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병원 일지 1

응급실에서 브런치북 첫 발행이라니!

by 고작

입원 3일 차, 이제야 정신을 차리고 노트북을 켰다.

누가 '병원 생활'이 잘 맞겠냐만은

'슬기로운 환자 생활'을 해보자는 마음으로.

이 기록 또한 나의 건강을 챙기는 서사가 되길 바라며 쓴다.


지난 금요일, 자고 있는데 아랫배가 살살 아팠다.

눈을 떠보니 새벽 3시가 넘었고, 남편과 아들은 곤히 자고 있었다.

체했나? 싶어서 화장실에 갔는데 소식이 없다.

갑자기 부들부들 떨리며 식은땀이 흐르고

스스로 몸을 감쌀 정도로 몸이 차게 느껴졌다.

힘겹게 소화제를 찾아 먹었는데도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남편을 깨우고, 바닥을 데구루루 굴렀다.

"나 좀 살려줘. 죽을 거 같아..."


놀란 남편이 찜질팩과 담요로 몸을 따뜻하게 해 주고

수지침을 찾아와 양손 엄지손가락을 다 따주었다.

(*평소 체를 자주 해서 남편이 신혼 때부터 손을 따주다 보니, 이제 손 따는 건 달인 수준)

그런데도 좀처럼 통증이 나아지지 않았다.

배는 계속 아팠고, 남편이 산통도 아닌데 왜 참냐고! 응급실에 가자고 했지만

아이를 등교시켜야 한다는 압박에 참기로 했다.

(*참고로 나는 출산하던 날, 밤 12시부터 아침까지 산통을 참고 가서 혼난 적이 있다. 그때는 진통이 처음이라 엄~~~ 청! 아플 때까지 참다가 병원에 가는 게 맞는 줄 알았다;;; )


그렇게 산통처럼... 참고 참다가 배를 잡고 뒹구는 사이, 해가 떴고

아이가 일어났을 때 이미 나는 거동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아팠다.

엄마가 아픈 걸 보고, 여덟 살인 아들은 혼자 시리얼을 우유에 타 먹고

양치를 하고 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입더니, 나를 한 번 안아주며 말했다.

"엄마 아프니까 나오지 마. 나 혼자 잘 다녀올게. 이따 기쁘게 만나!"


아들이 학교에 가고 나서야 심각한 통증을 인지했다.

서둘러 택시를 잡고, 남편이 찾아준 큰 내과 병원에 갔다.

의사 선생님은 내 배를 이리저리 만져보시더니

"우리 병원에서 치료할 수 없으니 큰 병원에 가셔야 할 거 같아요. 무조건 응급으로!"

진료비도 받지 않을테니, 빨리 00 병원 응급실로 가라고 했다.


갑자기 두려워졌다. 응급실이라니... 그냥 체한 거 아니냐고요.

저는 원래 소화가 잘 안 되는 편이고, 고등학교 때부터 위염을 달고 살았고

긴장하면 배가 아픈 편인데. 내 뱃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쯤 내 다리는 이미 힘이 풀려서 걷지도 못했다.

결국 휠체어를 타고 응급실에 실려 들어갔다.

침대에 누워서 가뿐 숨을 들이마시며, 겨우 통증을 설명했다.

침대에 실려 다니며 누운 채로 CT를 찍고, 엑스레이를 찍고, 심전도검사와 피검사를 했다.

상태가 안 좋다며, 응급실 선생님이 입원을 해야 할 거 같다고 했는데.

(무식한 애미 마음에) 아이 학교 때문에 입원은 안 한다고 했다.

응급실 선생님이 어딘가에 통화를 하시더니, 일단 내시경과에 다녀오라고 했다.


내시경과 과장님을 보자마자 안심이 되었다.

존경하는 작가님과 많이 닮아서, 보자마자 눈물이 날 정도로 반가운 얼굴이었는데.

프로페셔널한 과장님은 매우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장이 많이 부어있고, 염증 수치가 너무 높게 나와서 입원해서 치료하는 게 맞다고.

그리고 (마음에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로) 비수면 대장내시경을 하게 됐다.

늘 수면 내시경만 해봐서 처음이었다.


그것은...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끔찍했다.

과장님 옆에서 케어해 주시는 분이 어린아이를 달래듯 상냥한 말투로 코치했다.

"많이 아파요? 방귀를 뀌면 안 아파요~~ 방귀를 뀌셔야 해요~"

'아니, 그 방귀를 어떻게 끼는 건데-요옥! 윽윽'

너무 아파서 소리를 낼 수도 없었지만 출산을 떠올릴 정도로 괴로웠다.

굳이 출산에 비유하자면(?)

아이를 낳아야 하는데? 입구를 막고 있으니 어디로 낳으란 말인가? 싶을 정도로 괴로웠다.

나는 너무 아팠지만, 이 끔찍한 일을 매일 하시는 과장님과 케어 선생님들에게 존경심이 들어서 참았다.

아프다고 말하기도 죄송스러울 정도로 대단한 일을 해내고 계셨다.

하마터면 누워서 박수를 칠 뻔했다.


아무튼, 힘겨운 사투 끝에 나의 '장' 사진을 마주했다.

마치 어둠 속에서 자객과 칼싸움을 치른 것처럼 붉은 꽃이 여기저기 피어있었다.

선생님은 장이 희한하게 부어있고, 부은 모양도 좋지 않다고 하셨다.

정상적으로 붓는 위치가 아니라서 이대로면 '난치병'이 의심되며 평생 약을 먹어야 한다고.

정확한 건 두 달 뒤에, 대장내시경을 해봐야 판단할 수 있다고 하셨다.

그리고 드라마에서 많이 들었던 대사

"절대 안정. 푹 쉬어야 합니다."


남편도 드라마를 본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의사 선생님은 원래 최악의 상황을 말해주잖아. 당장 수술하는 것도 아니고, 이만하면 다행이다."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내 머릿속에는 '난치병'이라는 단어만 맴돌고 있었다.

마침 친절한 간호사 선생님이 주사를 놔주며 말했다.

"통증을 가라앉혀 주는 주사예요."

그제서야 눈물이 났다. 너무 고마워서... 이제 안 아플 것만 같아서.


잠시 후, 남편이 희소식을 전하듯 밝게 웃으며 말했다.

"당신 브런치북 첫 글이 발행됐대!"


아! 맞다, 내가 어제 미리 예약해 둔 첫 글이 오픈되는 순간

나는 응급실에서 수액줄에 손을 맡긴 채 누워있었다.

허무했다. 속상했다. 답답했다. 억울했다.


'나의 일박 일지' 를 설레며 시작했는데.

어쩌다 '병원 일지'에 할말이 쏟아지다니...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그게 정상이다.
그러니까, 나는 아주 정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