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정선-안동-대전-목포-해남-완도-제주
일박 촬영장에서는
별 것도 아닌데 의미가 생겨요.
땡볕에 생긴 기미 주근깨,
비에 젖은 운동화,
구멍 난 양말,
오뉴월 개도 안 걸리는 감기,
무더위에도 정들던 시절.
오늘의 여행 콘셉트는
<뜨거운 여름>입니다.
2023년 6월 23일~25일. 그해 여름의 온도, 습기가 아직도 생생하다.
'1박 2일' 촬영도 힘든 걸 알면서도 우리는 '2박 3일' 여행을 준비했다. 고백하면 여름에는 시청률이 떨어진다. 날씨가 좋으니 놀러도 많이 가고 휴가철이니 어쩔 수가 없다. 이목을 끌만한 여행이 필요했고 국토대장정처럼 전국일주에 도전하고 싶었다. 더 솔직히 고백하면 당시 분량을 넉넉히 만들어서 여름휴가를 편하게 다녀올 의도도 (나는) 있었다. 전년도에는 작가들이 6월부터 (촬영주를 피해) 2주 간격으로 한 명씩 휴가를 가다 보니 나는 11월에 가을휴가를 다녀왔기에.
23일 새벽 6시, KBS 본관 앞에서 오프닝을 시작했다. 멤버들은 처음으로 3일 동안 떠나는 여행에 설렘과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오늘 여행의 콘셉트는 전국 추리 일주. 주어진 힌트를 보고 멤버들이 직접 추리해서 여행지를 찾아가면 된다. 3일 동안 강원도,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 제주도까지 도별로 한 도시씩 여행하면서 그 지역 필수코스(ex. 명소 사진 찍기, 지역 음식 먹기)를 마쳐야 다음 여행지로 이동이 가능하다. 이틀 후 최종 목적지는 제주도 성산 일출봉이다.
25일 오후 4시까지 성산 일출봉에 도착하면 미션 성공, 실패하면 다음 주 촬영은 '공포의 무인도 특집'이라고 공표했다. 작년에 무인도 촬영을 다녀온 정훈오빠와 인우는 '무조건 성공해야 한다'며 각오를 불태웠고, 작년에도 무인도 담당이었던 나 역시 멤버들과 한마음이었다. 무인도 촬영을 피하기 위해 멤버들 뿐 아니라 스태프들도 일사천리로 움직였던 촬영이 아닌가 싶다.
첫 번째 여행지 힌트는 이 노래였다.
♬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네주게
싸리골 올동박이 다 떨어진다
떨어진 동박은 낙엽에나 싸이지
잠시잠간 임그리워서 나는 못 살겠네
멤버들이 듣고 분석하다가 '정선 아리랑'이라고 유추했고 (정답!) 강원도 정선을 찾아가는 과정은 아리랑 가사만큼 간절했는데... 혹시나 잘못 찾아가면 멤버 차를 따라가는 수많은 스태프들이 고생한다는 것을 걱정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 마음이 예뻤다. 솔직히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니까 멤버들이 잘못 찾아가도 분량이 되고 실패해도 '괜찮아! 예능이야!'라고 생각하는데. 본인들의 헛걸음보다 스태프를 생각하는 마음이 고마웠다. (그때는 갈길이 바쁘고 정신이 없어서 이런 마음을 전하지도 못했지만)
첫 번째 여행지는 강원도 정선 아우라지.
구절리에서 흐르는 송천과 임계면에서 흐르는 골지천이 합류해 어우러진다 하여 '아우라지'라는 이름이 붙여진 곳. '아는 만큼 보인다'고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면서 지역명의 뜻을 알면 더 마음이 간다. 이곳은 강을 사이에 두고 만나지 못한 사랑하는 남녀의 애틋함을 담은 [정선아리랑-애정 편] 가사의 유래지인데. 아우라지에 가면 노랫말처럼 뱃사공이 운전하는 줄배를 탈 수 있어서 신기했다. 그림 같은 풍경은 덤이니 날이 맑을 때 가보기를 추천한다.
