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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나쌤 Sep 04. 2019

오해해서 미안해, 영문법!

무의식 속에 있는 영문법을 꺼내면 훨씬 쉬워지는 회화

작은도서관과 복지관에서 엄마들과 함께 영어그림책 읽기 모임을 하고 있다. 처음에는 쌍둥이책을 중심으로 읽기를 했는데, 책 소개와 읽기만으로는 부족한 점들이 있다고 생각해서 지난 몇 주간은 문법이나 표현들을 살짝만 설명하였다. 본격적으로 하면 겁먹으실까 봐ㅎㅎ 그러다가 어제는 정말 본격적으로 문법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보통 모임을 1시간 반 정도 하는데 30분 이상을 문법 설명에 썼다. 그림책에 나온 별로 길지 않은 두 문장- 하나는 4형식, 하나는 5형식-을 칠판에 옮겨 적고 두 문장의 차이에 대해 질문했는데, 다들 그냥 감으로 해석을 했을 뿐 대부분이 대답하기 어려워했다. (잠깐 벗어나서 엄마표영어로 영어를 배운 아이들을 몇 개월 가르친 이야기를 하자면, 그 아이들의 영어실력은 훌륭했으나 한 가지 문제가 있었으니 길거나 조금 복잡한 문장이 나오면 감으로 해석한다는 점이었다. 잠o네 영어로 영어를 배운 애들이 학원에 갔을 때 약점으로 지적받는 것이 약한 문법과 그로 인해 독해 지문을 오역하는 것들이다.)


“제일 중요한 건 5형식이고 문장을 봤을 때 이게 몇 형식인지만 파악해도 수능과 회화의 기본을 쌓은 것”이라고 말씀드렸다. 다들 처음엔 이게 무슨 소린가 하셨는데 (특히 문법 세대의 피해자이신 손주 키우시는 시니어 분들께서 가장 의아해하셨지만) 30분 동안 5형식에 대해 배우시고 나서는 모두들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문법 공부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셨다.


흔히들 오해하는 게, 한국에선 문법과 독해만 가르쳐서 회화를 못하는 거니까 문법은 필요 없다, 듣기와 말하기만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일부만 아는 것이다. 수학을 잘하는 사람들은 이미 공식이 있다. 문법은 수학의 공식과 같은 건데, 공식을 모르고 어떻게 문제를 풀 수 있을까? 문법과 독해만 가르치고 듣기와 말하기에 시간을 들이지 않았으니 회화가 안 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문법은 필요가 없다는 것은 어불성설인 셈이다. 해외에 가 보면 문법 기본기 없이 듣기와 말하기만 하다가 엉망진창인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영어권 이민 사회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든 캐나다 드라마 Kim’s Convenience-일명 김씨네 편의점을 보면 김씨 아저씨와 아주머니의 영어는 늘 시제와 단복수에 따른 변화 등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 그런 영어를 ‘Broken English’ 라고 한다.) 원어민들이 틀려도 얼추 알아듣고 이해하니까 자신의 영어가 엉망진창인걸 모르는 거고, 원어민들은 그런 사람들이 훌륭한 영어를 구사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국내파로 영어를 잘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영문법을 잘 아는 사람들이다. 내가 만났던 원어민과 다를 바 없는 국내파 교수님들도 한 목소리로 강조하셨던 것이 문법이었다.


나보다 영어를 유창하게 말하는 사람들은 정말 많이 있다. 그래서 원어민들이 나에게 “넌 어디서 영어를 배웠니? 참 잘한다.”라고 말해주었을 때 그냥 립서비스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조금만 영어를 해도 칭찬하는데 인색하지 않으니까. 우리도 어눌하게 한국어를 말하는 외국인에게 그러니까. 그런데, 몇 년간 친하게 지낸 한국에 사는 원어민 친구가 언젠가 정말 진지하게 말했다. 영어 이력서를 제출해야 해서 첨삭을 부탁했더니 읽어본 친구가 정말 난데없이 말하는 거다.


“넌 내가 본 한국인 중에 제일 영어를 잘해.”

“에이, 무슨 소리야. 너도 같이 아는 A랑 B는 거의 원어민인데.”

