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반짝이는 계절
오늘 여행의 콘셉트는
<10년 프로젝트>입니다.
이 여행을 준비해서 떠나기까지
10년이 넘게 걸렸거든요.
그리고 하루가 10년 같던
핀란드 촬영 비하인드까지.
개인적으로 가장 잊지 못할 겨울여행
지금부터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서 겨울에는 장소보다 콘셉트가 더 중요한데
이 두 가지 모두 충족해야만 했던 여행이 있다.
바로 '눈꽃여행'
매년 겨울이면 우리나라에서 눈이 많이 오는 지역을 찾는다.
대표적으로 강원도 태백, 평창, 영월, 인제가 단골 여행지고
눈이 많이 와서 '설(雪) 창'이라고 불리는 전남 고창도 빠질 수 없다.
상상만으로는 눈 내린 제주도 한라산을 몇 번이나 다녀왔다.
시즌1부터 가고 싶었던 곳은 전북 무주 덕유산!
그런데 눈 오는 시기에 딱 맞춰서 촬영하는 게 쉽지 않았다.
해마다 미뤄진 덕유산을 나는 오랫동안 마음에 품고 지냈고
시즌4에 돌아와 2년이 넘어갈 무렵, 겨울은 또 오고 있었다.
어쩐지 일박에서 보내는 마지막 겨울일 것만 같았다.
체력적으로 이미 지친 상태였고 촬영만 다녀오면 허리디스크가 말썽이었다.
이때가 아니면 못 갈 거 같아서 더 이상 미루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날이 쌀쌀해진 초가을부터 겨울여행지로 '덕유산 눈꽃여행'을 어필했고
수시로 일기예보를 확인하며 눈이 내리는 시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드디어 10년 넘게 기다렸던 덕유산 촬영을 픽스한 날!
10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듯했는데...
이번에는 하늘이 쉽게 허락해주지 않았다.
1차 작가 답사 때까지만 해도 눈이 안 내려서 황량한 가시나무숲만 보고 와서 크게 실망했다.
답사를 갔던 후배들은 "언니, 여기 촬영해도 되는 걸까요? 눈이 안 오면 어떡하죠?"
"눈이 안 오면 안 오는 대로 찍고! 편집할 때 설경 영상 자료로 보여주면 돼."라고 말했지만...
사실 나도 걱정이 많았다. 솔직히 나 때문에 '망했어요'할까 봐 두려웠다.
일박을 하면서 일기예보에 일희일비하는 게 일상 (그만두고 제일 좋은 게 날씨 걱정 안 하는 거다)
틈날 때마다 기도했다. 촬영 전까지 제발 눈이 오게 해달라고.
촬영 중에 폭설을 맞아도 좋으니! 그냥 눈을 펑펑 퍼부어달라고...
다행히 간절한 기도가 통했다.
목요일 작가 답사 후, 주말에 눈이 많이 왔고 픽스 답사를 갔을 때는 이미 겨울왕국이 돼있었다.
이대로 추운 날씨가 계속되면 눈이 꽁꽁 얼어서 *상고대가 유지될 것이다.
(*상고대 : 나무나 풀에 내려 눈처럼 된 서리)
해발 1,520m까지 이렇게 편하게 올라갈 수 있다니! (곤돌라 & 케이블카 만든 사람은 천재!!)
곤돌라를 타고 20분 정도 올라가는데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설경을 구경하느라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사방이 눈으로 덮인 세상은...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다.
픽스 답사 때, 곤돌라를 같이 탄 피디 & 작가의 리얼한 감탄사를 나도 이번에 제대로 들었다.
핀란드 촬영을 다녀온 피디님이 "핀란드보다 예뻐요"라고 말하는 것을...
그렇다, 우리는 두 달 전 '신년특집'으로 눈의 나라 '핀란드'에 다녀왔다.
핀란드에서 공황장애 말고 공항장애가 올 뻔했던 (공항에서부터 힘들었던) 기억을 꺼내보자면...
신년특집 <열심히 일한 당신, 지금 당장 떠나라!>라는 콘셉트로
핀란드 산타마을, 호주 울루루, 강원도 영월로 떠나는 특별한 여행을 준비했다.
시작은 참 좋았다.
나의 버킷리스트 중에 하나가 핀란드에서 오로라 보기였으니까. 해외촬영은 제작비를 아끼기 위해 답사를 작가 2명, 피디 2명만 가기로 했는데. 복불복 같은 선택 결과, 내가 핀란드 담당작가가 되었다. 속으로 '휘바휘바!'를 외쳤다.
