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재니들(Zaneedle)의 탄생

by 둠칫

석사 논문을 마치자마자 정부 지원사업에 지원했다. 그리고 정말 운 좋게 예비창업패키지 소셜 벤처 부문에 선정되었다. 예비창업패키지는 혁신적인(?) 사업모델을 보유한 예비창업자의 창업을 지원하는 중소벤처기업부 사업이다.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사업비를 지원하면 선정된 예비창업자는 그해에 주식회사를 설립하고 사업 운영을 시작해야 한다.


일단, 회사 이름부터 짓자.

바느질, 수선, 옷, 환경, 창의, 예술, 연대, 교감, 순환... 뭐. 이런 키워드와 어울리는 이름이 필요한데...

수많은 후보 중 고심 끝에 열 개 정도를 추렸다.

이제 잠재 고객의 피드백을 확인할 시간

주변에 이 열 개 후보들을 뿌리고 반응을 살폈다.

웬걸. 사람들의 취향은 제각각이라는 걸 다시금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어떻게 하나로 쏠리는 이름이 하나도 없지? 열 개 중 네 개 정도에 균등히 의견이 모였다.

이렇게 된 이상 사업을 이끌어갈 내가 결정해야 한다.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다가 고른 이름은 재니들(Zaneedle)

Zany(엉뚱한, 괴짜 같은)와 Needle(바늘)을 조합해서 만든 이름이다. 대량생산된 기성복이 개성 있는 수선을 거쳐 고유한 한 벌의 옷이 되듯이, 우리의 바느질이 시작되면 그 끝을 예측할 수 없다는 도발적인 마니페스토다.


재니들에 어울리는 로고도 만들었다. (다들 강아지로 오인하지만) 우리 손을 지켜주는 귀여운 골무군이다.

로고_재니들.png 주식회사 재니들의 로고

2024년 8월 30일 드디어 주식회사 재니들이 설립되었다.


정관 제2조. 목적 및 사업

본 법인은 의류 새활용을 위한 교육, 공간, 연결망을 제공하고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지속가능한 의복문화를 확산함으로써 의류 과소비 및 대량 폐기로 인한 환경 오염 및 기후 온난화에 대응하고 공동체의 정서적 건강 개선에 기여하는 사회적 목적을 추구하고자 다음 각 호의 사업을 수행한다.

북부여성창업보육센터에 수선실 자리가 나서 지원했다. 3.3평짜리 아주 작은 수선실이지만 사업에 꼭 필요한 자수기, 재봉틀, 오버로커를 구비한 소중한 공간이 만들어졌다.

이제 같이 일할 동료를 찾을 순서다. Canva로 ’나는 이런이런 일을 할 거니까 나와 결이 같은 분을 모신다’는 간곡한 구인광고물을 만들어 사람인과 잡코리아에 올렸다. 아시겠지만 이런 구인 플랫폼은 광고비를 내지 않으면 구인내용이 계속 뒤로 밀린다. 나의 구구절절한 구인광고는 대략 스크롤링을 스물 한번 쯤 해야 나올 법한 위치에 놓여있었는데, 그걸 또 귀신같이 보고 지원한 사람들이 있었다. 나처럼 돈 버는 데는 재주가 없을 것 같은 세 명이 새로운 파트너가 되었다. 에린, 사노, 미미(입사순). 두 명은 의류학, 의상디자인을 전공했고, 나머지 한 명은 프로도 울고 갈 수준으로 다년간 모든 재봉·수선수업을 섭렵했다.


한 명이 움직이려면 다른 세 명이 비켜줘야 하는 3.3평 수선실에 모여, 보이는 수선 프로그램도 짜고, 브레인 스토밍도 하고, 수선 작품도 만들었다. 어느새 일 년이 지났다. 주변 지인들이 격려차 참여해주던 수선 워크숍이 이제는 지속가능한 삶과 창의적인 수선에 관심이 있는 다양한 사람들을 불러모으고 있다. 중계동의 작은 수선실을 떠나 조금 더 넓어진 서울숲 옆 공방으로 자리도 옮겼다. 여전히 적자며, 오늘도 시행착오를 거듭하고 있다.


가끔은 의기소침할 때도 있지만 여전히 신이 나니 좀 더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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