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메모 (1)

2026. 02. 19.

by 정이어린
농업과 산업의 변화는 농민에게 가장 뚜렷한 흔적을 남겼다. 그들은 한국 계급에서 가장 인구가 많고 해방 정국에서 대규모 참여와 폭넓은 저항이라는 두 가지 특징을 보여주었다. 이와 관련해 특히 중요한 것은 토지 소유의 변화와 국제무역 증가, 광범한 사회적 이동, 일본이 패망하기 직전에 집중된 전쟁 수행 노력에 한국인이 적극적·직접적으로 동원되면서 나타난 대대적인 인구 이동이었다. 그 결과 한국의 수많은 농민은 뿌리 뽑혀 해외로 이주하거나 공업에 종사하게 되었다.

*이 글은 저 자신의 공부의 흐름과 맥락을 엮고 앞으로의 방향성을 정리하려는 목적으로 (졸다가) 썼기에, 흐름이 매끄럽지 않고 부정확한 내용이 많을 수 있습니다.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 전쟁의 기원>을 읽기 시작했다. 그는 1년 안팎의 기간을 보았던 기존 연구와는 달리 '한국 전쟁의 기원'을 탐색하며 1945년 해방 직후부터의 5년 동안의 기간을 살핀다. 그리고 그 이전 시기, 태평양 전쟁 전후의 일제 식민 지배가 한반도에 어떤 변화를 만들어냈는지에 대한 배경을 살핀다. 그중 농업과 산업의 변화가 대대적인 인구이동으로 이어졌다는 대목에 눈길이 갔다.


최근 빅터 샤우의 <탄소기술관료주의>와 이라영의 <쇳돌>을 함께 읽기 시작했다. 빅터 샤우의 <탄소기술관료주의>는 만주의 푸순 탄광을 중심으로 일제가 에너지 인프라를 구축하는 과정을 세밀하게 그려낸다. 이라영의 <쇳돌>은 양양 철광석과 얽힌 자신의 가족을 중심으로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노동이동사'를 그리고 있다. 앞의 책이 일제의 에너지 개발과 거시사를 조망할 수 있도록 해준다면, 이 책은 한 가족의 삶을 중심으로 국가의 에너지 개발 산업이 한 명 한 명의 삶에 어떤 힘을 미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읽어낼 수 있다. 두 책을 함께 읽는 일이 나름 괜찮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하던 중, 우연히 읽게 된 브루스 커밍스의 책이 두 책 사이의 연결점을 확충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


빅터 샤우의 책에서 언급되듯 푸순 탄광을 시찰하고 간 박정희의 개발 프로젝트는 이라영의 광산과 얽힌 한 지역민들의 배경이 되었다. 공교롭게도 이라영의 아버지는 젊을 적 군인이 되고자 했지만 그러지 못해 광부가 되었는데, 나의 할아버지 또한 사관학교에 가고자 했다. 할아버지의 동생들 중 두 분은 모두 해군 장교로 평생을 보내셨고,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하셨다. "그때는 없는 형편에 군인이 되면 재워주고 입혀주니 좋았지." 이라영은 한편 군인이 되고 싶어 했던 아버지에게서 군사주의적 남성성의 욕망을 포착한다. 그리고 그로부터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비슷한 욕망으로 일본군 장교가 되었던 박정희라는 인물이 있다. 리고 더욱 거슬러 올라가면 일제 치하 친일 지식인들과 대한제국과 조선 말기의 여러 인물들이 있을 것이다.


욕망은 젠더적으로 불균등하게 주어진다. 이라영의 책에서 탄광에서 오래 일할 수 있던 아버지와 달리 고모는 20대를 못 넘기고 그만두어야 했는데, 아버지의 표현으로는 "나이가 차서"였다. 남성들이 선망하던 고임금 일자리를 여성들이 선망할 수 없게 만드는 압박은 지금에 비할 바가 못 되었다. 여성 운동의 노력과 더불어 '유리천장'이라는 개념이 대중화되었지만(여전히 일각에서는 논쟁적 단어라는 사실이 안타깝지만) 이 단어는 더욱 급진적으로 살펴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욕망에 대한 접근과 억압을 논의할 수는 있지만, 욕망이 형성되어 온 토대 자체에 대한 질문까지 이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낸시 프레이저의 <99% 페미니즘>과 최근의 연구를 다룬 대담집 <포식하는 자본주의>도 이러한 문제의식과 결을 함께 한다.


