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외등, 할머니
곧 설날입니다.
보고 싶은 가족들,
자주 만나지 못한 친구들에게
오랜만에 안부인사를 전하며
올해 소망을 물어보는 건 어떨까요?
뜻밖에 내가 원하는 걸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오늘 여행의 콘셉트는
<시간을 되올 수 있다면>입니다.
몸은 멀리 있으나
마음속에 살아있는
나의 할머니에게
매년 방송국놈들은 연말이 제일 바쁘다. 시상식은 기본이고 새해 특집, 신년 특집, 설날 특집이라는 가지각색 포장지를 둘러싼 '새 프로젝트'를 준비해야 하니까. 이 모든 프로젝트는 대부분 설 연휴에 방송된다. 연휴 동안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1~2회 방송 후 시청률이나 화제성이 좋으면 레귤러 프로그램, 일명 정규방송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다. 잘 되면 프리랜서 작가는 한동안 밥벌이 걱정 없이 살 수 있으니까.
일박은 감사하게도 처음부터 레귤러 프로그램이었지만 매년 새 프로젝트를 준비하기는 마찬가지다. 새해 첫 방송되는 촬영지는 어쩐지 새해의 포문을 잘 열고 싶어서 욕심이 나고 '설날특집'은 일 년 중 가장 힘을 주는 여행이다. 평소에는 계절에 어울리는 여행지가 우선이지만 설날특집은 '의미 있는' 장소나 사람, 여행 콘셉트를 고민한다.
2024년 '설날 특집'으로 준비한 여행 콘셉트는 <떡국 못 먹으면 전쟁>
'떡국을 먹어야 살아남는' 여행으로 게임에서 이기면 떡국을 먹고 지면 굶는다. 한편 떡국을 못 먹은 멤버는 명절의 대표 음식인 전을 500장 부치는 게 벌칙이다. 그러니까 떡국을 못 먹으면 '전'쟁이라는 뜻이다. 멤버들은 의문을 품었다. 우리끼리 전을 왜 500장이나 부치냐? 스태프들을 위해서 하는 거냐? 그럴 리가! (우리 그런 욕심은 없습니다)
오늘의 베이스캠프는 문경의 현리마을.
현리마을은 설에 '떡국만 해 먹는 풍습'이 있다. 진짜 다른 명절 음식 없이 '떡국만' 드신다고. 그래서 며느리들이 좋아한다는 생생한 후기를 듣고 며느리인 나도 격하게 공감했다. 특히 이장님 아내 분이 우리 동네에서는 명절증후군이 없다며 "채 씨들이 그거 하나는 잘 지켜왔다"며 명절날 '떡국만' 끓이는 전통을 극찬하셨다. (언젠가 며느리가 생기면 우리 집도 '떡국만' 전통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한 순간) 물론 나는 연휴에도 일하는 며느리라 시댁에서 전을 부친 적이 없지만. 고모가 일곱 명인 나에게 시월드는 어릴 때부터 익숙한 세계였으므로.
어느 지역이든 답사를 가면 꼭 들리는 곳이 마을회관이다. 촬영 때 촬영 공간으로 대관도 하고 주민들에게 마을 정보를 들을 수 있어서 흥미롭다. 문경 답사 때도 어르신들과 이야기를 나눈 덕분에 '떡국만' 전통을 알게 됐고, 멤버들이 전을 부쳐서 더 풍요로운 명절밥상을 차리기로 결정했다.
어느 마을이나 사연 없는 집이 없다. 50년째 며느리가 해주는 밥을 드시며 고스톱을 즐기는 왕할머니, 50년째 고부 갈등은 없지만 시어머니가 계신 고스톱판은 끼지 않는다는 며느리의 신조에 감탄했다. 이장님 부부는 결혼 43주년인데도 여전히 손을 잡고 팔짱도 낀다고 해서 할매들 마음까지 설렜다. 밤새도록 트로트 방송을 보다가 잠들기 때문에 거실에 침대가 있다는 '이찬원 러버' 할머니, 트로트에는 관심이 없지만 빨간색 손톱과 빨간색 액세서리를 좋아하는 '레드 러버' 할머니, 하루에 막걸리 한 잔으로 살아갈 힘을 얻는 '막걸리 러버' 할머니까지. 각자의 사연에 울고 웃다 보니 헤어지기 섭섭한 마음까지 들었다.
이별을 앞두고 '설날 특집'이라서 예의상 했던 마지막 질문이 있었다.
"할머니 새해 소망은 뭐예요?"
다 늙어서 소망은 무슨, 안 아프고 건강하기만 하면 됐지, 이렇게 매일 마을회관 나오는 거라고 말할 때
누군가 간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서울에 한번 가보고 싶어. 자식들이 서울 사는데 서울 여행을 못 해봤어."
서울 여행이라... 그 순간 나는 이번 여행의 콘셉트를 바꾸고 싶을 정도로 간절한 꿈이 생겼다. 전국의 시골 할머니들을 모시고 서울투어를 하는 것. 촬영을 4일 앞두고 다 뒤집을 수는 없었지만. 아직도 가끔 생각한다. 문경 할머니의 새해 소망은 이루어졌을까. 나는 지금도 얼굴 모르는 할머니들과 서울여행을 하는 꿈을 꾼다.
문경 할머니의 소망을 곱씹던 어느 날
오랫동안 가슴에 묻어둔 나의 할머니를 추억했다.
할머니는 서울에 살면서도 서울을 즐기지 못했다.
칠십 평생을 광주직할시에 살다가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요즘말로 '공동육아'를 하기 위해서 상경했다. 내 기억 속에 할머니는 늘 집과 대문 사이, 마당에 앉아계셨다. 코카콜라가 적힌 플라스틱 의자에, 집 밖에도 안에도 머물지 못했는데... 그때는 살갑게 물어볼 생각도 못했다.
