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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나쌤 Aug 28. 2019

안타까운 영어 공부  

한 줄 추가 스펙보다 실력 위한 영어 공부는 정말 하기 어려운 걸까?

도서관에 왔다. 도서관에 오면 90% 이상 올 때마다 옆자리 또는 맞은편에 영어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오늘도 여지없다. 토익 문제집 푸는 사람도 있고, 깜지 만들어가며 단어 외우는 사람도 있다. 그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깜지 만들어서 외우는 단어는 얼마나 오랫동안 머릿속에 남아있을 것이며, 토익 점수 만드는데 들이는 시간은 또 얼마나 만만치 않을까, 그 실력이 진짜로 쓰이는 영어 실력이 될까 등등을 생각해 보면 늘 남는 건 안타까운 마음이다.


나는 토익을 공부해본 적이 없다. IELTS, 토플, 텝스 다 공부해 본 적이 없다. 내가 시험을 위해 공부한 영어는 내신과 수능이 전부였다. 졸업 때문에 점수가 필요해서 토익을 딱 두 번 봤는데, 그때도 토익에 나오는 문제 유형 조차 모르고 시험을 보러 갔다. 그렇게 본 첫 토익 점수는 900점에서 5점 모자랐다. 시험에 관한 기본 지식도 없이 본 시험 결과니 나쁜 점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IELTS도 비슷하게 문제 유형도 모르고 봤는데, 6.5/7.0이었다. 호주에서 대학과정 공부를 위해 본 시험인데 이 점수로 무난하게 과정에 입학할 수 있었다. (보통 호주 대학은 6.0~6.5를 요구한다.) 내가 잘났다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니다. 하고 싶은 말은, 어느 정도 기본 실력이 있으면 토익이나 IELTS에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몇 년을 투자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토익으로 대표되는 여러 영어시험 인증점수를 위해 쓰는 돈과 시간이 너무 아깝다. 그런데, 그게 실생활에 쓰이는 것도 아니고 그냥 이력서에 단 한 줄 넣기 위한 것이라는 게 정말 정말 안타깝다. 실제로 토익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은 신입사원이 회화는 젬병이었다는 어느 임원의 이야기, 어렵게 토익 점수 만들어서 회사 들어갔는데 회사에서 쓰는 영어는 “’이 문서 좀 카피해 와’라고 할 때의 카피(COPY) 같은 게 전부”라는 자조 섞인 이야기 등이 여전히 존재하는 것이 안타깝다.


며칠 전, 서울 10위권 안에 있는 대학에 다니는 학생이 나에게 영어를 가르쳐주면 안 되냐고 물어왔다. "아니, 그 대학 다니면서 무슨 영어를 배우겠다고.. 그 학교 들어갈 실력이면 나한테 안 배워도 되지 않냐"고 물었다. 그 학교 다닐 정도면 토익 850-900은 어렵지 않게 나올 건데. 그런데 시험 점수(수능이든 토익이든)와 영어실력은 다르다는 걸, 그 친구는 입 밖으로 말을 꺼내진 않았지만 온 몸으로 나에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시험을 위한 영어공부 대신, 정말로 써먹을 수 있는 영어 실력 키우는 공부를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게 쉽지 않은 사회라는 게 안타깝다. 중고등학교 때 배운 영어도 시험을 위한 영어였고, 대학에 가도 그리고 대학을 졸업해도 시험을 위한 영어를 공부할 수밖에 없는 이상한 구조의 사회.


그 학생에게 나는 영어회화 학원 대신 <Grammar In Use>를 사서 공부하라고 했다. 회화학원은 비용 대비 효과가 크지 않다. (영어유치원처럼!) 돈 많으면 회화 학원 다니라고 하겠지만, 회화 학원 아니더라도 회화를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은 충분히 만들 수 있다. 난 사실, 화장실에서 거울 보면서 회화를 연습했었다. 웃길 것 같지만, 국내파 영어고수들이 흔히 추천하는 방법이다. 내가 학생일 때는 유튜브가 없었으니 천편일률적인 회화 테이프만 늘어지게 들어야 했는데, 지금은 정말 좋은 생생한 자료들이 손가락만 까딱하면 나한테 들어온다. 그런데도 굳이 회화 학원을 다녀야 하나?


진짜 웃긴 게, 회화학원 가는 이유가 원어민 영어 많이 듣고 말하려고 가는 건데, 정작 내가 제일 많이 듣고 말하는 사람의 수준은 레벨 테스트해서 나랑 비슷한 수준이라는 것. (회화학원에서 많은 시간 차지하는 게 옆사람과 '이야기해보세요'이므로.) 내가 ‘어버버’ 면 상대방도 ‘어버버’ 일 확률 높다는 것, 원어민 선생님의 이야기를 통해 이루어지는 노출은 정말 일부라는 것이다. (ESL 환경 때문에 영어유치원 보낸다는 것도 비슷하다. 애들 수준이 얼마나 유창하길래 유치원 보내서 ESL 환경을 기대하는지...) 원어민 영어에 노출되고 싶으면 TED나 미드를 보는 게 훨씬 낫고, 거기서 나오는 표현들을 정리해서 강의하는 동영상도 유튜브에 많으니 그런 걸 보는 게 훨씬 효과가 좋은 거다.  


집에 한 권씩은 다 있다는 국민 영어문법책 <Grammar In Use>를 추천하는 이유는, 책에 나오는 예문이 다 실생활에서 쓸 수 있는 문장들이라는 것 때문이다. 문제만 휘리릭 풀고 넘어가지 말고, 예문들을 소리 내서 읽고 손으로 써보고 암기하면 그것만으로도 이미 회화 학원보다 훨씬 더 많은 회화 공부를 하는 셈이다. 유명한 토익학원에서도 이 책으로 스터디 모임 하라고 하는데 다들 문제만 풀고 넘어가서 토익 점수로만 그치는 거다. 문법책인 Grammar In Use를 추천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문법 기본기가 없으면 Broken English가 되기 쉽고 회화 발전 속도도 문법 기본이 된 사람보다 현저히 느리기 때문이다.


문법은 중3 영어면 충분하다. 고등학교 영어는 중3 영어에서 좀 더 세분화된 것뿐이다. 실제로 나는 고등학생들을 가르칠 때 제일 먼저 중학영어가 정리된 문법책으로 가르친다. 대부분 영어 학원이나 과외를 해야 하는 학생들의 실력은 중학영문법이 제대로 안 잡혀서 오는 애들이다. 중학영어만 잡혀도 고등학교 때 영어 학원 다닐 확률은 현저히 줄어든다. (유형과 문제풀이 스킬 때문에 학원 다녀야 한다면 더 말하지 않겠다.)


사교육 시장에도 꽤 있어봤고 실제로 종사하는 사람들도 많이 알고 있지만, 결국 ‘학원이라는 건 공포를 조장해서 먹고사는 데’라는 것에 대부분 동의한다. “이거 여기서 지금 안 하면 다른 사람들보다 뒤떨어져요, 어머니. 우리 같은 전문가가 도와주는 애들이랑 경쟁해서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학생?” (영어유치원은 정식 명칭이 유아 영어 전문학원이라는...;;;) 이런 게 다 학원 마케팅의 일환인, ‘공포 마케팅’이라는 걸 알고 한 발 뒤로 물러서면 가성비 좋은 방법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손쉽게, 빨리'라는 욕심에서 벗어나는 게 한 발 뒤로 물러서기 위한 전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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