얼마 전 영화관에 가서 본 <만약에 우리>는 로맨스 영화이지만 동시에 그 로맨스의 배경으로서 서울로 향한 시골 청년들의 생애사를 그려내고 있기도 하다. 흥을 떠나 서울 대학에 진학한 두 청년은 기댈 곳 없는 서울에서 서로 의지하며 "넌 진짜 잘 될 거야"라는 주문을 주고받는다. 하지만 주문은 그리 쉽게 이루어지지 않고, 잡히지 않는 꿈과 늘어가는 생활고에 생긴 스트레스로 두 사람은 이제 함께하는 것만으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관계가 된다. 두 사람은 시간이 흘러 각자 꾸었던 꿈에 다가섰지만 곁에 서로가 없는 상황에서 묻는다. "그때로 돌아가면 더 잘해볼 수 있을까?" 하지만 그게 전혀 가능하지 않은 가정이란 걸 두 사람은 이미 안다. 영화는 판타지를 판타지의 영역에 남겨 두며 현실과 선을 긋는다. 현실은 가해자의 자리에서 벗어나려 고군분투하지만 가해자가 되기를 호시탐탐 노리는 덫들이 산재해 있다. 최근 일본의 한 정신과의사가 쓴 <피해자가 가해자에게>를 읽으면서 이 미묘한 긴장에 대해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현실에서는 판타지가 이루어지지 않는 자리에 쾌락 산업이 들어선다. 술, 담배, 마약, 성매매, 행복을 보장해 줄 것처럼 유혹하며 자본을 축적하는 해피크라시(에바 일루즈). 도우리는 <우리는 중독을 사랑해>에서 '좋은 삶'을 약속해 줄 것처럼 호언장담하는 여러 요소들을 살핀다. (중략). 이 요소들은 역사적으로 다양한 모습으로 변모해 왔다. 그리고 이들은 소수자를 향한 폭력을 기반으로 작동한다. 전두환 정권의 3S 정책이 그랬고, 미군의 기지촌과 일제의 '위안부'가 그렇다. 대학교 사회학 학부 수업 <동아시아 여성 인권과 평화>를 들으면서 조별과제 주제로 제안했던 것들 중 하나가 '위안부' 이용을 거절한 남성들이었다. "폭력의 구조 속에서 폭력에 동참하지 않거나 저항할 수 있는 힘은 어떻게 가능할까"가 궁금했었다. 다음 학기 <몸과 섹슈얼리티> 수업의 조별과제 프로젝트 주제는 유혹 산업으로서의 '픽업아티스트(관계 맺기의 기술을 자본화하며 여성을 대상화하는 연애 코칭 산업)이었다. 이때 영국의 픽업아티스트 강의를 조사한 문화기술지 <Seduction Industry>가 큰 도움이 되었다.


또한 욕망은 지리적으로 불균등하다. 서울로 이주해야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노래가 여럿 있다. <서울의 달>이 대표적으로 그렇다. 그보다는 덜 대중적이지만 정밀아의 <서울역에서 출발> 가사가 그렇다. 조금 결은 다르지만, 일본에서는 샤이니 링고의 <Marunouchi Sadistic>은 도쿄의 공허한 생활 속 공허함과 섹스, 성매매에 대해 노래한다. 나의 큰 숙모는 베트남 출신으로, 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얻고자 한국으로 온 수많은 이주노동자, 이주결혼가정의 한 명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외할아버지는 월남전 참전 군인으로, 큰 숙모가 한국에 오게끔 한 조건을 만들어낸 전쟁의 참여자이셨다. 베트남 사람들은 미국과의 전쟁 속에서 많은 생활 터전이 파괴되고 수많은 학살을 경험했으며, 한국은 군인들을 전쟁터로 내몰며 자본 축적의 마중물을 벌어들였다. 켄 리우의 <종이호랑이>에는 외할아버지가 일본의 731부대에 복무하며 중국인들을 생체실험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과학자가 나오는데, 나의 외할아버지가 베트남 전쟁에 다녀왔다고 했을 때 그 인물이 나와 다를 바 없이 느껴졌다.