자식들 다 키워놨는데 또 손주들을 키우려고 고향을 떠나온 할머니. 아는 사람도 없고 길도 복잡한 서울이 얼마나 낯설었을까. 지금은 휴대폰만 봐도 재미있는 세상이지만 그때는 드라마 본방시간을 기다려야 했으니 해가 질 때까지 사람 구경을 하며 심심함을 달랬을까. 친구들과 우물가에 모여서 수다 떨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었겠지... 할머니에게 감정 이입을 해보면 하루가 정말 길었겠다, 너무 외로웠겠다. 우울이라는 우물에 빠져서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문경 할머니처럼 우리 할머니도 서울 여행을 하고 싶진 않았을까? 할머니가 다닌 곳이라곤 동네 슈퍼, 붕어빵 노점상, 소위 동네 ‘약장사’라고 부르는 곳. 노인들에게 물건을 파는 곳에서 휴지, 세제 등을 공짜로 받아오셨다. 할머니의 무료함을 그나마 달래주는 유일한 외출이었지만, 그런 데 가지 말라는 자식들의 가시 돋친 말에 마당에 머물렀을까. 나는 오히려 옆집 할머니처럼 옥장판과 영양제도 못 사 오고 돈 걱정만 하는 할머니가 답답했다. 목욕탕도 돈이 아까워서 안 가고 외식은 생각도 못했던 할머니.
나는 짜짱라면을 먹을 때마다 할머니 생각이 난다.
어렸을 때 "일요일은 내가 요리사!"라는 광고를 따라 일요일마다 짜장라면을 먹었는데. 할머니는 국물이 흥건한 '짜장국물라면'을 끓여줬기 때문이다. 광고랑 다른 비주얼에 실망한 남동생은 울었고 나는 짜장라면 '조리법'을 또박또박 읽으며 할머니가 잘못한 거라고 나무랐는데. 할머니는 라면은 원래 밥 말아먹는 거라며 냄비에 찬밥 한 덩이를 풍덩 넣어버렸다.
이게 뭐냐고, 묻기도 전에 까만 밥과 면 사이에 윤기가 흐르니 꿀꺽, 군침이 돌았다. 어느새 눈물을 그친 동생이 먼저 한 숟가락 크게 떠먹더니 웃으며 말했다.
“짜장면보다 맛있다! 역시 라면은 밥을 말아먹어야 제맛이지!”
나도 바로 짜장밥을 뜬 수저 위에 면발을 토핑처럼 올려서 한 입. 짭짤한 짜장밥과 쫄깃한 면발이 잘 어울려서 입안에서 포크댄스를 추는 듯했다. 그냥 웃음이 나는 맛이었다. 그 후로 오랫동안 할머니표 짜장라면은 우리 남매에게 특식이 되었다. (놀랍게도 지금도 종종 그렇게 먹는데 밥도둑이 따로 없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할머니는 한글을 몰랐다. 애초에 짜장라면 조리법은 읽지도 못했다. 그냥 오래전부터 국물라면을 끓였던, 몸에 익은 방법으로 만들었을 뿐. 어쩌면 할머니는 한글을 몰라서 답답했을 텐데 그 시절 한글을 알아가는 손주들에게 차마 글을 모른다는 말은 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 억울한 마음을, 시간이 흘러 내가 아이를 낳고서야 알았다. 아들에게 책을 읽어주다가 할머니가 책 한 권을 읽을 수 없었다는 사실에 눈물이 났다. 아들의 삼시 세끼를 준비하며 할머니가 매끼 따뜻한 밥상을 차려내는 일이 얼마나 대단한 정성인지도 깨달았다.
우리 남매를 다 키워놓고 할머니는 기억을 점점 잃어갔는데. 그때 할머니가 반복했던 행동이 바로 밥을 짓는 일이었다. 평생 식구들을 굶기지 않으려고 밥을 했던 책임감이 할머니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치매로 본인의 이름을 완전히 잊었을 때도 할머니는 밥을 지어 집안 곳곳에 숨겨뒀다. 그때마다 나는 찬장, 옷장, 신발장, 베란다까지 뒤져가며 푸른곰팡이 가득한 밥을 찾는 게 일이었는데. 처음엔 화가 났고, 나중에는 숨은 그림 찾기를 하듯 ‘숨은 밥그릇 찾기’에 진심이었다. 그 시절 푸른 밥덩이를 버릴 때마다 얼마나 울었는지 지금도 밥 한 숟가락 버리는 게 슬퍼서 꾸역꾸역 먹는다. 할머니 덕분에 밥심 하나는 제대로 키워진 셈이다.
시간을 되올 수 있다면...
나는 할머니에게 책을 읽어주고 싶다. 서점에 가서 할머니가 보고 싶은 그림책을 한가득 사주고 싶다.
장미나무가 꽃피는 마당 한가운데, 장밋빛보다 붉은 코카콜라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그림책을 보는 할머니. 따스한 봄볕에 졸고 있는 할머니가 어린아이처럼 귀여울지도 몰라. 소르르 해가 떨어지면 할머니는 책을 덮고 일어나서 말하겠지.
"오매! 지금 몇 시냐잉~ 사람은 밥을 먹어야 잠이 온당께~!"
"오케이!"
나는 맞장구를 치며 밥상을 펴는, 상상을 해본다.
***다음 화 예고***
1박 2일에 '놀러 온 손님' 덕분에 기억에 남는 여행!
다음 주는 게스트와 함께한 여행을 추억합니다.
다음 주에도 제 브런치에 놀러 와주세요!
제가 기억할 수 있도록... 오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