그날부터 설레던 내 영혼은 핀란드에 자주 다녀왔다. 평소 아들에게 먹이는 자일리톨도 많이 사 오고, 귀여운 무민 굿즈도 담아와야지! 산타클로스를 만나면 어떤 말을 할까, 어린아이처럼 소원을 빌어볼까. 새삼 소원을 생각하는 일도 재미있었다.
그리고 가장 설렜던 이유는... 아이를 낳고 6년 만에 처음으로 떠나는 첫 해외여행이었다. 일박의 수많은 스태프 중에 엄마인 사람이 나뿐이고, 대외비라 남편 말고는 말할 수 없는 비밀이었지만 동네방네 소문을 내고 싶을 정도로 기뻤다. 그동안 수많은 외박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진정한 자유부인이 된 기분이랄까. 비행기를 타기 전까지만 해도...
현실은 역대급 가장 힘든 여정이었다.
답사는 거의 무박 5일이었는데. 비행기에서 보낸 (편도) 14시간이 가장 편했을 정도로 일정이 빡빡했다.
사실 핀에어 이코노미석이 절대 편하지 않았는데. 짧은 내 다리에 피가 안 통한다며 툴툴거렸더니 남편이 "촬영 때는 사비로 비즈니스석 끊어줄까?" 했다가 티켓비를 알아보고 "그냥 한 번만 더 참아."라고 했다. 참는 건 제일 잘하기 때문에 남편의 희망고문도 참아주기로 했다. 그래도 이코노미석 중에 원하는 좌석으로 바꾸는 비용은 사비를 썼다. 그렇게 복도석에 앉아 다리가 부을 때마다 복도를 걸어 다니면서 피로를 풀었다.
막상 핀란드에서는 사비를 쓸 시간도 없었다. 해외촬영은 빠듯한 제작비만큼 시간도 부족하다. 짧은 시간 안에 답사를 마쳐야 해서 해가 떠있을 때 최대한 많이 보고 해가 지면 오로라 헌팅을 다니느라 잠을 거의 못 잤다. 오로라를 만날 수 있다는 희망으로 새벽 내내 눈밭에 서있었는데. 그때 오로라를 봤어도 못 봤을 것이... 눈이 거의 비몽사몽으로 풀려있었다. 오로라를 기다리다 지쳐 잠시 눈밭에 누워있는데도 스르르 잠이 왔으니까... 당시 피디님과 작가 후배는 "이러다 죽어요..."라며 내 어깨를 흔들어 깨웠다. (생명의 은인이다)
12월이면 수많은 관광객이 찾아가는 핀란드의 대표 관광지!
로바니에미는 산타마을로 유명한 도시다.
산타클로스의 공식 거주지로 실제로 영화 속에 나올 것 같은 산타할아버지를 만나 기념사진도 찍을 수 있고, 산타우체국에서 편지도 쓰고, 순록썰매를 타고 눈 쌓인 자작나무숲을 달리는 낭만도 충분한 곳.
산타마을은 꿈같은 세상이었다. 산타할아버지가 있다고 믿었던 9살 때로 돌아간 것처럼 동심이 깨어나는 곳. 핀란드까지 오는 길이 너무 지쳐서 다시는 못 올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곳에 오니 사랑하는 아들과 다시 한번 와야겠다는 꿈이 생겼다. 그때는 반드시 비즈니스석을 타고... 남편은 배려인지 아닌지 안 가겠다고 한다. 고~~~오맙다!
무엇보다 사진 속 레스토랑에서 먹은 연어스테이크와 연어수프는 평생 잊지 못할 맛이다. 식사를 마치면 불에 달군 커피에 블루베리파이도 별미다. 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연어가 먹고 싶어서 핀란드에 가고 싶을 정도로... 그리운 맛이다. (참고로 저는 국내의 모든 지역도 명소보다 '음식'으로 기억하는 편입니다. 꿀꿀~)
핀란드는 답사부터 촬영까지 세 시즌 통합 역대급으로 피곤했던 여행이었다. 아마 핀란드를 1박 2일 일정으로, 아니 거의 무박 2일로 여행한 사람은 우리팀 말고 없을 거다. 핀란드스러운 (사우나와 이글루 호텔) 숙소를 어렵게 구했는데. 한 시간이나 누워있었나? 하하하, 그저 웃지요.
