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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gancia Jun 11. 2021

내가 될 수도 있었다.

- 건물 붕괴 사고.

"집에 있기 심심하지 않아? 나 동구 쪽에 일 보러 가야 하는데..."

"아빠 저 강아지랑 같이 갈래요."

"둘이 다녀오지 그래요? 오붓하게 부자간의 데이트하고 좋잖아."

"난 엄마랑도 가고 싶은데..."


아이의 간절한 눈빛에 나는 읽을 책을 챙겨 차에 올랐다. 시내를 이리저리 도는 동안 아이는 차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몸을 흔들며 강아지와 놀아주었다. 나는 옆자리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홀짝거리며 밖을 보고 있었다. 창밖의 사람들은 더위와 높은 습도에 찌들어 보였지만 차 안은 에어컨으로 비교적 쾌적했다. 작년부터 시작된 재개발과 지하철 공사로 차는 느리게 이동 중이었다.


"이곳이 다 재개발될 거라고 누가 생각했겠어. 기억해요? 결혼 전에 이 근처로 이발하러 다녔었잖아요."

"그 이모가 이발은 정말 잘하셨는데... 어디로 옮기 셨는지 모르겠네."


위태롭게 건물의 형태만 덩그러니 보이는 곳을 우리는 과거를 회상하며 지나쳤다. 그리고 한 시간 후 그곳은 무너졌다. 돌아오는 길 통제된 도로를 보며 내 등에서는 소름이 돋아났다. 재빨리 휴대폰으로 뉴스 속보를 검색해보니 차를 타고 지나쳤던 그 건물이 무너진 것이었다. 그것도 손님을 태우기 위해 정차한 버스 위로 와르르.


아찔한 속보 듣고 우리 가족은 잠시 말을 잃었다. 그곳은 예전에 남편이 자주 이발을 하러 갔던 옆 골목의 건물이었다. 혹시라도 근처에 살고 있는 지인들이 현장에 있지는 않을까 떨리는 손으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다행히 내가 아는 사람들은 무사했다. 남편의 일을 마무리하고 사고 현장 근처에서 겨우 맘을 안정시키고 집에 돌아오는 길, 구조되는 사람들의 소식을 기다렸지만 9명이나 목숨을 잃었다.


인터넷 뉴스를 통해서 버스에 타고 있는 분들의 사연들을 읽어 내려갔다. 학교에서 선후배를 만나고 버스를 탄 고등학생, 아버지는 앞자리에 딸은 뒷자리에 타고 있다 생사가 엇갈린 부녀, 아들의 생일상을 차려주고 일을 다녀온 어머니.

'나일 수도 있었다. 우리 가족일 수도 있었다.'


삶이란 무엇일까? 평소처럼 아무렇지 않게 하루를 보내다 예기치 못한 사고로 생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긴 사람들. 그들에게 삶은 어떤 의미였을까? 최근에 아이와 보았던 '소울'이라는 영화가 떠올랐다. 이루고 싶었던 꿈의 무대를 서기 직전 사고를 당한 '조 가드너'. 영화 속에서 그는 이승으로 돌아와 연주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현실의 죽음은 '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누구도 죽음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확답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단하고 거창하지 않더라도 주어진 시간을 소중하고 감사하게 그리고 가치 있게 사용하는 것, 그 마음이 이번 사고를 통해서 더 강해졌다.


"엄마 울지 말아요. 엄마가 우니까 나도 슬퍼요."

"사고를 당하신 분들은 사랑받는 가족들이었을 거야. 남겨진 사람들을 생각하니 눈물이 나."


눈물을 흘리는 나를 보더니 아들은 휴지를 뽑아 내 눈물을 닦아주었다. 사고 현장을 지나쳤다는 놀라움, 살아있다는 안도감, 사고를 당한 이들과 가족들에 대한 슬픔과 안타까운 마음이 뒤섞여 감정은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아이와 잠들기 전 사고를 당한 분들과 그들의 가족들을 위해 기도했다. 부디 남은 이들의 고통이 조금이라도 덜어지기를... 그리고 동일한 사고로 희생되는 일이 더 이상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침대에 누운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하늘이 슬피 우는소리가 방안을 가득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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