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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나쌤 Jul 19. 2019

번외편- 나의 영어 입문기

내가 영어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좀 민망하다. 중학교 3학년 즈음으로 기억한다. 다니던 교회에서 해마다 가족 찬양 대회를 했다. 가족들끼리 나와서 노래를 한 곡씩 부르고 들어가는 행사였는데, 초등학교 1학년 외동딸이 있는 한 가족이 나와서 아주 쉬운 노래를 불렀다. 그런데 1절이 끝나자 같은 노래를 영어로 부르는 게 아닌가. 그것도 보지 않고 외워서! 그 장면이 나에게는 굉장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고등학교 입학을 앞둔 나는 영어로 부를 수 있는 노래가 하나도 없는데, 초등학교 1학년이 영어로 노래를 부르다니. 사실 그 노래의 가사는 정말 쉽다. Jesus I love you, I bow down before you. Praise and worship to our King이 가사의 전부였다. 그러나 그때는 정말 그게 그렇게 대단해 보일 수 없었다. 


노래는 수학 문제 풀때만 가능한 줄 알았는데 영어노래는 (못 알아 들어서) 국어시간에도 들을 수 있었다 ;;;


나는 그 자리에서 결심했다. ‘나도 영어로 찬양을 외워서 부르겠다. 저 노래보다 훨씬 어려운 걸로, 한 곡이 아니라 여러 곡을!!!’ 며칠 지나지 않아 영어 찬양 테이프를 사서 매일 듣기 시작했다. 음악을 좋아해서 노래를 듣는 걸 늘 즐겼지만, 그 전까지 영어로 된 노래를 듣지는 않았다. 영어 노래를 들으면서 좋았던 건, 한국어 노래는 가사가 신경 쓰여서 수학문제 풀 때 빼고는 공부하면서 듣기 어려웠는데, 영어 노래는 그런 게 없다는 것이었다. 국어 공부를 할 때도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만큼 나는 별로 알아듣는 게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영어 찬양을 국어 문제집을 풀 때 들을 수 없게 되었다. 들리는 게 많아지고 가사가 외워지면서 공부에 집중할 수 없었던 것이다. 


암기 과목을 공부하면 깜지(종이 여백이 하나도 안 보일만큼 내용을 써가며 공부한 종이)를 만드는 친구들이 많았는데, 나는 영어노래를 암기하겠다고 생각하면서 깜지를 만들지는 않았다. 대신 가사지를 보지 않고 가사가 들릴 때까지 며칠이고 몇 주고 듣다가 정 안 들리면 가사를 한 번씩 보는 정도였다. 모르는 단어도 그때 그때 찾아보는 것이 아니라 지겨울 때까지 듣다가 그 단어가 궁금해지면 그때서야 뜻을 찾아보았다. 영어듣기 공부로 생각하고 하라고 했으면 못했을 건데, 그냥 나는 노래 듣는 게 좋아서 영어로 노래를 듣는다고 생각하니 부담없이 그냥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노래로 영어 공부를 하는 것의 좋은 점이 그거였다. 


영어노래를 듣는 건 공부가 아닌 즐거운 여가였다. 발음과 듣기는 덤이었을 뿐. 


지금도 공부해야겠다고 마음 먹고 노래를 외우면 잘 되지 않는다. 나이가 들어서 더 잘 안 외워지기도 한다. 공부로 접근해서 외우는데 어려움을 겪었던 대표적인 노래가 <반짝반짝 작은 별>의 영어곡인 <Twinkle Twinkle Little Star>다. 어릴 때 영어 좀 한다는 애들이 이 노래부터 부른다는데, 영어 좀 한다는 내가 이 곡을 모른다는 게 좀 그래서 외우려고 몇 번을 듣고 불렀다. 그런데 그렇게도 입에 안 붙는 거다. 이 노래가 안 외워진다는 게 왜 그렇게 창피한지. 그런데 노래가 좋아서 계속 듣다가 가사가 궁금해서 찾게 된 곡들은 한 번 가사를 알게 되면 쉽게 외워진다. 지금 외우고 있는 노래들이 대부분 그렇게 외운 것들인데 15년, 20년이 지나도 외우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외운 표현들을 종종 써 먹는다. 


결국 영어라는 것은 학습으로 접근하는 게 아니라 좋아하는 것으로 접근해야 하는 거다. 드라마나 영화 보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은 미드나 영화를 보다가 소리와 표현에 노출되는 양이 많아지면서 말하기도 가능해질 가능성이 높다. 활동적인 것을 좋아하는 아이들은 뮤지컬 같은 걸 하다가 영어와 친해지기도 한다. 책을 좋아하는 아이들은 영어도 책을 읽다가 잘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좋아하는 것과 영어를 연결시켜 보자!


영어 노래로 영어를 배우는 것의 좋은 점은 자연스럽게 발음과 끊어 읽기를 배우게 된다는 것이다. 영어는 단어로 공부할 때보다 구(phrase)로 배울 때 훨씬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다. 노래는 그걸 자연스럽게 가르쳐준다. 그리고 영어찬양으로 영어에 노출된 나의 경우는 좀 특이한데, 영어찬양에서 많이 쓰이는 표현들이 여러 노래에서 반복적으로 나오다 보니 자연스럽게 알아듣게 되고 학습한 것들이 꽤 많았다. 노래에서 나온 표현들이 설교에서 나오기도 해서 나중에 외국인 설교를 들을 때도 어렵지 않게 알아들을 수 있었다. 


미드를 보는 것도 비슷한 효과가 있다. 나는 드라마 보는 걸 좋아하는 편이 아니어서 미드를 많이 보진 않았는데, 최근에 캐나다에서 방영한 <Kim’s convenience>라는 시트콤을 추천 받아 보게 되었다. <김씨네 편의점>으로도 알려져 있는 이 시트콤은 한국 이민자 가정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전개 되어서 영어를 다 이해하지 못해도 공감되는 지점들이 꽤 많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드라마를 이어서 보게 되었고, 몇 편을 시리즈로 계속 보다 보니 주인공들이 자주 쓰는 표현들이 귀에 들어왔다. 아는 지인은 드라마를 보다가 일본어를 배우게 되었다고 했는데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회화는 가능하지만 글은 읽지 못하는 문맹이었다는 슬픈 사실… 나중에 따로 학원을 다녀서 극복하였다.) 내가 드라마 보는 걸 정말 좋아하면 미드만큼 좋은 영어자료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역시나 나는 동영상 보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 김씨네 편의점만 보고 영어 드라마를 더 보진 않았다. 역시 영어는 좋아하는 것을 찾아 하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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