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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나무 Mar 23. 2022

001. Inevitable (adj) 피할 수 없는

너와 사랑에 빠지는 것은. 그런 일이었어.

* 오늘의 단어 


*예문


보배합의 시그니처 패키지 디자인이 책인 것은 과연, 우연일까? 



아빠는 항상 책이 많았다

아빠의 직업 덕분에 이사를 적어도 일곱 차례 이상은 다녔는데, 무거운 박스의 대부분은 아빠의 책을 가득 담은 상자들이었다. 심지어 미국으로 건너가는 머나먼 길에도 아빠는 책을 포기하지 않았다. 아빠의 서재 벽을 빼곡하게 채운 아빠의 책들을 보며, 그 책들에 켜켜이 쌓인 세월의 냄새를 맡으며 나는 자랐다.      


그렇다고 모든 미디어는 금지당하고 독서만 요구당하는 어린 시절을 보냈었나?

절대 아니다.

우리에게는 우리 가족만이 아는 ‘방앗간 리츄얼‘이 있었다. 아빠의 주도로 일주일에 두어 번 정도 저녁을 먹고 난 뒤 동네 한 바퀴를 돌며 함께 산책을 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이때 우리는 마치 참새가 방앗간 들르듯 마을 비디오 대여점에 쪼르르 들려서 보고 싶은 비디오를 고르고 아이스크림 하나씩 사서 먹곤 했다. ’ 방앗간‘ 하면 아는 우리 가족만의 리츄얼.      


또 세진컴퓨터랜드는 어떠한가.

지금도 있을지는 모르겠는데 그때 당시는 모든 컴퓨터 부품과 컴퓨터 게임 CD 등을 한곳에서 접할 수 있는 세진컴퓨터랜드가 있었다. 내가 다섯 살 무렵부터 286, 386, 486, 586, 그리고 팬티엄까지, 새로 나오는 컴퓨터들은 우리 집에 항상 있었다. 그만큼 컴퓨터에 관해서는 돈을 아끼지 않았던 아빠 덕분에 나는 평균 타자 속도 1,500을 능가했고, 심즈, 롤러코스터 타이쿤즈, 스타크래프트와 같은 게임을 다른 친구들보다 먼저 영접했고, 섭렵했다. 


보배합의 처음 패키지

보배합 비누는 원래 보배합 비누가 아니었다. 브랜드 이름도, 디자인도. 원래 이름은 UBY로 검은색의 직사각형 박스 안에 비누 세 개가 들어가는 매우 전형적인 3구 비누 패키지였다. 


그런데 보배합으로 브랜드 이름을 바꾼 후 브랜딩을 다시 하기 위해 거금을 들여 로고와 패키지 디자인을 의뢰한 브랜드 인큐베이팅 회사인 프로젝트 에디(Project Eddy)에서 가져온 패키지 디자인 시안을 보다가, 세상에. 지금의 책 패키지 디자인에 사랑에 빠지게 된 것이다. 제품 디자인을 전혀 모르는 내가 봐도 분명 손도 더 많이 가고, 비용도 더 많이 들 디자인이었음에도 이 디자인과 한눈에 사랑에 빠졌던 이유는 아마도 아빠가 소중히 여겼던 세상이 얼핏 보였기 때문이리라.


단순히 ’ 책‘이어서가 아니라, 나의 첫 우주, 아빠였기에. 나를 이 세상에 담아 준, 그리고 내가 닮고 싶은 아빠의 세상이었기에. 보배합과 사랑에 빠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음을 이제야 고백한다. 



보배합 시그니처 패키지 최종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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