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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나무 Mar 29. 2022

002. Expose (v) 드러내다

미소가 드러낸 것

* 오늘의 단어


* 예문


“See? She’s a typical Korean. Look at that big smile.”     

 

본의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하기엔 그 남자아이의 목소리의 톤이 너무나 일상적이었다. “오늘 점심 뭐 먹을까요?”라고 말하는 것이 어떤 악의를 품고 말할 수 있는 종류가 아니듯, 그의 말도 그러했다. 하지만 기회만 되면 살을 찌르는 가시를 내세우던 그때 당시의 내게는 이렇게 들렸다. “영어를 못하기에 그저 어색한 미소를 짓는 한국 여자아이 맞잖아, 너.”  

   

당장 그 자리에서 사라져버리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고등학교 4년 내내 플롯Flute을 불며 활동한 마칭 밴드marching band에서 개최한 연회banquet 자리에서 밥을 먹다가 말이다. 어떤 악기를 연주했는지 생각조차 나지 않는 남자아이인데, 갈색 곱슬머리 외에는 그 어떤 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 남자아이인데. 왜 이 말을 하던 남자아이의 쾌활한 톤은 너무나 선명하게 기억이 나는지. 무려 20여 년이 흐른 지금도.      


유난히 낯을 가리는 성격 때문이었을까? 언어의 문제였을까? 그때는 그러하다고 믿었다. 그래서 내 DNA에 대범하지 못한 성격을 심어준 부모님을, 모든 것이 예민한 중학교 3학년인 나를 낯선 미국 땅으로 데리고 온 부모님을 원망했다. 나의 이 부적절하고 견고한 믿음은 온 세상을 향해 가시의 날을 세우는 성난 고슴도치로 변하게끔 나를 몰아갔다. 하지만 정말, 세상을 찔렀나? 내 살을 찌르고 또 찌른 가시들이 아니었나?  

   

반찬을 담는 통은 반찬통. 필기도구를 담는 통은 필통. 그리고 쓰레기를 담는 통은 쓰레기통. 무엇을 담는가가 통의 정체성을 정의하는 것이라면, 그 당시의 나는 누구였을까. 내 인생의 끝에 나의 삶을 하나의 상자에 담아 사랑하는 분에게 선물로 드려야 한다면, 나는 아름다운 단어와 글, 힘든 첫 발걸음의 무게와 함께하는 다정한 대화를 내 영혼이라는 상자에 담아 드리기를 그 무엇보다 바란다. 이런 나의 소망을 위해 그때의 나는 가시 돋친 침묵을 선택했던 것일까.  


괜찮아, 괜찮아.

남자아이의 말에 결국 또다시 말 없이 지은 네 미소가 드디어 드러냈거든. 텅 빈것 같았던 침묵 아래 숨어있던 소망의 씨앗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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