점심은 강원도 지역 향토 음식인 '콧등치기' 국수를 먹었다. 정선의 특산물인 메밀로 가루를 내어 만든 칼국수인데. 탱탱하고 쫄깃한 면발을 호로록 빨아들이면 '콧등을 칠 정도로 탄력이 좋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역시 아는 만큼 보여주기 위해 멤버들은 콧등에 국수를 올려치며 식사를 즐겼다.
다음은 두 번째 여행지에 대한 힌트다.
1번 악보는 '바람~에 날려~버린~'으로 시작하는 노래. 가수 진성 님의 <안동 역에서> 첫 부분이다.
2번 그림과 숫자의 의미는 '보물 2104' 우리나라 보물 제2014호이자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안동 병산서원의 '만대루'를 뜻한다. 멤버들은 생각보다 쉽게 문제를 풀어 두 번째 여행지 경상북도 안동으로 향했다.
답사 때 병산서원을 보고 크게 감탄했다. 조선시대 때 만들어졌다는 서원은 '병산'이라는 이름처럼 사방에 산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어 안에서 밖을 바라보는 풍경이 끝내준다. 전국을 떠돌며 누각, 정자를 볼 때마다 옛 선비들의 안목에 감탄하는 이유다. 여기서는 시가 절로 써지겠다, 술이 절로 들어가겠다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곳에 건축물을 세웠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감탄사가 나온 곳은 화순의 적벽, 진주의 촉석루, 이팝나무 시즌의 밀양 위양지가 있다. 기회가 된다면 꼭 가보시기를!) 안동은 하회마을, 도산서원이 유명한데 병산서원과 월영교에도 꼭 가보길 추천한다. 월영교는 낮에 가도 예쁘지만 밤에 보면 더 예쁘다. 벚꽃 명소로도 유명하니 봄에 가면 더 좋겠다.
세 번째 힌트는 월영교 입구 물품보관함에 있었다. 보라색 봉투 안에는 안동발 영주행, 영주발 대전행 기차표가 들어있었는데. 기차 환승 경험이 없는 서울촌놈(?) 멤버들은 우르르 쏟아지는 기차표 12장을 이해하는 데도 시간이 걸렸다. 오늘 아침 6시에 모였던 멤버들은 다음 날 새벽 6시에 첫 기차를 탄다는 사실에 지친 눈을 껌뻑거렸다. 하긴, 서울-정선-안동까지 오느라 어느 때보다 긴 하루를 보냈다.
세 번째 여행지는 충청도 대전. 이 지역의 필수 코스는 대전에서 가장 유명한 빵집 '성심당'에서 빵 사기.
멤버들은 목적지를 알고 기차를 타고 돌고 돌아 대전에 온 것에 열광했다. 아침 일찍부터 건물 밖으로 줄을 서있는 사람들을 보니 빵집의 인기를 실감했다. 빵을 사고 기분이 한껏 좋아진 멤버들은 현장에 있는 스태프들에게 커피도 사줬다. (20명은 됐던 거 같은데) 그렇게 공짜로 얻어먹는 커피는 진짜 꿀맛이었다. 덕분에 오늘부터 다시 '1박 2일' 촬영이 남아있다는 사실을 잠시 잊기로 했다.
다음 여행지 힌트는 백양사 휴게소에서 공개하기로 했다. 장거리 여행인 만큼 멤버들은 지치지 않게 돌아가며 운전했고 그 모습은 새삼 훈훈했다. 멤버들도 평소라면 아침밥을 먹고 헤어졌을 시간에 같이 있는 게 낯설면서 좋다고 했다. 하루를 더 보내는 것뿐인데 정은 몇 배나 깊어지고 있었다.
