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일기장 훔쳐본 날
오늘은 아침에 일어나서 할아버지 집에 갔다가 달걀을 삶고 아빠 친구 노영필 선생님과 만나 즉흥적으로 점심을 함께 먹었다. 갑작스러운 동행이었는데 나를 환영해주셔서 감사했다.
점심을 마치고 할머니 병원으로 향해 할머니를 모시고 성심병원 외래진료를 갔다. 할머니께서는 혹시나 아는 사람 마주치면 어떨까 자신의 꼴이 우습지 않냐고 내게 여쭤보셨다. 신경과 의사가 회복 속도가 빠르다고 하셔서 다행이고 감사하다. 요양병원 간병인 분께선 할머니가 정말 열심히 운동을 하신다고 칭찬하셨다.
집에 와서는 금세 할아버지랑 저녁을 먹기로 한 시간이 되어 준비했다. 몇 가지 반찬들로 저녁을 차렸는데 식당을 가자고 한 할아버지께서 식당보다 맛있다고 해주셔서 감사했다. 치매 검사를 받아보자고 넌지시 여쭈었는데 달갑지 않아 하시는 것 같았다.
할아버지 안마를 해드리다가 할아버지께서 지나가는 말로 혼자 자니까 적적하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냉큼 같이 자겠다고 하고 할아버지 집으로 같이 갔다. 그곳에서 온라인 회의 하나를 하고 무척 피곤해서 짝꿍과 안부 전화에 도저히 집중할 수 없었다. 여성단체 지원 결과를 기다리는 짝꿍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다.
우연히 할아버지의 일기장을 훔쳐보았다. 7년쯤 전의 기록인데, 새삼 할아버지가 차분하고 단단히 일상을 꾸려오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로 그 날 그 날 한 일을 기록한 글이지만 감정을 표현한 대목이 눈에 들어왔다. 동생의 인격에 실망, 눈 수술을 한 날 자신을 찾아오지 않는 아들에 대한 서운함, 가족들의 안전에 대한 걱정, 손주들을 아끼는 마음. 며느리에 대한 고마움. 서운하다는 표현을 여럿 보았다. 표현은 많이 안 하셨지만 외로워하고 계시구나 생각했다. 방에 들어와 잠든 할아버지의 얼굴을 한참 바라보았다. 할아버지가 옆에 와서 자라고 해서 꼭 붙어서 짔다.
할머니 할아버지를 돌보는 일상을 시작하며 이제야 처음으로 두 분의 마음을 내가 너무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대화가 잘 안 될 때는 짜증도 나고 답답하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부모님에게 짜증섞인 투로 다그치는 아빠를 보면서 더더욱 두 분의 마음을 알아주고 싶은 마음을 가진다. 동시에 중압감에 괴로워하는 아빠의 마음과 외로움을 볼 때면 그것대로 속상하다. 하고자 하는 일에 시간을 내지 못해 짜증이 날 때면 어릴 때 나를 돌봐주었던 두 분의 시간을 생각해본다. 내게도 되갚아드릴 의무가 있다. 그 의무를 다하는 일을 즐겁게 할 수 있을까?
며칠 전 ADHD 검사를 받으며 스트레스 관리 능력이 조금 떨어지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요즘 가슴 두근거림이 점점 잦아지는 것만 같다. 오늘은 할아버지 곁에서 자다가 너무 더워서 잠에서 깼다. 가슴이 알러지 반응처럼 따가울 정도였다. 그래서 도저히 안 되겠어서 잠자리를 옆으로 좀 옮겼는데 가슴이 심하게 두근거려서 냉수샤워로 몸을 좀 식혔다. 여전히 심장이 크게 뛰는데 자다가 깰 때면 종종 그런다. 스트레스 지수도 높다고 하던데 어떤 관리가 필요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