“걔네는 미국에 오래 살았잖아. 너처럼 외국에 잠깐 있다 오고 이렇게 영어 잘하는 애는 없어.”      


“그럴 리가. 너 지난번에 이야기했던 누구도 있고 누구도 있고.." 라고 이야기하려다가 그냥 생각을 해 봤다. 그 사람들도 나보다는 오래 영어권 국가에 있었으니까. 사실 원어민 같은 A도 나에게 “영어를 잘한다고 어디서 어떻게 배웠냐”라고 궁금해했지 않았나. 얘가 이렇게 진지하게 이야기할 정도면 뭔가가 있긴 한 건가? 내가 정말 잘한다기보다 (통번역 하는 사람들 중에 국내파인데 정말 잘하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어떤 요소가 있겠지 싶었다. 그리고 여러 부류의 사람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며 나는 그 지점을 컨텐츠+탄탄한 문법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영어를 빨리 배우는 학습자들은 문법 기본기를 갖춘 사람들이다. 회화표현을 외우려고 할 때 문법 기본이 되어 있는 사람들은 외우지 않아도 회화 표현이 머릿속에 쉽게 들어오고 응용도 훨씬 쉽게 하기 때문이다.


나는 문법 공부하는 걸 좋아했고 제일 오래 다닌 학원도 문법 단과반이었다. 고등학생 때 등교 전 영어문법 새벽반이 있었는데 거기 등록해서 몇 개월은 다닌 것 같다. 무척 유명한 선생님의 수업이라 좋은 자리 앉으려면 진짜 일찍 가야 했는데, 그 선생님이 원어민 만났을 때 입도 못 떼더라는 슬픈 소문이 있긴 했다. (그 선생님이 문법 공부한 시간의 절반만 듣기에 투자하셨으면 진짜 말하기도 잘하는 선생님이 되셨을 텐데 하는 안타까움이 여기서도…) 3개월 간 ESL을 하는 동안에도 <Grammar In Use>를 정말 열심히 풀었다. 당시 함께 영어를 공부했던 사람들 중에 문법을 그렇게 열심히 했던 사람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그러나 이전과 다른 점은 회화와 별개가 아닌 문법 공부였다는 점이다. 그런 면에서 <Grammar In Use>는 정말 훌륭한 교재다. 회화와 문법을 한큐에 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참고로, 전 GIU 출판사와 아무 관련 없습니다;;;)


돌이 들어 있는 물컵과 비어있는 물컵에 물을 부으면 어떤 게 더 빨리 찰까? 당연히 돌이 들어있는 컵이다. 문법은 돌과 같은 역할을 한다. (어릴 때 한글 책을 많이 읽어서 쌓은 지식이 많은 아이들이 초등학교 들어가서야 영어를 배워도 영유 출신을 금방 따라잡는 이치와 같다.) 이미 한국 사람들은 다들 문법을 배웠다. 그걸 조금만 살려내면 훨씬 빠르게 회화를 배울 수 있다. 그걸 모르는 사람들은 그냥 회화반 가서 무작정 따라 하기만 하는데, 가성비가 확실하게 떨어지는 방법이다.  


회화는 중학교 수준의 영문법만 가지고 있으면 가능하다는 게 나의 지론이다. <Grammar In Use> basic 편도 괜찮은데 (GIU Intermediate은 basic에 20% 정도 추가된 것이므로 아주 왕초보 수준이 아니면 intermediate을 추천) 책 분량 때문에 쉽사리 도전하기 어렵다면, EBS에서 나오는 중학 영문법 교재들을 추천한다. 교재 사면 인강 무료로 들을 수 있는 것들이 있는데, 강사들 중에 유명 강사들이 많으니 혼자 공부하는 것보다 훨씬 수월하게 영문법을 끝낼 수 있다.


자, 중고등학교 때 이후로 묵혀 놓았던 나의 무의식 속 영문법을 끄집어내자. 영문법이라는 날개를 회화에 달아주면, 훨씬 빨리 우리가 목적지로 삼은 그곳에 도착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곳은 우리가 생각했던 수준보다 더 높은 곳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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