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아트릭스 포터처럼, 미조와 주희, 그리고 찬영처럼
"I cannot rest, I must draw, however poor the result."
그녀에게는 눈앞의 아름다움을 그려내야만 하는 거부할 수 없는 열망이 있었다. 결과에 상관없이 그림과의 열광적인 사랑을 지켜낸 베아트릭스 포터. 그녀의 일생일대의 사랑 덕분에 나를 포함한 세상의 어린이들이 피터 래빗을 만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그림을 향한 사랑, 기쁨, 열정을 일평생 지키게 했을까?
아니, 아니다. 먼저 묻고 싶은 질문은 이것이 아니다.
평생 소중하게 간직하고 열정적으로 가꿔가야 할 사랑의 대상이 무엇인지 그녀는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사랑이 있는 곳이 천국이야. 비록 죽음이 갈라놓더라도 사랑이 있다면, 바로 그곳이 천국일 거야.”
손예진이 출연한 ‘서른, 아홉’ 드라마를 보고 남긴 엄마의 감상평. 비록 가상의 인물들이었지만 나 역시 그들의 여정에 참여하며 함께 울고, 함께 응원했다. 서른아홉의 나이에 췌장암 말기를 진단받은 친구. 친구를 포기하지 않고 더없이 친밀하고 애틋하게 서로를 보듬고 사랑하는 세 여성의 열광적이기까지 한 우정 일대기를 옆에서 지켜보면서 내 마음을 울리는 바로 이 질문. 도대체 이들은 서로를 어떻게 알아본 것일까?
사람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살도록 창조되었다고 믿는다. 아름다움을 향유할 수 있는 영혼이 없다면, 우리가 한 줌의 진흙더미와 다를 것이 무엇인가. 비록 한 알의 모래알만큼 아주 작을지라도, 비록 끊임없이 내리치는 파도에 결국 부수어진 조개껍질만큼 연약할지라도. 선명한 아름다움의 찰나를 목격할 수만 있다면, 그 찰나의 아름다움이 마음에 각인될 수 있다면, 목숨을 걸고서라도 그 순간을 지켜내고자 하는 열망의 씨앗이 마음 깊이 심기는 것은 지당한 일이라 감히 말해본다. 그러므로 즐겁게 상상해보자. 이 씨앗에서부터 피어날 지구의 사람 수만큼 다양한 꽃들이 얼마나 아름답게 어우러질지. 손에서 놓을 수 없는 붓이라든지, 시한부 인생을 사는 친구의 진짜 마음을 알아차리는 손길이라든지, 테이블 위에서 책을 통해 이뤄질 다정한 대화를 준비하는 마음이라든지. 피어날 꽃의 종류는 모두 다를지언정 사랑의 대상이 생기는 동기는 아마 누구에게나 동일할 것이다. 아름다움.
“언제나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당신은 당신 목소리로 무슨 변화를 만들었는가? 당신 목소리로 무엇을 가능하게 했는가? 과연 우리가 그런 엄청난 일을 해낼 수 있을까? 해낼 수 있다. 눈만 뜨면 소비자로 살아가느라 바쁜 우리가 까마득하게 잊고 있는 것은 우리가 만드는 존재, 창조적인 존재란 점이다.(p231)"라고 말하는 <슬픈 세상 속의 기쁜 말> 저자 정혜윤 피디의 단단한 고백처럼, 우리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창조적인 존재이기에 일생일대의 아름다움을 사랑으로 지켜내는 일이 가능하다. 베아트릭스 포터처럼, 미조와 주희, 그리고 찬영처럼. 정말로 그러하다. 그러니 우리, 오늘을 살아내자. 다시 오지 않을 지금의 아름다움을 발견하자. 그리고, 열광적으로 사랑하자.
"누구에게나 시간은 흐르고 그 시간은 되돌아올 수 없다는 것이 진리인 만큼이나 누구라도 일생에 한 번은 아름다운 세계에 눈뜨고 아름다움과 함께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는 것 역시 진리다." <슬픈 세상의 기쁜 말> 정혜윤, p2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