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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gancia Jun 04. 2021

보랏빛 향기 - 정읍 라벤더 농원.

향기로 뇌에 각인되는 것 중 가장 아름다운 건 아마 "꽃"이 아닐까? 수천수만 종의 꽃이 지구 상에 존재하지만 살면서 특정한 향과 함께 기억되는 꽃은 그리 많지 않다. 지금 당장 말할 수 있는 꽃향기는 전문가가 아니라면 많아야 몇십 개 정도?


보라색 향기를 떠올리면 많은 사람들이 라벤더나 보라색 소국을 떠올린다. 내가 라벤더 향을 좋아하게 된 건 20대 무렵 회사 동료로부터 받은 라벤더 오일 때문이었다. 그 당시에 스트레스성 불면증을 겪고 있던 내게 라벤더 오일은 밤마다 심신을 안정시키는데 도움이 되었으니까... 그러던 중에 tv에서 일본의 라벤더 농원을 스치듯 보았다.


'저렇게 아름다운 보랏빛 물결이 또 어디 있을까. 한국에 저런 곳이 있다면 당장 갈 텐데...'내 오랜 바람은 며칠 전 현실이 되었다. 정읍에 라벤더 농원이 생긴 것이다.

주차장에서 차 문을 열었을 때 현기증이 일었다. 라벤더 밭은 주차장과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지만 바람을 타고 온 달콤한 향은 마스크를 뚫고 내 발걸음을 재촉하기에 충분했다. 10만 평 규모의 라벤더 언덕을 올려다보면서 우리 가족이 입은 떠억 벌어졌다. 태어나 처음 보는 라벤더 밭. 중간중간 안내원들이 꽃 사이로 들어가 사진을 찍어도 된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하지만 벌들이 어찌나 열심히 일하고 있는지 겁이 많은 나와 아이는 밖에서 보는 것으로 만족하며 천천히 언덕만 올랐다.


50% 정도 핀 라벤더를 보며 아쉬운 마음도 들었지만 아이와 함께 꽃 주면에서 쪼그리고 앉아 라벤더 꽃을 자세히 관찰할 수 있었다. 만약 100% 개화했다면 이곳은 어떤 장관을 이루었을까? 누군가 이곳에 대해 묻는다면 꼭 6월 말에서 7월 맑은 날 방문하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언덕을 오르면서 흘렸던 땀을 우리는 벤치에 앉아 식혔다. 그리고 코와 입으로 들어온 라벤더 향이 손과 발끝까지 스며들도록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방향제나 오일에서 맡았던 향과는 차원이 달랐다. 살아 숨 쉬는 꽃잎들이 이 곳에 나를 유혹하듯 바람에 맞춰 춤을 추는 모습에 우리는 매료되었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아이가 알아챘는지 "엄마 꽃이 활짝 피면 할머니 할아버지랑 같이 와요" 이런 걸 보고 마음이 통한다고 이야기해야 하는 걸까? 언덕을 내려와 본 보라색 물결은 이제 '안녕'이라 말하는 듯 손을 흔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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