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ragancia Aug 24. 2021

'전문가' - 불편한가요?

* 전문가 - 어떤 특정한 부분을 오로지 연구하여 그에 관한 지식이나 경험이 풍부한 사람. 또는 그 일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


그녀를 만난 건 4년 전, '육아맘 특강'을 통해서였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홀로 버스를 타고 강연장에 도착하여 강연 문에 들어섰다. 빽빽한 의자가 놓인 그곳에는 이미 많은 엄마들이 앉아 있었다. 나 역시 비어 있는 자리에 앉아 팸플릿을 보며 설레는 맘으로 강의를 기다렸다.  결혼 전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라는 프로그램을 통해서 본 오은영 강사는 카리스마가 넘치는 의사이자 육아 전문가로 보였다. 언젠가 내가 육아를 하게 된다면 이 분이 쓴 책을 꼭 한번 사서 읽어봐야겠다고 다짐했고 출산 후 두 권의 육아책을 정독한 기억이 있다.


최근 '금쪽같은 내 새끼'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대중 앞에 선 그녀. 금쪽같은 처방전에 이어 스마트폰에는 그녀에 대한 뉴스거리가 심심치 않게 보인다. 10분에 9만 원이라는 상담비와 그녀가 즐겨 입는 명품을 보고 불편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전문가가 요구하는 금액은 정당한 것이라며 그녀의 편을 드는 사람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의 댓글을 보게 된다. 오은영 강사와 관련된 기사를 보면서 2년 전 읽었던 이야기 하나가 떠올랐다.




핵발전소에서 커다란 기술적인 문제가 발생한 적이 있었습니다. 발전소의 엔지니어들이 온갖 노력을 다해봤지만 무엇이 문제인지를 찾아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핵발전소 건설과 엔지니어링 분야에서 최고의 실력을 가진 컨설턴트가 도착해서 흰 가운을 걸치고 클립보드를 들고 다니면서 진단을 시작했습니다. 이틀 동안 그는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통제실에 있는 수백 개의 다이얼과 계기를 체크하며 노트를 하기도 하고 계산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두 번째 날 마지막에 그는 주머니에서 검은 매직을 꺼내 든 후 어떤 계기에 크게 ‘×’ 자를 그었습니다. 그는 “이게 문제군요. 이 계기와 연결돼 있는 장치를 교체해보시지요. 그러면 문제는 해결될 겁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고 나서는 작업복을 벗어던지고 공항으로 떠났습니다. 엔지니어들은 그가 말한 장치를 분해해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장치가 문제의 원인임을 확인했습니다. 곧 교체가 이뤄졌고 발전소는 다시 정상 가동되었습니다. 일주일쯤 후 발전소 책임자는 그 컨설턴트로부터 서비스를 제공한 대가로 천만 원짜리 청구서를 받았습니다. 발전소 책임자는 비록 수십 억 짜리 설비에 문제가 생겨 엄청난 손실이 야기된 것을 고치긴 했지만 그래도 청구액의 규모가 너무 커서 깜짝 놀랐습니다. 그래서 그는 컨설턴트가 한 일을 따져보았습니다.


컨설턴트는 이틀 동안 어슬렁거리다가 계기 하나에 검은 글씨로 ‘×’ 자를 써놓은 것밖에는 한 일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간단한 일을 해놓고선 1만 달러를 청구하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너무 지나친 것처럼 보였습니다. 발전소 책임자는 컨설턴트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당신의 청구액을 세목별로 분류해서 명기해주실 수 없을까요? 제가 보기엔 당신이 한 일이라곤 한 계기에 ‘×’ 자를 써놓은 것 딱 하나밖에 없습니다. 이 정도의 일에 천만 원을 지불하라는 건 너무 과한 것 같은데요.”

며칠 후 발전소 책임자는 컨설턴트로부터 세부내용이 적힌 청구서를 받았습니다. 내용인즉, “계기에 ‘×’ 자를 쓴 데 1만 원, 어떤 기계에 ‘×’ 자를 써야 할지를 찾아낸 데 999만 원”이었습니다.




육아를 하다 보면 다양한 문제들에 직면한다. 아이도 세상이 처음, 부모도 처음, 모든 것들이 낯설고 불안하다. 그 불안감 속에서 차근차근 익숙함을 배워나간다. 때때로 어떤 문제는 도저히 해결되지 않을 것 같아 좌절하는데 이럴 때 우리는 책을 보거나 경험자에게 조언을 구하거나 막바지에 가서는 '전문가'를 찾는다.


'전문가'라고 자신하는 사람들 중에는 이론상으로는 이해하지만 경험해보지 않았거나, 아무리 많은 시간이 더해진다고 할지라도 늘 어디에‘×’ 자를 그어야 할지를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세상에는 진정한 '전문가'가 존재한다. 그들은 문제를 정확히 보고 진단하고 도움을 베푼다. 내가 보는 오은영 박사는 어디에 'X'자를 그어야 하는지 알고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을 때, 그녀를 찾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는 각자의 문제일 테다. 그녀보다 더 유능한 전문가도 존재할 테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어딜 봐서 '다단계'로 보이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