백양사 휴게소에서 두 지역에 대한 힌트가 공개됐다. 힌트 A는 LP로 들려준 <목포의 눈물> 노래와 '갓바위' 사진. 힌트 B는 [유선호의 꿈]과 '이순신 장군' 사진. 한 곳은 당연히 '목포'였고, 유선호의 꿈은 그날 본인도 "내 꿈이 뭐였지?" 하며 되물었지만 제작진이 알고 있는 선호의 꿈은 '해남'이었다. 이제 멤버들은 두 팀으로 나눠서 목포와 해남으로 여행을 떠난다.
나와 함께한 목포 여행자는 연정훈, 김종민, 딘딘 씨였는데. 셋의 캐미가 유독 좋았던 촬영이었다. 목포의 9경(9가지의 풍경) 중에서 1경 유달산, 2경 목포대교(일몰), 3경(갓바위)을 배경으로 눈물 셀카를 찍는 게 미션이었는데. 정훈오빠가 동생들이 웃기는 와중에도 눈물을 뚝뚝 흘려서 명품배우로 인정받았다. 또 목포의 9미(9가지의 음식) 중에서 3가지 음식을 먹고 1분 먹방 영상 촬영하는데 '목포의 맛'에 흠뻑 빠져서 자칭 'VJ특공대를' 찍었다.
해남 여행자인 문세윤, 나인우, 유선호 씨는 땅끝마을 전망대에서 인간탑 쌓기 미션을 했다. 문제는 인우와 선호가 탑을 쌓고 그 위에 세윤오빠가 올라갔다고... 상상도 못 했던 그림이라 현장 사진을 받고 폭소했다. 유난히 분홍빛으로 물들어가던 노을이 예뻐서 사진도 많이 찍었다고 했다. 어느 때보다 멤버들의 사진이 넘치게 전달된 여행이었다. 촬영이 힘들면 사진 찍을 여유가 없는데. 이번 여행은 몸이 고생스럽긴 했어도 확실히 좋았구나! 같이 있어서 좋았고, 또 떨어져 있어서 그리워했구나, 그렇게 친하다고 생각했는데도 더 가까워지는 마음이 보였다.
그날 밤, 스태프 숙소였던 완도 프라하호텔에서 작가의 서프라이즈 생일파티를 했다. 아무리 바쁘고 몸이 고된 순간에도 마음을 쓰는 사이. 우리는 프라하호텔 이불을 들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숙소 이름만큼이나 낭만적인 밤. 오늘 촬영이 세 번째라는, 지혜작가가 말했다.
"일박은 참 정들 게 많네요..."
매일 달리는 고속도로에서 보는 풍경과 매일 보는 일출과 일몰이 진짜 안 질리게 예쁘고 시골밤에 쏟아질 것 같은 밤하늘은 늘 감동이다. 하루도 쉬운 날은 없지만 숙소에 누울 때면 무탈한 하루가 얼마나 감사한지 잘 알고 있기에... "수고했어 오늘도!" 나누는 말 한마디에 또 정이 든다.
예전에 다른 프로그램에서 촬영 반나절만에 그만둔 작가가 있었다. 이렇게 힘든 일은 못 하겠다고. 나는 그녀가 정말 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현실적으로 힘든 일은 피하는 게 맞지. 그래서 이렇게 고생스럽게 열일하는 스태프가 얼마나 귀하고 고마운지 잘 알고 있다.
2박 3일 여행의 끝! 대망의 마지막 촬영지는 원래 제주도 성산일출봉이었다. 그런데 한밤 중에 제주도에 가있던 선발대에게 연락이 왔다. 갑자기 제주도에 비가 오고 강풍주의보 때문에 성산일출봉 등산로 입구를 통제한다는 소식이었다. 이대로면 출입 통제는 90% 확정이라고 했다. 내일 배를 타고 제주도를 가야 하는데 과연 배는 뜰 것인가... 서울에서 완도까지 내려온 거리만큼이나 막막한 밤이었다.
