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은 생각한다.
손끝에 모여있는 수백만 개의 감각수용체는 뇌가 미처 닿지 못한 세계를 이해한다.
천을 만져보며, 실의 장력을 느끼며, 바늘의 단단함을 익히며
우리는 세계의 구조를 손의 언어로 해석한다.
손은 느리게 판단하고, 신중하게 반응한다.
이러한 느림이야말로 사유에 맞는 진짜 속도다.
사회학자 리처드 서넛(Richard Sennett)은 ‘“손의 지성”은 지식을 더하는 뇌의 움직임이 아니라, 세상을 더 깊이 이해하려는 몸의 충동이다.’라고 설파한 바 있다. 바느질은 그 충동의 가장 현현한 표상 아닐까.
우리는 이제 하루의 대부분은 흠 없이(seamless) 매끈한 것만 만지고 살아간다. 태블릿, 휴대전화, 노트북... 우리의 손끝은 다양한 물성을 요구하는데, 우리는 손의 감각보다 현란한 시각 정보, 청각 정보만 받아들인다.
효율의 시대에 가장 비효율적인 손바느질은 역설적으로 우리의 편도체를 안정시키고, 전전두엽을 활성화한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바늘땀들은 기분 좋은 몰입을 불러온다. 취향 공동체가 함께 하면 금상첨화다. 우리의 의식은 그 이유를 잘 분석하지 못하지만, 무의식은 오늘 하루도 생존에 유리한 행동을 했다고 안심한다.
수선 워크숍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나 또한 셀 수 없이 많은 긍정적 영향을 받고 있다. 다친 옷들을 돌보면서,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면서 오늘도 바늘에 실을 꽂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