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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나무 Apr 21. 2022

006. Mundane (adj) 재미없는, 일상적인

그 어디나 하늘나라

커피. 커피가 필요하다. 매일 아침, 아이들을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난 후, 제일 필요한 것은 역시 커피다. 따뜻한 커피잔에서 바로 커피 한 모금을 마시며 거실의 탁자로 간다. 커피를 머금은 입이 따뜻하다. 몸이 산뜻해진다. 무엇이든 60분 안에 끝낼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어림없는 희망이 솟는 느낌이다. 하나, 둘, 셋. 자, 이제 준비되었나? 그럼 노트북을 열고 세계를 한 바퀴 돌아보자. 시작은 항상 한국이며, 역시 보배합부터다. 보배합 몰과 인사 후 유산균 팩토리 스마트 스토어를 확인한다. 그리고 동남아로 넘어갈 차례. 쇼피 싱가포르, 쇼피 필리핀. 잘 잤니? 이번엔 아마존이다. 아마존 미국, 영국, 독일, 그리고 일본으로. 밤새 이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안녕히 지냈는지, 긁어줘야 할 부분이 어디인지 확인하고 나면 그제야 허기가 몰려온다. 점심시간이다.

      

매일 한 자리에서 세계를 일주 하는 나의 테이블


식사를 시작하는 시간을 내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 매력적이다. 오로지 나의 페이스대로 먹는 식사는 길어봤자 20분 정도면 끝나는데, 뭐가 되었든지 식사 시간 한 시간을 꼭 지키려고 노력한다. 식사 후 반려견 새록과 함께 동네 산책을 하는 시간을 놓치지 않으려 애쓰는 것이 그 증거다. 한번 느슨해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침대와 한 몸이 되어버리는 나의 본성을 너무나 잘 알기에, 경쾌하고 짧은 동네 산책은 새록을 위해서도, 나를 위해서도, 그리고 오후 업무의 질을 위해서도 빼놓을 수 없다.    

  

산책을 다녀온 후, 손을 씻고 커피를 다시 내린다. 그렇지! 커피는 언제나 옳다. 노트북을 다시 연다. 그리고 아이들이 하원하는 오후 4시까지 후반전 시작! 이번에는 세계 일주가 아닌 바닥을 파고 깊이 내려가는 여행이다. 세부 손길이 필요한 아마존과 브랜디드 콘텐츠를 위한 엑셀, 파워포인트, 한글, 캔바, 브런치, 인스타그램, 블로그를 종횡무진 어루만지며 깊이 내려가는 여행. 오늘은 특히 새로운 제품을 아마존에 리스팅 하기 위한 작업으로 분주했다. 뭐든지 한 번에 매끄럽게 간 적이 없는 아마존인데 이번에도 역시나다. 제출한 제품 패키지 사진상에 브랜드 로고가 명확하게 보이지 않는다며 다시 케이스 로그를 오픈하고 리스팅 하라는 피드백을 받고 순간 멍해졌지만, 그래요! 검수를 제대로 안 한 제 잘못이죠! 하하하. 팔꿈치에서 손끝 길이밖에 안 되는 작은 화면 앞에 앉아서 쌓아가는 매일의 이 치열한 흔적은 도대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것일까.    

  

아마도 이런 공간이지 않을까? 언제나 가고 싶은 애디아 플라워

커다란 통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이 포근한, 8평 정도의 아늑한 공간. 누구나 쉽게 책을 고를 수 있는 책장과 편히 앉아서 집중할 수 있는 웜톤의 빈백이 놓인 한쪽 벽. 아, 그리고 보라색 꽃을 담은 화분을 테이블 위에 놓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공간의 가운데 위치한, 단 하나의 모임만을 위한 8인용 우드 테이블 말이다. 곳곳에 보이는 생명력 넘치는 초록 식물들과 함께 갓 내린 커피 향과 갓 구운 빵 냄새가 가득한, 언제든지, 누구든지 환영받을 공간. 나는 이 공간에서 이뤄질 우리의 다정한 대화를 언제나 그린다. 각자의 삶에 주어진 작은 세상에 무엇이라도, 조금이라도 나눌 수 있는 용기를 채워가는 그런 따뜻한 대화 말이다. 바로 이 대화를 영혼 안에 담을 수 있다면 상상 속의 예쁜 공간이 아닌 들 어떠하랴. 서로의 마음을 마주할 수 있는 한 뼘의 공간과 커피 한 잔이면 매우 족한 것을.      


그렇다. 바로 여기에 그 이유가 있다. 컴퓨터 앞이던지, 아마존이던지, 높은 산이던지, 거친 들이던지, 초막이던지, 궁궐이던지. 오로지 나만이 살아낼 수 있는 이 자리를 오늘도 지키는 이유. 당신의 이유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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