것을 밝힌다. 요리는 내게 최고난도 미션 같다. 그러니 <1박 2일>에서 요리를 담당해 주시는 분들에게 늘 감사할 뿐이다. 특히 춥고 더운 야외에서, 제대로 된 주방도 아닌 가스버너에 의지해서 요리하는 모습은... <흑백요리사> 셰프님들 못지않게 감동적인 장면이다.
시즌 1, 2 때는 (놀랍게도) 작가가 직접 멤버들 밥상을 준비했다. 물론 대부분 지역 맛집에서 음식을 사 와서 다시 끓이거나 식당에서 알려준 대로 조리하는 방식. 그때는 나 역시 요리는 못 해도 정성껏 간을 보며 최선을 다했기에 현장에서는 장금이(?)가 되어갔다. 그래도 가짓수가 많으면 멘붕이 오곤 했다.
그때는 마을 어머니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어딜 가도 그 지역 최고의 밥상을 차려주셔서 감사한 기억이 많다. 이제는 잘 알려진 *게국지도 김치로드 특집 때 손맛 좋은 어머니가 해주신 김치였는데 이후 너무 유명해져서 게국지 식당이 일파만파 생겼다고 들었다. 초딩 입맛인 은지원 오빠가 너무 맛있게 먹어서인지 방송 후 게국지 판매처를 알려달라고 예능국 사무실로 전화가 올 정도였으니까.
*게국지 : 게장의 간장과 갖은양념으로 버무린 배추에 청둥호박과 꽃게를 잘라 넣어 담근 김치. 국물을 약간 붓고 끓여서 먹는다.
시즌4에 돌아와서 가장 신선한 풍경은 '푸드팀'의 존재였다. 전문적인 요리사가 멤버들 식사를 준비한다고?
나는 촌스럽게 "세상이 많이 좋아졌다!"라며 꼰대스러운 말을 해버렸다. 심지어 한식, 일식, 양식, 디저트까지 못 하는 게 없다니! 얼마나 든든한지! 예전 같으면 촬영 날 제일 긴장했던 식사 시간이 이제는 기다려지기까지 했다.
실로 푸드팀의 위력은 대단했다. 촬영 시간이 딜레이 되면 미리 해둔 음식을 다시 따뜻하게 준비하는 게 일상다반사! 멤버들이 너무 고생해서 갑작스럽게 식사 시간을 서두를 때도 빠르게 완벽한 요리를 완성한다. 식사용 말고 인서트 촬영용까지 음식을 넉넉히 하는 편인데도 멤버들이 너무 잘 먹어서 부족할 경우에는 또 새롭게 뚝딱 만들어주시니! 따뜻한 엄마 밥상이 안 부럽다.
멤버들의 식사 메뉴는 보통 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특산물인데 식재료만 제작진이 정하고 메뉴는 푸드팀과 상의한다. 예를 들어 황태가 유명한 지역이면 황태로 다양한 음식을 만들고, '봄동'이 제철이면 푸드팀은 봄동으로 할 수 있는 메뉴를 고민해서 알려주는데. 봄동 전, 봄동 바지락 나물, 봄동 제육쌈, 봄동 된장찌개, 봄동 겉절이, 봄동 물김치, 봄동 스테이크 비빔밥까지... 너무 완벽한 '봄동 한 상'에 재요청할 일이 없다.
메뉴가 픽스되면 제작진이 게임 시뮬레이션을 하듯 푸드팀도 미리 요리를 만들어 본다고 들었다. 보통 촬영 이틀 전에 장을 보는데 최고의 재료를 구하기 위해서 산지직송은 기본, 직접 발품을 팔아 신선한 재료를 고른다고. 요리는 못 해도 장 보는 수고는 알기에 그 정성에 늘 감사하다.