이 이야기들 속에 화순에서 태어나 담양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서울로 대학을 간 내 이야기 또한 한 조각을 이루고 있다. 얼마 전 대학원 진학을 함께 고민하던 한 친구와 함께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강원대나 전북대와 같은 곳들을 염두에 두고 학교를 물색하다가 주변에 조언을 구해보니 모두가 서울에 있는 학교를 권하길래 "우리가 너무 순진한 걸까?" 하며 웃었다. 친구는 강원대를 가려다가 서울에 있는 대학의 박사과정에 가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지도교수로 삼고자 했던 강원대의 한 교수님이 서울대로 옮기셨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번 학기에 친구와 나는 함께 서울대에서 그 교수님의 강의를 청강하기로 했다.


나는 줄곧 학교에 가기 위해서, 돈을 벌기 위해서 집을 떠나 다른 동네로 가야 하는지 의문이었다. 고등학교에서는 좋은 경험을 했기 때문에 그런 의문을 던질 겨를이 없었지만, 대학에서는 극심한 외로움을 견뎌야 했기 때문에 자연히 그런 질문을 하게 되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화순에 내려온 올해 겨울에는 후련하면서도 착잡했다. 다시 서울에서 그 시간들을 견디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과 동시에 화순 또한 답답하게 느껴졌다. 서울에서의 5년 덕에 나는 이십 대의 전반기를 화순에서 관계를 쌓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샹탈 자케의 <계급횡단자들 혹은 비-재생산>에서 <아비투스>를 쓴 피에르 부르디외에 대한 논의가 등장하는데, (부르디외를 한 번도 읽어본 적 없지만) 그가 말한 문화자본이나 사회자본이 바로 이러한 자본의 경계를 따라 축적되거나 또는 파괴되며, 그 경계를 횡단하려는 욕망으로 사람들은 이주를 감행한다.


나는 이러한 이주가 우리 삶의 중요한 부분들을 황폐화시키는 데 아주 큰 역할을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의 가족들을 생각하면 그런다. 서로에게 날 선 대화만을 하게 되는 것, 비폭력대화고 뭐고 다들 그런 기술이 없어서 그렇게 못하는 게 아니다. 처음으로 안정적인 연애를 시작하면서 알게 된 건 대화를 한다는 건 과장 보태서 삶의 9할 이상의 힘을 쏟아부어야 그나마 조금씩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주, 이주를 촉진하는 불평등은 그럴 수 있게끔 하는 가능성들을 모두 망가뜨린다.


대안교육 출신인 나는 이주를 통해 대안적 삶을 만들어내려는 호기심들을 주변에서 종종 보게 된다. 가령 내가 학부 졸업논문으로 쓴 <기후우울과 함께 세계를 다시 사랑하기>에 등장하는 두 친구들이 그렇다. 논문을 쓸 때는 깊게 생각할 수 없었지만, 그때도 내가 이들의 이주를 너무 나이브하게 묘사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를테면 덴마크의 IPC(세계시민대학)나 네덜란드의 호이스콜레와 같은 교육을 경험하고 온 친구들이 주변에 많다. 다녀와서 좋았다고 하는 그들에게 축하를 보내면서도 마음 한 구석이 찝찝했던 건 이런 이유였다는 걸 알아차린다. 우리에게 필요한 가치, 문화자본의 축적을 파괴한 대가로 그것을 유지하고 발전시킬 수 있었던 유럽 국가들에게서 우리는 무엇을 배워올 수 있을까 하는 거였다.(배울 게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디서든 당연히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으니...) 내가 가장 알고 싶고 만들어내고 싶은 건, 이런 조건 속에서 진정한 의미의 탈식민화가 어떻게 가능할 것인지다.


당장의 짧은 생각으로는, 이주에 크게 두 가지 종류가 있는 것 같다. 하나는 더 나은 임금 소득과 더 많은 기회 구조를 모색하려는 긍정적인 방식의 이주이고, 다른 하나는 억압과 폭력에서 도피하고자 살던 곳을 눈물을 머금고 떠나는 이주가 있다. 하지만 이 둘은 전혀 깔끔하게 분리되지 않는다. 나만 해도 화순이 답답해 떠나고 싶은 마음과 새로운 기회를 모색하려는 마음이 서울의 대학 진학에 함께 켜켜이 쌓여 있다. 기대와는 달리 이주 그 후에는 아예 처음부터 관계망을 쌓아가야 한다는 막막함과 부딪힘들, 그 과정에서의 차별, 동화와 배제(*동화와 배제-일제의 동화정책과 내선결혼 참조, 우울과 무기력, 탈진(번아웃)과 정신질환이 뒤따른다. 그레이스 조의 <전쟁 같은 맛>과 <유령연구>는 기지촌 양공주였던 어머니의 미국 이주와 그 이후 발병한 조현병에 대한 책이었다.


