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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gancia Aug 18. 2021

내가 어딜 봐서 '다단계'로 보이니?

ENFJ에 대한 오해와 진실

새집으로 이사를 온 지 3일째 되던 날이었다. 예전에 살던 집과 도보로 불과 10분 거리라 유치원을 옮기지 않고 계속 다니기로 결정했다. 다만 아침마다 등원 버스를 타야 한다는 불편함은 있었지만 말이다. 아침 시간, 아이를 빨리 유치원에 보내고 마저 짐 정리를 하려고 급하게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왔다. 단지 앞에는 아들과 똑같은 주황색 가방을 한쪽 어깨에 멘 엄마와 아이가 장난치는 모습이 보였다. 


"안녕하세요. 아이가 ** 유치원에 다니나 봐요? 저는 며칠 전에 이사를 왔어요."

"아~ 네."


평소대로 밝게 웃으며 인사를 건넨 것뿐인데 나를 보던 아이 엄마의 얼굴에 약간 당황한 기색이 비쳤다. '내가 뭘 잘못 말했나?' 싶어 눈만 깜박거리다가 아이가 등원 버스에 타자마자 신나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아직 짐 정리가 되지 않아서... 나중에 커피 마시러 놀러 오세요. 초대할게요." 이렇게 말하고 집으로 올라왔다. 그 후로 몇 번 아이 엄마를 마주치면서 인사를 나누었고 한참 뒤에야 우리는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아이 엄마는 나보다 2살 어려서 어느 순간부터 나를  '언니'라고 살갑게 부르기 시작했다. 


"언니 그거 알아요? 언니 처음 저한테 인사했을 때, 저 언니가 '사이비' 아니면 '다단계'인 줄?"

"엥? 내가 어딜 봐서?"

"아니 처음부터 너무 밝게 인사를 해서... 뭔가 숨은 의도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처음에 좀 무서웠어요."




이 동생이 했던 말은 내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두세 번  들어본 말이었다. 나는 ENFJ 유형을 타고났다. 3번을 검사했고 3번 다 이 유형이 나왔으니 아마 맞을 것이다. 16가지 유형 중 가장 적은 비율을 보이는 유형이라 100명 중 한 명 볼까 말까 한 희귀 유형이란다. 사람을 좋아하고 그 사람들의 필요에 예민한 관심을 기울인다. 집안일을 하거나 길을 걸을 때, 내 주변 사람들을 떠올리다 보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로 가득해진다. 


간혹 과도한 관심이 독이 될 때가 있다. 지나치게  감정을 투영하고 분석하기 때문에 내 잘못이 아닌 일에도 모두 내  잘못이라며 며칠씩 앓아눕는다. 결국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계에 도달하면 스스로가 어떠한 도움도 될 수 없다는 딜레마에 빠져서 몸과 마음이 넝마처럼 너덜거린다. 서두에 언급한 경험담처럼  불순한 의도로 접근한다는 오해를 불러오는 건 덤이라 하겠다. 차가움이 문제가 아니라 너무 뜨거운 탓이다. 결국 어디서든 과하면 탈이 난다. 


내 문제점을 알아가면서  '타인'에 대한 관심은 조금 내려놓고 '나'라는 사람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 보았다. 나무와 나무 사이에 적당한 거리가 있어야 잘 자라는 것처럼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너무 가까워 지거나 멀어지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인다. 이 점에서 독서와 글쓰기는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관계가 무엇인지를  계속 상기시켜주는 역할을 해왔다. enfj는 감성적이고 정이 많을 뿐 아니라 계획을 짜고 실행하는 것을 즐긴다.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 회복 탄력성이 높아 금방 제자리를 찾는다. 


누군가 또다시 나를 '다단계' 혹은 '사이비'라고 보는 상황이 생길까? 만약 그런 말을 듣게 될지라도 상처를 받지는 않을 테다. 나를 겪어본 사람들이 시간을 통해서 증명해 주리라 믿으니까. 


- 반전은 존재했다. 서두에 적었던 동생은 2년 동안 나를 깜쪽같이 속인 '사이비 종교인'이었다. 주변에 엄마들 사이에서 소문이 나면서 결국 동네에서 이사를 가고 말았다. 내가 가장 늦게 그 사실을 알게 되었고, 태어나 처음으로 내 손으로 폰 번호를 지우는 '손절'을 경험했다. 날 오해의 시선으로 바라봤던 건 어쩌면 그녀의 '방어기제'는 아니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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