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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불원정대의 제시, 어쩌다 결정적 시기를 반박?

은비가 나의 최애 캐릭터가 된 이유  



예능을 좋아하지 않는 내가 예능을 꼬박꼬박 챙겨볼 때가 있는데 음악과 관련된 예능일 때가 그렇다. 가장 놀라운 건 무한도전 팬인 남편과 15년을 살면서도 예능을 즐기지 않던 내가 유재석의 드럼신동 프로젝트인 ‘유고스타’ 이후 <놀면 뭐하니>를 꼬박꼬박 챙겨볼 때다. 나의 여름을 달궈놓았던 ‘싹쓰리’가 아쉽게도 끝나고 ‘환불원정대’가 시작되어서 역시 토요일마다 챙겨보고 있다. (엊그제 ‘환불원정대’의 Don’t Touch Me 음원이 나와서 어찌나 좋은지, 지금도 계속 흥얼흥얼~~) 이효리는 원래 좋아하고 잘 몰랐던 엄정화나 화사의 매력에도 빠져있지만 그중에서도 나의 눈길을 잡는 사람은 은비인 제시다.


나는 사실 제시라는 사람을 래퍼라는 것, 센 언니의 아이콘 정도라는 것 외엔 거의 몰랐다. 그러다 <놀면 뭐하니>의 ‘환불원정대’를 통해 제시의 면면을 보고 있다. 랩도 멋있게 잘 하지만 지미유 유재석과의 찰떡 케미를 통해 보이는 제시의 귀엽고 인간미 넘치는 모습에 쏙 빠지고 있다. 유재석과의 찰떡 케미에는 제시의 한국어도 큰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의도하지 않게 발생하는 제시의 한국어 실수를 즐거움으로 승화시켜주고 대화의 70% 이상을 “Come on~”으로 완성하는 유재석이 있어서 가능하겠지만.)


출처: http://enews.imbc.com/News/RetrieveNewsInfo/292004



많은 사람들이 제시가 벌써 14년 차 데뷔 가수라는 점에 놀란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14년이나 한국에서 살았는데 왜 한국어가 늘지 않았냐고 반응하기도 한다. 제시가 한국에 온 게 만 14살이고 한국에서 14년이나 활동을 했다고 생각하면 당연한 반응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제시는 연습생 기간 포함 3년 정도 한국에 있다가 그 뒤에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다. 다시 한국에서 활동을 하기까지 짧지 않은 시간이 걸렸고, 워낙 미국에 자주 오가서 그렇다는 것을 감안하면 제시의 상황을 이해할 수도 있겠다.


언어습득과 관련하여 ‘결정적 시기’ (결정적 시기: https://brunch.co.kr/@urholy/28 참고) 보다는 ‘동기부여’를 중요하게 여기는 나의 입장에서는 제시의 한국어가 늘지 않은 상황이 충분히 이해된다. 태어나서 만 15세까지를 언어의 ‘결정적 시기’로 보는 입장으로 보면 그리고 3년이나 한국에 있었던 것을 감안하면 제시가 한국어를 지금보다 훨씬 잘해야 하는 게 맞다. 그러나 영어를 숭상(!)하고 영어를 배우고 싶어서 영어 잘하는 사람에게 영어로 말 거는 사람들이 많은 나라에 산다면 굳이 영어를 안 쓸 이유가 없다. 즉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 것이다. 영어를 쓰는 비율이 높으면 당연히 한국어가 느는 속도도 느릴 것이다.


이는 비영어권 국가에서 온 이주민들의 한국어 실력이 짧은 시간에 느는 것과 대조적이다. 비영어권 국가의 이주민들은 우리가 영어권 국가에서 영어 실력 향상에 매달리는 것처럼 생존을 위해 한국어를 죽어라 배워야 한다(생존만큼 중요한 동기는 없을 것이다). 그들의 언어를 이해할 수 있거나 그들의 언어에 관심을 가지는 한국인들이 많지 않으니 비영어권 이주민들은 모국어를 쓸 기회가 없다. 영어를 쓰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고, 영어를 구사까지는 아니더라도 이해하는 사람이 많아서 굳이 한국어로 의사소통하지 않아도 많은 부분을 해결할 수 있는 영어권 원어민들의 처지와는 다르다. 내가 제시의 측근이 아니라 추측한 것이긴 하지만, 내 주변의 영어권 원어민 중에 한국에 몇 년씩 거주해도 한국어가 늘지 않은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보아온 것을 통해 나의 추측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부모가 한국인인데 어릴 때 미국에서 살다가 다시 한국에 와서 살아도 한국어가 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의도치 않게 내게 제시는 ‘결정적 시기’를 반박하고 언어 습득에 있어 중요한 것이 ‘동기’라는 것을 확인하게 해주었다. 랩도 잘하고 애교 많고 인간미 넘치는 은비가 나의 최애 캐릭터로 등급하게 된 또 하나의 이유다.      

매거진의 이전글 <영어, 10살에 시작해도 될까>가 책으로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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