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엄마의 정원, 그리고 심미안 수업
"저 아이들이 네 눈엔 시무룩해 보이지 않니?"
목디스크로 한참 고생 중이어서 침대에 누워있느라 정원을 돌보지 못하던 엄마가 창문을 보다가 한 말이다.
식물도 자기를 예뻐하는 사람을 알아본다는 엄마의 말을 평소에도 익히 들어왔기에 나는 알지 못하고 원하는 만큼 공감이 가지 않는 엄마만의 영역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시무룩해 보이는 꽃이라니! 그때는 아파서 꽃을 돌보지 못하는 엄마의 안타까운 마음을 반영한 것이라 생각하고 웃어 넘어갔지만 그 말을 하는 엄마의 얼굴이 내 마음속에 사진처럼 아름답게 남겨져 있다.
꽃들을 향한 엄마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마치 연애하는 사람과의 세세한 추억을 듣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한 송이 한 송이마다 엄마와 개인적으로 쌓아가고 있는 추억이 있다.
겨우내 추위를 피해 실내에 보관하다 보니 시들었기에 죽은 줄 알았던 꽃과 나무를 봄을 맞이하여 정원에 내다 놓고 매일 들여다보며 쓰다듬고, 잘라줘야 할 곳은 적당한 곳을 잘라주며 사랑해주었더니 다시 살아났다는 기적과 같은 간증을 들었다.
4~5년 전부터 심어놓은 수국도 종류가 여러 종류라 이른 봄에 피는 수국, 한 여름에 피는 수국, 그리고 가을에 피는 수국이 다 다르다며 이제 여름을 맞이하여 꽃을 피우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수국을 눈으로 다시 매만지신다.
작년부터 준비한 가을에 노랗고 아름다워질 갈대들을 심은 화분들을 자랑스럽게 소개도 하신다.
예전 같으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을 엄마의 이야기들이 아이 둘을 키우는 엄마가 되어버린 이제는 다른 무게로 다가왔다. 그래서 물어봤다.
"엄마는 정원을 가꾸는 것이 왜 좋아?"
웃으면서 대답하신다.
"지구 상의 작은 한 모퉁이의 땅을 아름답게 가꾸어 가는 일이 가치 있지 않니?"
생각해보면 내 기억 속의 엄마는 항상 예술을 시도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초등학교 때에는 백화점에서 있던 그림 수업을 들으시며 집에 커다란 이젤을 사놓고 그림을 그리셨다. 이사를 몇 번 다니다 보니 어디론가 사라졌던 엄마의 이젤이 생각난다.
엄마가 있는 곳에서는 라디오가 항상 있었으며 거의 대부분, 그리고 오후 4시에는 확실하게 FM 93.1, KBS 클래식 FM이 흘러나왔다.
내가 중, 고등학교 때에는 인테리어에 재능을 발휘하셨다. 집안 장소 곳곳에 따뜻한 색감의 페인트를 칠하셨고, 엄마의 취향을 가득 담은 소품을 사서 알맞은 장소에 배치해 놓아 일상의 공간을 풍요롭게 만들어가셨다. 그런 엄마 덕에 나는 친구들을 우리 집에 초대하는 것이 좋았었던 기억이 있다.
《심미안 수업》의 저자인 사진작가 윤광준은 그의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아름다움을 느낀다는 것은 무엇일까. 결국 그 내용을 이해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감각이 깨어나는 건 편견 없이 바라보고, 한발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이해하려고 할 때'이다. 다가가지 않는데 어떻게 수용력이 생기겠는가. 사람들은 미적 감각을 특별한 능력처럼, 타고난 재능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오히려 반대다. '알아야 보인다'는 말은 '다가서야 느끼고, 경험해야 보인다.'로 바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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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미안은 타고난 능력이라기보다 커가는 능력이다. 스스로 훈련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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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자연스럽게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마음을 연다. 좋아하면 시키지 않아도 닥치는 대로 찾는다. 관심의 강도만큼 알게 되고, 닮고 싶은 만큼 다가가게 된다.
《심미안 수업》 윤광준, p35-37
나에게는 이미 심미안, 아름다움을 알아보는 능력을 가진 인생 선배가 있다. 그녀는 가치 있는 것을 알아보기 위해 내 기억이 닿는 저 먼 곳에서부터 여러 시도를 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발견한 그 물결에 자신을 온전히 내어 맡기며 자신의 예술적 취향을 마음과 시간을 내어 가꾸어가는 사람이었다. 그러한 그녀의 삶의 태도는 두 어린아이의 들의 엄마이자 30대를 살고 있는 그녀의 딸인 나에게 커다란 울림으로 다가온다.
동시에 미래의 나의 아이들이 기억할 나는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지게 한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나 또한 나의 엄마처럼 예술을 시도하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