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시판에 신고글 올렸습니다. 물건을 보내주시던지 아니면 빨리 환불해주세요. 경찰에 신고하겠습니다.-
퇴사 후 육아에 전념하면서 느낀 건 선배들이 내게 했던 말이었다. 아이를 낳고 기저귀 값, 분유값을 걱정하는지 시간이 갈수록 피부로 와 닿았다. 신생아 때는 천 기저귀를 삶고 빨며 지냈던 내가 손목에 물이 차면서 자연스럽게 포기했다. 몸이 힘드니 모유도 금방 말라버려 아이에게 100일까지 밖에 수유를 하지 못한 죄책감은 생각보다 오래 지속되었다.
민감한 아이의 피부는 싼 기저귀를 거부했고, 몇몇 브랜드의 분유는 먹기만 하면 토해서 빨래가 늘어났다. 겨우겨우 아이에게 맞는 분유와 기저귀를 찾았을 때, 조금이라도 저렴한 곳에서 구입하려고 폭풍 검색을 했던 나. 그즈음 나는 "중고나라"라는 곳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구매할 것도 팔 물건도 없었기에 중고거래를 이용할 필요성을 못 느끼고 살았다. 막상 발을 들여놓으니 이곳은 신세계!!
아이에게 필요한 물건을 20~70% 가까이 저렴하게 살 수 있었다. 기저귀와 분유도 있었기에 새 물건이 나오는지 나는 자주 중고나라를 드나들었다. 남편이 주는 생활비는 한정되어 있었으므로 어떻게든 아끼고 아껴야만 했던 그때가 떠오른다. 구입만 했던 것을 아니다. 아이가 커가면서 작아지는 옷, 장난감, 책 등을 중고나라에 올리면 생각보다 빨리 구매가 이루어졌다. 왜 진작 이 맛을 몰랐을까. 아이가 돌 무렵까지 나는 중고나라에서 나름 "열심 회원"으로 활동했다.
'이제 분유를 슬슬 끊을 때가 되었는데... 이번만 먹이고 분을 떼자' 운 좋게 시중보다 30% 저렴한 분유를 9통 파는데 오늘 하루만 5000원 가격 인하라는 빨간 문구가 눈에 띄었다. '이거다 이거' 빨리 클릭하고 판매자에게 광속으로 입금을 했다. 입금 후 오후에 송장을 보내준다는 판매자는 저녁이 되어도 문자 한 통 없었다. '너무 많은 문의가 와서 그런가? 내일까지 기다리고 연락해봐야지'하며 하루를 아무 생각 없이 보냈다. 그리고 그다음 날에도 판매자에게서는 연락이 없었다.
전화를 해도 받지 않는 판매자에게 연신 문자만 보내었다. 혹시라도 연락이 올까 봐 내 손에서 핸드폰을 놓을 줄 몰랐다. 사고가 나지 않았을까? 판매자에게 나쁜 일이 생긴 건 아닐까... 그런 걱정까지 하고 있었다. 그리고 4일이 지난 새벽에 글 서두에 언급했던 문자 한 통이 받았다.
다음 날 중고나라 게시판에 글을 올렸더니 아래 댓글이 50여 개. 판매자의 이름과 연락처, 계좌번호가 동일했다. 나와 똑같이 새벽에 같은 내용의 문자를 받았다는 글을 보고 머리를 한 대 맞은 것처럼 멍했다. 분유 사기는 뉴스에서만 보는 일일 거라 생각했으나 아니었다. 나는 순진한 게 아니라 바보였다는 걸 깨달았다.
모두들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오지 않으려면 사기를 당한 사람들이 신고를 하는 게 가장 빠르다는 결론이었다. '귀찮아서였을까? 여유가 있어서였을까? 내게 12만 원은 큰돈인데 이분들은 아무것도 아닌가?' 사기 피해자 중 고작 몇몇만이 경찰서에 간다는 댓글을 남겼다. 얼마나 시간이 걸리든 잡고 싶었다. 나는 바로 다음날 아기띠를 하고 경찰서로 향했다.
그날따라 뜨거운 태양은 더 맹렬하게 활활 타오르며 나와 아이를 공격했다. 정수리에서 시작된 땀이 이마로 흘러내려 아기 손수건으로 땀을 연신 닦아 내었다. 버스에서 경찰서까지는 한참 걸어야 했는데 너무 더워서 아이도 짜증이 많이 난 상태였다. 내 배와 아이의 배가 밀착되어 있었기에 축축한 느낌이 서로에게 전해지는 중이었다. '엄마가 미안해. 미안해.'
경찰서 안은 에어컨이 고장이 난 건지 사방으로 문을 열어놓았지만 열기를 빼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민원을 담당하시는 분도 더위에 지쳐 얼굴에 짜증이 역력했다. 겨우겨우 서류를 작성해서 제출하려는데 아이가 울기 시작했다. 다독이고 부채질을 하며 아이를 달래 보았지만 더 큰 울음소리만 번질 뿐이었다. 이체확인서, 글 캡처, 신분증 사본을 던지다시피 내고서 우는 아이를 데리고 경찰서 밖으로 나왔다.
오직 괘씸한 그놈을 잡겠다는 다짐으로 경찰서를 방문했다. 하지만 이 더운 날 아이 엄마들은 아이를 데리고 이동하는 자체가 힘들어서 신고를 포기했구나라는 깨달음이 그제야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땀에 절어 버스에서 잠든 아이를 보며 너무도 불쌍해 보였다.'엄마 때문에 네가 고생한다. 고생해.' 내리자마자 마트에 들러 분유 2통 사 가지고 집에 들어가면서 나 스스로가 그렇게 초라할 수가 없었다.
'돈 아껴보겠다고 욕심을 부린 벌인가? 나쁜 놈 잡히기만 해 봐라...'
남편에게 이야기는 하지 못하고 그렇게 몇 개월의 시간이 흘러갔다. 그동안 나는 그 어떤 거래도 중고나라를 통해 하지 않았다. 아니할 수가 없었다. 좋은 거래를 하는 사람들까지 색안경을 끼고 볼까 봐 나는 두려웠던 것이다. 6개월이 지났을 즈음에 경찰서에서 사기꾼이 잡혔다는 문자 한 통이 받았다. 그리고 처리가 어찌 될지도 담당 경찰관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같은 사기를 여러 번 저지른 전과범이었다니... 사람 이름을 잘 잊어버리는 내가 아직도 그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 걸 보면 충격이 컸던 게 분명하다.
태어나 처음 당해본 사기였으니까... 중고나라와 이별을 하고 나는 새로운 중고 거래를 텄다. 직거래를 할 수 있는 "당근"이라는 곳에서 말이다. 하지만 이곳에서 마저 나는 배신감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