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생에 다시 태어난다면.
마루에 걸 터 앉은 남자는 흰 반팔 와이셔츠에 진회색 정장 바지 차림이었다. 그의 오른편에 반쯤 비워진 소주 병과 술잔이 짝을 이루고 있었다. 소주잔 안에 주백색 등이 담겨 반짝였다. 연중 많아야 서너 번이었을까. 고단함에 목 끝까지 차오르면 그는 소주 한 병을 안주 없이 삼켰다. 초가을로 손을 뻗은 밤공기를 가르며 풀벌레 소리가 요란했다.
"언제 오셨어요?" 작은 방문을 빼꼼 열고 물었다.
"더 자지. 왜 나왔어?"
남자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축 늘어진 하얀 등이 어서 들어가라며 말을 이었다. 뒤돌아 방문을 닫고 남자 곁에 바짝 다가가 앉았다. 그 사이 잔은 깔끔하게 비워졌다. 남자는 소주병에 들어 있는 투명한 영혼을 잔에 절반쯤 옮겨 놓았다. 긴 한숨 소리가 반복되었었지만 가을바람을 벗 삼아 말의 울림을 기다렸다. 옛날이야기해 줄까? 그 질문이 나올 때까지 양쪽 무릎을 오므려 잡고서.
밤이 두려운 소년은 무작정 형의 손에 이끌려 골목길을 내달렸다. 자신보다 한 뼘이나 큰 형의 보폭을 따라가기란 쉽지 않았지만 죽을힘을 다해 뛰지 않으면 괴물에게 붙잡힐게 뻔했다. 넘어져도 용수철처럼 바로 일어났다. 까진 무릎에서 삼지창 모양의 핏물이 비쳤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작은 아버지의 창고까지 괴물은 오지 못할 터였다. 겨우 창고 문을 열고 마른 흙이 뒤엉킨 농기구들 사이에 숨고서야 다친 무릎이 아려왔다.
괴물과 함께 엄마와 여동생 셋을 두고 작은 형과 도망쳤다. 뒤늦은 후회가 창고 문틈을 사이로 기어 들어왔지만 두 살 많은 형은 아직도 소년의 손을 꼭 움켜쥐고 있었다. 밤을 지새우고 집에 들어가면 엄마와 여동생들 몸엔 빨갛고 푸른 자국들이 보이겠지. 그 모습이 싫어 학교로 바로 등교하는 형제였다.
아버지는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군인이셨다. 아버지께서 집에 돌아오셨을 때, 우리 6남매는 뛸 듯이 기뻤다. 몇 번이고 몸의 한 부분이 사라진 건 아닌지 살폈지만 상처하나 없었다. 오히려 문제는 다른 곳에서 터졌다. 전쟁의 잔상은 머릿속에서 알을 깠다. 그 알이 부화해 몹쓸 괴물로 자라났다. 하루도 술이 없으면 버티지 못했던 아버지. 불안한 눈동자는 주변에 서성이다 삽이나 몽둥이를 잡아들었다.
전우들의 이름을 부르다가, 욕지거리가 뒤를 이으면 어김없이 적군이 출현했다. 아버지의 뇌 속에서 몸집을 키운 괴물이 출현할 시간이었다. 가족들은 모두 베트콩으로 비쳤다. "죽여야 한다"라고 외칠 때도, "폭탄이 터져"라며 귀를 꽉 막기도 했다. 망상이 깊어지면 한참을 몸을 떨었다. 잠의 세계에서도 자유롭지 못했다. 그런 아버지의 앞에 선 건 140cm밖에 되지 않았던 소년의 어머니였다. 눈물로 바짓가랑이를 붙잡아도 소용없었다.
소년의 키 성장은 중학교 1학년에서 멈췄다. 시퍼렇게 물든 몸을 끌고 부엌으로 들어서는 엄마에게 차마 소년은 점심 도시락을 기대하지 못했다. 점심시간이면 소년과 형은 수돗가에서 벌컥벌컥 물배를 채웠다. 어서 어른이 되어 괴물에게서 도망치겠다고 형과 손가락을 걸었다. 알코올 중독과 가정 폭력 급기야 농약까지 마신 소년의 아버지. 몇 번의 자살 시도에도 생은 끈질기게 아버지를 놓아주지 않았다. 소년은 어른이 되어서도 아버지를 '괴물'이라고 불렀다.
'내가 어른이 되면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을까?' 남자는 오랫동안 답 없는 물음표를 안고 살았다. 아무리 술을 먹고 화가 나더라도 여자와 아이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짓거리는 하지 않겠다고, 그런 괴물은 절대로 되지 않겠다고 가슴 한복판에 열어 보이지 않는 문신을 새겼다. 결혼을 하고 남매가 태어났을 때, 비로소 아버지를 이해하고 싶다는 생각이 피어올랐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한순간 뿐이었다.
"아빠는 너희들을 키우면 할아버지가 이해될 줄 알았거든. 그런데 너희들이 자랄수록 더 어렵네"
남자는 아니 아빠는 마지막 잔을 비우셨다. 언제나 술을 드시면 풀어놓으시는 옛날이야기였다. 처음 할아버지에 대해 들었을 땐 이해가 되지 않았다. 몸이 불편하시기는 하셨지만 시골집에 방문할 때면 '가장 예쁜 우리 손녀'라고 말씀하시며 마당에 심어 놓은 나무들 틈을 뒤지시던 할아버지. 초여름에 딴 빨간 앵두가 먹기 아까워 양손에 들고 어쩔 줄 몰랐던 나.
이른 아침 할아버지께서 소여물을 줄 때면 일부러 나만 깨우셨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송아지를 만져보도록 손을 이끄셨던 그 눈빛에서 폭력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뿐일까? 제사를 준비하며 할아버지는 늘 마루에서 생밤을 까셨다. '우리 손녀니까 주는겨' 라고 하시며 내 손에 쥐어주셨는데 그런 분이 왜 그러셨을까. '아빠에게 좋은 아빠가 계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니, 나와 할아버지의 추억을 조금이라도 아빠의 기억 속에 이식시킬 수 있으면 좋겠다.'
이상적인 아버지와 아들의 모습을 그려본다. 주름이 사라진 할아버지와 어린 꼬마인 아빠가 공을 차고, 자전거를 타는 일. 아들에게 공부를 가르쳐 주고, 함께 책을 읽는 일, 생애 단 한 번이라도 서로를 마주 보며 웃는 일. 사소하지만 따뜻한 나날들을 아빠에게 선물할 수 있다면.
초여름 밤, 베란다 너머를 바라보며 앉아 있는 아빠 곁에 앉았다. 약술 한 잔을 몇 번이고 끊어 마시며 아빠는 할아버지 이야기를 꺼내셨다. "참 불쌍한 양반이었지." 늘 원망으로 마무리되었던 결말이 이렇게 달라졌다.
"아빠, 다음 생엔 제가 아빠의 아버지로 태어나서 원 없이 사랑 퍼 드릴게요. 그러고 싶어요. 짠한 우리 아빠."
아빠의 술잔이 비워졌다.
남자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개구진 소년의 눈동자가 별처럼 반짝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