<흑백요리사> 주방은 번쩍번쩍 눈이 부시던데. 일박 푸드팀의 주방은 열악하다. 가스버너로 조리를 해야 할 때가 많고 운이 좋아야 마을회관이나 이장님 댁 주방을 쓴다. 주로 미리 협조를 구한 야외에서 조리를 하는데 진행팀이 만들어준 자바라(천막 하우스)가 최선이다. 개수대도 불편하고 설거지나 식재료를 씻으려면 이동해야 하는 번거로움까지 있다.
극한의 환경에서도 늘 밝은 에너지로 요리하는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요리하는 사람은 다 천사다! 남을 배불리 먹이려는 마음은 절대 악할 수가 없다. 안타까운 것은 푸드팀이 정성껏 준비한 음식을 멤버들이 하나도 못 먹을 때... 그 요리를 뺏는 제작진 마음도 불편하다. 남은 음식은 인서트를 찍는 감독님들과 스태프들이 맛있게 먹는다. 나도 지나가며 한 입 맛볼 때면 무릎을 치게 된다. 너무너무 맛있어서!
한때 푸드팀 때문에 (어울리지도 않는) 사업 구상을 한 적이 있다. 남편이 방송을 볼 때마다 "저거 먹고 싶다!"라고 하길래 <1박 2일> 방송이 끝나는 시점에 '오늘의 1박 2일 밥상'을 공구하는 것이다. 만약 방송에 김치찜이 나왔으면 푸드팀이 만든 김치찜을 일요일 저녁에만 반짝 판매하는 것이다. 나만의 상상으로 끝났지만. 지금도 가끔 푸드팀의 음식이 생각난다. 미식가 정훈 오빠가 반했던 한우(스지)탕, 종민오빠가 매년 봄이면 먹고 싶다던 도다리쑥국, 인우가 예찬했던 한우갈비찜, 세윤오빠가 찬양하는 김치찌개, 입 짧은 딘딘 씨도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우고 선호가 밥을 세 그릇씩이나 먹게 만들었던 밥도둑이 얼마나 많았던가!
이 글을 쓰면서 처음 알게 된 사실은...
촬영장에서 찍은 푸드팀 사진 한 장이 없다는 것이다.
요리 현장은 늘 정신이 없어서, 요리 사진은 식기 전에 멤버들 밥상으로 가져가느라...
그래도 푸드선생님 SNS 추억 덕분에 이렇게 추억을 공유하게 됐다. (고맙습니다^^)
푸드팀이 있기 전에는 작가들이 푸드팀 역할을 했다는 게 생각할수록 놀랍고 대견하다.
감사하게도 매 시즌 음식에 진심인 작가들이 있었다. 시즌 1과 2를 함께했던 지영이는 맛집을 잘 찾고 뭐든 더 맛있게 먹는 방법을 잘 알았다. 지역 식당에서 사 온 음식을 재조리할 때 너도 나도 간을 봤지만 지영이의 컨펌이 최종 결과물이었으니 진짜 장금이였던 것이다.
시즌4에는 <편스토랑>을 5년이나 했던 셰프급 작가가 있었다. 푸드팀이 없는 현장에서는 식사를 전담으로 맡길 정도로 아는 게 많았다. 제철 음식 선택부터 요리에 맞게 그릇을 세팅하는 방법까지 고수였다. 신기한 게 이 작가 이름도 지영이다. 지영이들 덕분에 매 시즌 내가 요리똥손이라는 걸 들키지 않았다. 또 여자 작가보다 만두를 곱게 잘 빚던 재성이, 밥상에 어울리는 식탁보와 작은 포크 하나까지 고민하던 막내 작가들에게 모두 고맙다.
내가 요리는 못 해도 세팅은 자신 있다. (그렇다고 믿고 싶다)
답사 때 먹어본 메뉴의 상차림을 잘 외우는 편이고 요리 동선은 몰라도 밥상 세팅은 어떻게 찍히면 예쁜지 경험치는 많으니까. 승자밥상은 더 먹음직스럽게, 패자밥상은 더 없어 보이는 방법을 고민한다. 우리집 오셰프님에게 미안할 정도로 밖에서는 밥상 시뮬레이션을 많이 해봤다.