조식도 못 먹고 아침 일찍 체크아웃. 공항에서 가장 저렴한 샌드위치를 먹고 급하게 헬싱키로 이동하던 둘째 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출연자와 스태프들에게 정말 미안했던 기억... 당시 핀란드 코디님께서 다른 프로그램들에 비해 "일박은 팀워크가 너무 좋아 보인다"며 칭찬하셨는데. 그때 누군가 농담으로 "가난한 집이 화목하다고 하잖아요?"라고 해서 와닿았다. 흥부의 아이들처럼 햄버거 하나에 감자튀김을 나눠먹는 기쁨이란... 정말 따습고 든든했다.
햄버거 세트도 핀란드보다 훨씬 싸고, 물과 반찬을 무료로 리필해 주는 고마운 나라.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보자.
무주 촬영날은 영하 14도까지 떨어져서 체감 영하 20도였다.
산을 오를수록 칼바람에 얼굴이 시리고 루돌프코처럼 빨갛게 익어갔다.
너무 추워서 손가락, 발가락이 얼음덩어리 같았다. 장갑, 모자, 마스크, 핫팩도 소용없는 날씨였다.
몸은 혹한기처럼 힘든 날이었지만, 개인적으로 마음은 가장 후끈한 날이었다.
오랜 숙제였던 덕유산 눈꽃여행을 성사시켰고, 10년의 프로젝트를 마침내 완성했으니까.
핀란드에 같이 다녀왔던 정훈오빠는 "핀란드보다 춥다! 그런데 핀란드보다 더 예쁘다"
딘딘 씨는 너무 추워서 "히말라야에 온 것 같다"라고 했다. 그래도 "살면서 다시 못 볼 경험이다"
종민오빠는 산을 오르며 "역시 자연은 그냥 주지 않습니다. 힘들 때, 그때 줍니다."
예능에서 웃음기를 사라지게 만든 오르막길에서도 명언은 탄생했다.
고생 끝에 낙이온 다는 말처럼 아름답고 귀한 것은 쉽게 얻지 못한다는 것을, 나는 일박에서 배웠다.
드디어 최종 목적지인 덕유산 향적봉에 도착했다.
겨울철 나뭇잎이 다 떨어지고 볼품없이 됐다고 생각하지만
눈을 만나면 환상의 겨울왕국으로 재탄생하는 곳.
바로 무주 덕유산 향적봉이다.
향적봉은 '향기가 쌓이는 봉우리'라는 뜻으로
겨울 향기를 제대로 만끽할 수 있다.
세 시즌 통합! 국내 겨울여행지 중에 최고의 장관이라고 생각한다.
올라오는 길에 추워서 포기하고 싶다고 했던 스태프들도 모두 감탄하며 "오길 잘했다"라고 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대자연을 만나면 한없이 작아지는 사람이기에 언제나 겸손한 마음이 생긴다.
내가 여기 오자고 했지? 가 아니라, 우리가 일박 덕분에 이런 풍경을 볼 수 있구나.
만약 일박을 하지 않았더라면... 전국을 여행할 수 있을까? 각 지역의 맛을 알게 됐을까?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을까? 싶을 만큼. 일박은 내 감사의 원천이다.
솔직히 우리나라 여행지 중에 어디가 좋냐고 하면, 캐릭터 맞춤형으로 추천해주고 싶어서 고민이 깊은데...
덕유산은 남녀노소 누구나 반할 곳이니까 무조건 추천한다!
단, 등산 코스는 어린아이도 충분히 올라갈 수 있는데. 칼바람이 몹시 추우니 히말라야를 간다는 각오로 완전 무장을 해야 한다. 핫팩, 모자, 귀도리, 장갑, 마스크, 등산화(*아이젠은 상황에 따라 필요), 텀블러에 따뜻한 물은 필수! 꼼꼼하게 준비를 마쳤다면 올 겨울에는 눈의 꽃을 찾아, 덕유산으로 떠나보시길!
인생에서 가장 반짝이는 계절이 될 것이다.
*참고로 국립공원 홈페이지에서 '덕유산 설천봉 cctv'로 실시간 영상 확인이 가능하니
설산을 미리 확인하고 가면 좋겠다.
***다음 화 예고***
예능프로그램에서 출연자들이 제작진을 '방송국놈들' 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아십니까?
저도 방송국놈이라... 차마 어디서도 못 했던 이야기. 다음주에 용기내서 털어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