또 다른 하나의 사례로는 앨리 러셀 훅실드의 <도둑맞은 자부심> 또한 묘하게도 미국의 한 탄광도시가 배경이다. 그곳의 레드넥들은 미국의 산업을 자신이 쌓아 올렸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을 인정받지 못하고 엘리트들과 이주민들이 자신들이 쌓아 올린 부를 독점하고 빼앗으려 한다는 소외감이 그들에게는 큰 위협이다. 한 번은 윤석열의 내란을 옹호하는 한 기사님의 택시를 30분이나 타고 간 적이 있었는데, 그분은 김대중 대통령이 연평해전의 군인들을 무시했다고 하며 분노를 쏟아내셨다. 내란 이후의 극우 담론들에서 이들을 '이해'하려는 시도들이 많이 보이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우리 자신을 이해하려는 시도일 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한 소외감과 분노로부터 나는 어째서 비껴갈 수 있었는가?"


외할아버지는 월남전에 다녀오신 후, 사우디에 중공업 노동자로도 다녀오셨다. 그래서 외할아버지는 가족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지도 못했고, 외할머니와 자식을 때리는 폭력적인 가장으로 남겨진 가족들에게 기억되었다. 엄마는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전혀 슬프지 않았고, 많이 미웠지만 지금은 불쌍하게 느껴진다고 하셨다. 나는 외할아버지의 삶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고 그저 근대 국가의 군사주의와 개발주의 한복판을 살다가셨다는 짐작만 할 뿐이다. 전쟁과 개발, 이 프로젝트들이 그것에 참여하는 사람의 삶을 어떻게 망가뜨리는지, 어떤 환상을 주입하고 끝내 그것이 실현되지 못했다는 열패감을 만들어내는지, 나는 앞으로의 공부 속에서 이 이야기를 찾아내고 싶다. <탄소기술관료주의>와 <쇳돌>, <한국전쟁의 기원>의 이야기들 속에서 발견하고 싶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최근에 가장 와닿는 접근법은 샹뱌오와 김고은의 두 책이다. 중국의 인류학자 샹뱌오는 <주변의 상실>로 처음 접하게 되어 최근에는 신간 <낯선 사람과 부근을 만들기>를 읽고 있다. 한국의 작가이자 유학자 김고은은 은둔고립청년을 다룬 책 <너무 희미한 존재들>에서 샹뱌오의 방법론과 에두아르도 콘의 '혼맹' 개념, 유학의 이야기들과 함께 지금 우리 곁에 있는 소외의 모습을 그린다. 두 접근법은 모두 타자를 향한 연구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의미 있고 강력하다. 작년에 탐독했던 잉골드에게서 찾을 수 없는 감동이 있다.


최근 대학원 수업 청강 요청 메일을 작성하며 교수님에게 나의 관심사과 "귀촌의 사회사"와 "폐광 이후의 인프라 정치"라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상담사님이 "어린 님이 원하는 삶의 모습은 어떤 거예요?"라고 질문했을 때 나는 "고요한 일상"이라고 대답했다.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이 세 단어들을 하나로 엮고 살을 붙여보고 싶다.


요즘 공부하는 사람들이 갖게 되는 오만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아니, 아마 그건 그냥 아빠랑 나를 생각하며 넌저리가 나는 거겠지. 공부는 언어를 포착하고자 하는 작업. 무엇을 위해 언어로 포착하나? 공부하다 보면 그걸 까먹게 되기가 쉽다. 내가 왜 공부하고 있더라. 이 얘기를 명확하게 하는 사람은 드물다. 말과 행동, 앎과 삶, 이론과 실천, 이런 이분법은 다 갖다 치우자. 말도 행동이고 앎도 삶이고 이론도 실천이다. 하지만 뭐 하나에 몰두하는 게 다른 책임을 방기 하는 핑계가 되어선 안 된다. 공부하고 글을 쓰는 걸 다른 사람들이 못해서 안 하는 게 아니다. 가진 게 윤리적 우월감이나 정신승리뿐인 사람이 되어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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