모내기하느라 땀을 한 바가지 흘린 후에 먹는 미숫가루는 당연히 맛있겠지만! 세팅에 따라 맛도 달라지는 법이다. 어차피 시청자는 음식을 눈으로 먹기 때문에 보이는 게 더 중요하다. 가끔 카메라 감독님이 "세팅 누가 했어? 잘했다!"라고 하면 어깨춤을 추고 싶을 정도로 기쁘다.
푸드팀이 생겨서 좋은 점이 또 있다. 예쁜 그릇을 많이 소장하고 계셔서 상황에 어울리는 그릇을 빌려주신다는 것.
"누가 기침 소리를 내었는가!"
궁예 특집 때, 궁예가 된 1인만 먹을 수 있었던 고급 간식상을 구상했다. 간식 종류는 작가들이 정했지만 이걸 담을 그릇을 상의드렸을 때 푸드쌤의 센스 있는 아이디어 덕분에 예쁜 상차림이 완성됐다.
요리와 도구는 푸드팀의 도움을 받지만 여전히 세팅은 작가의 몫이다. 어떻게 놓느냐에 따라 차이가 크기 때문에 작가들의 센스 역시 빛나는 순간이다.
비빔밥 하나도 세팅이 끝나면 식사 담당 작가는 나물 이름을 꼼꼼히 체크해서 제작진 방에 공유한다. 그래야 멤버들이 물어봤을 때 피디님이 잘 알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현장에서 후배 작가들의 이런 센스를 칭찬한다. 푸드팀이 만든 요리는 바로 멤버들 밥상 위로 나가기 때문에 피디님이 다 맛볼 시간이 없다. 식사 담당 작가들이 미리 맛보거나 조리 과정을 알려준다. 어떤 재료가 들어갔는지, 어떻게 만들었는지 생생히 전달해 준 덕분에 식사 촬영 분량도 충분해진다.
일박은 잘하는 게 하나만 있어도 큰 힘이다. 한 사람의 재주가 여럿을 살리는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한다.
문득 나는 누굴 살렸나 싶지만 아무튼, 일박 작가들은 밥상 세팅에 진심이고 정말 잘한다.
일박 작가 시절, 지인들이 많이 물어보는 질문이 "전국에서 먹어본 것 중에 뭐가 제일 맛있어?" 또는
"나 이번에 여행 가는데 맛집 어디 가면 돼?"
개인적으로 잊지 못할 맛 BEST 5
울릉도 꽁치물회 (오징어내장탕과 약소고기도 정말 맛있지만 꽁치물회는 체한 날에도 먹고 싶으니 짱맛!)
전북 장수 한우 (유일하게 몇 년 동안 택배로 시켜 먹을 정도로 좋아함)
제주도 지슬(감자)칼국수
경북 봉화 자연산 송이
강원도 강릉 못밥
우리나라 음식은 대체로 맛있다. 어느 지역에 가도 맛집이 정말 많고 리뷰도 믿을만하다. 나는 일박 덕분에 전국 로컬음식은 거의 다 먹어봤고, 유명한 식당도 많이 가봤지만 또 먹고 싶어서 두 번 이상 찾은 음식은 별로 없다. 만약에 지금 딱 한 가지 메뉴를 다시 먹을 수 있다면? '밥차'가 먼저 떠오른다.