제작진은 비상회의를 시작했다. 성산일출봉 입구에서 촬영을 마무리할 것인가? 어차피 성산일출봉에 올라갈 게 아니라면 다른 장소를 갈 것인가! 나는 문득 떠오른 장소를 추천했다. 비가 와야만 볼 수 있는 '엉또폭포'
누군가는 답사도 가보지 않은 곳에 가는 걸 불안해했고 선발대 중에도 엉또폭포를 가본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시즌1 <폭포특집>을 준비할 때 첫눈에 반한 곳이었다. 시즌4 메인 PD님인 이정규 피디님도 시즌1을 함께해서 알고 계셨지만 촬영 날 비가 오지 않아서 맑은 절벽만 봤던 기억. 마치 복불복처럼 폭포를 장담할 수도 없으니 고민은 깊어졌다.
시즌1 때는 작가 수가 적어서 오일장특집, 폭포특집, 단풍특집, 김장특집 등 특집을 준비할 때면 작가들이 각 지역으로 흩어져 '나 홀로 답사'를 다녔다. 각자 맡은 지역의 시장, 폭포, 단풍 명소, 김장 명인을 만나러 다니는 것이다. 그때 나는 강원도와 제주도 담당이었는데 1일 5 폭포 이상을 보기 위에 다람쥐처럼 산을 많이 탔다. 폭포는 왜 다 산에 있는가? 근육통에 시달릴 때, 엉또폭포는 계단 몇 개만 올라가면 폭포를 볼 수 있어서 더 기억에 남는다. 답사 때도 비가 많이 오지 않아서 웅장한 폭포는 아니었지만 자료 영상을 많이 봤기 때문에 의심하지 않고 추진했다.
나만의 추억을 곱씹느라 잠을 설친 다음 날, 다행히 제주도로 가는 배는 떴고 무사히 제주항에 도착했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제주도는 비가 많이 오고 있었다. 제주항의 작은 사무실을 빌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메인피디님과 메인작가님과 회의를 했는데... 이틀 전 고지하기를 '최종 목적지를 성산 일출봉'으로 했기 때문에, 초심으로 가야 한다는 의견 VS 초심보다 중요한 것은 방송용 그림이라는 의견이 팽팽했다. 멤버들 입장에서 생각해 봤다. 성산일출봉 입구에서 "오늘은 못 올라간다고 합니다."라고 하면 멤버들도 실망하지 않을까? 우리는 여행프로그램이니까 마지막까지 멋진 풍경이라도 보자는 판단이었다. 그렇게 마지막 여행지가 결정됐다.
우리가 달려간 곳은 엉또폭포. 어제부터 비가 많이 온 덕분에 폭포수처럼 물이 넘쳤다. 지금까지 비 오는 촬영날이 싫었지만 오늘은 비가 쏟아지는 게 반가웠다. 무엇보다 멤버들이 폭포가 너무 멋있다며 너도나도 인증 사진을 찍었다. 전화위복, 뜻밖에 최고의 엔딩을 찍었다. 빗물인지 눈물인지 알 수 없는 뜨거움이 얼굴에 흐르던 날... 그즈음 내가 일박을 오래 했으니 그만둬야 하나, 고민했던 마음까지 씻겨 내려가는 듯했다.
긴 촬영을 무사히 끝내서 다행이고 전국으로 뿔뿔이 흩어져 이 여행이 가능하도록 완벽하게 준비해 준 선발대에게 고마웠다. 어느 때보다 전우애가 불끈하던 2박 3일... 인생에서 잊지 못할 뜨거운 여름이었다.
***다음 화 예고***
1박 2일 시즌1 '시청자 투어'를 기억하십니까?
다음 주에는 시청자 투어 3탄!
'1세부터 100세까지' 시청자와 함께한 추억 여행을 떠납니다.
다음 주에도 금요일 낮 12시, 출발(행)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