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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gancia May 31. 2021

그녀와의 재회를 꿈꾼다

편지 - 그리운 벗에게 (2)

https://brunch.co.kr/@uriol9l/223


1년 동안 때때로 은옥을 꿈에서 만났다. 꿈속에서 은옥은 '꼭 편지할게'라며 거듭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꿈에서 깨면 은옥이 없는 교실 안에 홀로 서있는 기분이 들었다. '왜 답이 없는 건지... 내가 보낸 편지가 분실되었을 확률은 얼마나 될까? 아니 혹시 무슨 사고라고 있었던 건 아닐까?' 은옥에 대한 그리움은 파도처럼 밀려왔다가 밀려 나가기를 반복했다. 이미 3번의 전학을 다녔던 내게는 익숙한 친구들과의 이별이었지만 유독 은옥과의 이별은 견디기 어려웠다. 그맘때 나는 사춘기라는 생의 첫 비바람을 맞고 있었으니까...


뜨거웠던 여름날, 하교 후 우편함에 은옥의 이름이 적힌 편지 봉투를 받고 나는 어쩔 줄을 몰랐다. 떨리는 마음으로 편지 봉투를 뜯었지만 반가움과 떨림은 편지를 읽으며 무너졌다. 은옥의 편지는 짧고 간결했다. 그 오랜 시간의 기다림이 무색할 정도였다.


내가 이사를 하고 난 뒤, 은옥도 타지로 터를 옮겼다 했다. 외할머니 댁을 방문하면서 혹시나 내 편지가 있을까 봐 살던 집에 가서 편지를 받았노라고... 열 통 정도의 편지를 은옥은 받았다고 적혀있었다. 분실된 편지들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은옥은 부모님과 살지 않고 오빠와 함께 고모님 댁에서 산다고 적었다. 왜 봉투에는 지금 사는 곳의 주소가 아니라 예전 주소가 그대로 적혀있었을까?  몇 번이고 편지를 읽고 또 읽었지만 예전에 은옥에서 느껴지던 밝음과 따뜻함은 찾기 어려웠다.


아직도 편지의 마지막 말을 기억하고 있다. 잘 지내고 건강하라고... 나중에 만나면 좋겠다는 그 기약 없는 약속 말이다. 서로의 눈빛을 마주하고 했던 이별보다 더 서글펐다. 한동안 은옥의 편지를 안고 살았다. 혹시 몰라 예전에 보냈던 주소로 편지를 보내었지만 답장을 받지 못하였다. 그리움은 화석처럼 시간의 흐름에 조금씩 퇴적되어갔다.


작년 크리스마스이브에 내게 갑작스러운 이별을 고했던 친구의 일을 겪었을 때, 은옥을 떠올렸다. 한동안 멘붕 상태에서 인간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삶에서 어쩔 수 없는 이별은 예고 없이 온다는 걸 어쩌면 오래전부터 나는 알고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아무리 친한 사이라고 하더라도 말 못 할 사정이라는 것이 존재했을 터, 나는 '이해한다'라는 말을 뇌 속에서 끄집어내었다. 그리고 '이해한다'라는 말이 가슴에 닿을 때까지는 시간에 맡겼다.


여전히 그녀가 그립다. 어딘가에서인가 그녀도 나를 그리워하고 있을까? <갈매기의 꿈>의 저자인 리처드 바크의 말을 믿는다. "작별 인사에 낙담하지 말라. 재회에 앞서 작별은 필요하다. 그리고 친구라면 잠시 혹은 오랜 뒤라도 꼭 재회하게 될 터이니." 세월의 흔적이 우리의 얼굴에 고스란히 묻어있을 그날의 재회가 아름다울 수 있도록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 오늘도 나는 그날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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