특히 시즌1~2 때, 밥차 어머니와 아버지가 해주신 맛! 음식도 맛있었지만 현장에서 두 분의 존재감은 부모님 같았다. 내가 어린 연차라 맨날 뛰어다닌다고, 힘내라고 몰래 달걀프라이 두 개를 챙겨주던 우연단 셰프님. (원래 1인 1 달걀 입니다만^^)
둘째 날 아침 메뉴는 밥과 반찬도 있었지만 항상 버터에 구운 식빵, 달걀프라이, 노란 치즈, 딸기잼이 있었다. 그걸 샌드위치처럼 만들어서 먹으면 아침부터 입맛이 돋던 기억 때문에 지금도 가끔 추억의 밥차 샌드위치를 해 먹는데. 맛은 있지만 밥차에서 먹었던 그 맛이 그립다. 어쩌면 맛이 아니라 사람이 그리운 건가 싶다.
시즌2 때, 밥차 아버지가 현장에서 쓰러진 적이 있었는데 그때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응급실에 갔던 밥차 아버지가 다시 숙소로 오실 때까지 잠도 못 잤다. 다음 날도, 그다음 촬영 날도, 그다음 해에도 두 분이 해주신 밥을 먹을 수 있어서 감사했다.
시즌을 막론하고 촬영장에서 먹는 밥차는 정말 맛있다. 실제로 집밥 느낌이라 분명 아는 맛인데 먹을 때마다 설렌다. 멤버들도 밥차를 굉장히 좋아하고 게스트도 일박의 밥차를 기대한다. 고급 뷔페처럼 대단한 맛은 아니지만 밖에서 고생하다가 먹으니 꿀맛인 것이다. 고생 끝에 낙이 오는 것처럼.
일박 촬영은 보통 오전 5시, 6시부터 시작된다. 그래서 스태프들의 첫날 아침 메뉴는 보통 김밥이나 토스트. 점심은 도시락 또는 햄버거. 촬영 중간에 먹을 시간이 짧고 차로 이동 중 먹기 편해야 하니 어쩔 수가 없다.
나는 평소 위가 안 좋고 잘 체하는 편이라 촬영 전날부터 거의 먹지 않는다. 촬영날도 체하거나 화장실을 갈까 봐, 팔로우 상황에 집중하느라 제대로 못 먹는 편이다. 너무 배가 고프면 초코바나 포도당 캔디를 먹으며 버텼던 날들. 이제와 생각해 보니 저녁에 밥차를 먹을 때가 가장 평온했다. 스태프 모두 엉덩이를 붙이고 쉬어가는 유일한 시간이기도 했고.
<고독한 미식가>라는 콘셉트로 촬영하던 날, 식도락 여행지로 유명한 무안, 함평, 영광을 여행하며 멤버들은 무안에서 낙지를, 함평에서 육회를, 영광에서는 굴비 한 상을 먹었다. 종일 잘 먹는 멤버들을 팔로우하면서 정작 나는 한 끼도 먹지 못해서 유난히 배가 고팠던 날. 마지막 촬영지인 염전에 갔는데 막내작가 유빈이가 "언니 따라오세요!"라고 했다. 잠시 후 유빈이는 작은 접시를 건네며 수줍게 말했다.
"언니 식사 못 하셨을 것 같아서 챙겨뒀어요."
우와! 보리굴비로 만든 주먹밥이라니!
푸드팀이 팔로우하는 작가들이 굶고 있다는 사정을 듣고 만들어줬다지만. 그걸 캐치한 후배작가의 마음이 감동이었다. 염전 앞에서 혼자 주먹밥을 먹는데 내 눈에서도 반짝반짝 소금이 만들어지던 순간.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 (현장에 같이 있는데도) 문자를 보냈다.
"새참 챙겨줘서 고마워. 덕분에 살 거 같다...
정말 '영광'스러운 밥상이었어!"
- 2022년 9월 22일
한 사람의 배려가 나를 살렸다.
이게 바로 일박의 맛이다.
***다음 화 예고***
어느덧 3월, 다음 주에는 따뜻한 제주도로 떠나볼까 합니다.
제주에서 만날 수 있는 000000를 찾아서...
행운의 상징을 함께 나눌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