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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gancia Aug 17. 2021

밤마다 '다이슨'들고나가는 남자.

평소처럼 남편의 퇴근 시간에 맞춰 저녁을 준비해놓고 그를 기다렸다. 보통 6시면 전화가 오는데 남편은 연락이 없었다. 아이가 돌이 되기 전, 퇴근하면서 크게 사고가 난 적이 있던 터라 초조한 마음으로 시곗바늘이 7시를 지나가는 걸 바라보고만 있었다. 사고가 났던 날 아이를 안고 뛰어가면서 얼마나 마음을 졸였던지... 8시쯤 퇴근을 한다고 연락이 왔다. 직장 동료 여자 친구가 코로나 확진이 되어서 회사가 뒤집어졌단다.


지친 목소리에 집에 오면 식사하고 바로 눕겠구나 싶었는데 웬걸? 오자마자 다이슨을 가슴팍에 안고 나가는 모습에 기가 막혔다.


"나 좀 나갔다 올게"

"또 그걸 들고나가요? 피곤하다며..."

"금방 올게"


'피곤하고 힘들면 내일 가지고 나가도 될 것을...' 

분명 두 달 전 홈쇼핑에서 다이슨을 구매할 때 그는 이렇게 말했었다.


"자기~ 청소하느라 힘들잖아. 다이슨이 그렇게 좋다네. 하나 사자."

"아니 집에 청소기가 두 대다 있는데... 나는 이걸로 충분해요."

"너무 오래된 청소기라 전선 끌고 다니잖아. 자기 고생 그만해."


나는 평소 가전제품에 별로 관심이 없다. 작동만 되면 ok. 뭔가 꿍꿍이가 있을 것 같았음에도 몇 달 동안 집요한 요구에 지쳐 무언의 승낙을 했다. 다이슨이 온 뒤로 남편은 밤마다 다이슨을 품에 안고 밖으로 나간다. 이유인즉, 자동차 내부 청소. 차의 먼지를 다 빨아들이고 들어오는 남편의 표정에서 깊은 만족감이 엿보였다. 내일의 청소를 위하여 청소기를 깨끗하게 분해해 먼지를 버리고 필터도 씻어 놓는 남자. 10년을 같이 살았지만 저렇게 꼼꼼한 모습은 낯설다. 정작 물기에 젖은 필터가 마를 때까지 나는 집에서 다이슨을 돌릴 수도 없다.


'참 지극 정성이다' 눈에서 레이저가 나올 것 같다가도 깨끗한 차 내부를 보며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것 같아 한편으로는 그래그래 하며 인정해 버리고 만다. 

 

'저 비싼 다이슨은 누구를 위한 청소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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