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ragancia Nov 01. 2024

빵을 먹다 이가 빠졌다.

경청과 존중에 대하여.

하루에도 몇 번씩 휴대전화가 진동한다. 대부분 설문조사나 홍보성 전화이기에 나는 습관처럼 차단 버튼을 꾹 누른다. 시간대에 따라 느껴지는 전화의 온도는 매번 다르다. 통화 최근 기록은 늘 한 사람의 애칭이 빼곡하다. 3시에서 4시 사이 하교할 때, 학원을 마치고 농구를 하거나 친구들과 시간을 보낼 때, 그리고 집에 들어오기 전 아이는 적어도 하루 세 번 이상 내게 전화를 한다. 등교 후, 폰은 무음으로 가방 깊숙한 곳에서 잠을 잔다. 그러니까 아침 9시에서 오후 3시까지는 내 전화에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이름이 뜨면 안 된다는 소리다.  




수요일 오후, 베란다에서 빨래를 널고 있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아직 아이가 학교에 있을 시간이라 까만 폰 배경에 이름이 낯설게 보였다. 폰은 불길한 기운을 내뿜었다. 학교에서 연락이 온 경우 90% 이상 나쁜 소식이었다. 아이이 머리와 눈, 다리가 다쳤을 때가 짧은 순간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통화 버튼을 누르자 아이가 급히 나를 불렀다.

"엄마, 저 이가 빠졌어요."

"갑자기 이가 빠져? 급식 먹다 그런 거야?"

"아니요. 빵을 먹다가요. 그런데 거울 보니까 이상해요."

"혹시 사진 찍어서 보내줄 수 있어?"

"담임 선생님께서 치과에 가봐야 할 것 같다고 하셨어요."

"학원 가지 말고 바로 집으로 와. 같이 치과 가보게"


통화가 종료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가 찍은 흐릿한 사진이 전송되었다. 이가 빠진 부분이 까맣게 푹 패어 누가 보더라도 문제가 있어 보였다. 아직 뽑히지 않은 뿌리가 잇몸 안에 자리한 듯 보여 걱정이 앞섰다. '흔들린다는 말도 없었는데... 유치겠지?'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교문 앞에서 아이를 기다렸다. 평소 가던 치과에 예약 환자가 많아 어릴 때 다녔던 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다행히 바로 아이의 치아 상태를 확인할 수 있었다.

"마지막 유치가 빠졌네요."

"까맣게 보이는 건 괜찮은 건가요?"

"이건 피가 굳어서 검게 보이는 거구요. 깨끗하게 빠졌어요. 그보다 충치가 두 개 있으니 이것만 치료하시게요."

의사의 설명을 듣고 진료실을 나왔다. '생니가 빵을 먹다 빠질 리 없지.' 충치 치료를 마치고 나온 아이의 등은 땀에 젖어 축축했다. 녀석은 아팠다며 끈적한 손으로 내 팔을 꼭 잡았다. 그러고선 연신 다행이란 말을 되풀이했다. 누가 겁을 준 건지 아직 뿌리가 남아 있어 그걸 빼고 꿰매야 하는 줄 알았단다. 집에 돌아오는 길 건널목 앞에서 아이는 학원에 가야겠다며 말을 이었다.

"엄마, 저 학원에 가면 담임 선생님께 연락 좀 해주세요."

"응? 왜?"

"빠진 이 보시고 놀라셨나 봐요. 걱정 많이 하셨어요. 꼭 해주세요."

집으로 돌아오며 휴대폰을 열었다. (서이초 사건으로 선생님의 개인 연락처는 알 수 없지만 평일 8시부터 6시까지 문자와 전화가 가능한 앱으로 담임과 연락을 할 수 있다.) 방금 치과를 다녀왔는데 이가 빠진 곳에 피가 고였을 뿐 괜찮다고 늘 감사하는 문자를 전송했다. 10초도 되지 않아 교실 전화번화가 화면에 떴다.

"아이는 괜찮고 방금 학원에 갔어요."

"아~ 그랬군요. 문자 주셔서 감사해요. 혹시 아이가 저에게 연락해 달라고 말했을까요?"

"네. 담임선생님께서 걱정 많이 하셨다고요."

"그럴 것 같았어요. 정말 심성이 착한 아이더라고요. 학급에서 저를 가장 많이 도와주고 있어요."

"몰랐어요. 집에서는 말을 잘 안 해서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랑 친하죠. 부모님 이야기도 많이 들었고요. 집에 오면 꼭 선생님 생각해 줘서 고맙다고 전해주시겠어요?"

"네. 그럴게요."

통화를 마치고 평소 아이의 모습을 떠올렸다. 쉴 새 없이 조잘대던 입은 11살이 되자 반의반으로 줄었다. 학교는 어땠어? 친구들이랑 재미있었어? - 네 - 급식은 맛있었고? - 네- 물어도 단답형 대답에 내가 쏟아내는 질문만 늘었고 그때마다 적잖게 실망했다. '보이지 않는 벽이 생긴 걸까. 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 좀 해주지. 사춘기의 문턱에 들어섰으니 이해해야 할까.' 나는 달그락달그락 손으로 설거지를 하면서도 거실 소파에 앉아 있는 아이의 눈치를 살폈다. 학교에서 선생님을 도와드렸단 말도, 친해졌다는 이야기도 담임선생님께 처음 들었다. 선생님께 사랑받는 아이라 대견하면서도 내 입에서는 무거운 한숨이 푹 흘러나왔다. 

학원에서 돌아온 아이에게 선생님과의 통화 내용을 전하자 녀석의 입꼬리가 쓰윽 올라갔다. 내 딱딱한 말투를 듣더니 엄마 지금 질투하는 거냐며 내 옆구리에 콕콕 건드렸다. 평소 안 하던 행동이라 적잖게 놀라면서 연기 아닌 연기로 툴툴댔다.

"엄마 우리 선생님 참 좋으신 분이세요. 정말 저를 존중해 주세요. 엄마는... 

솔직히 엄마 할 말만 하잖아요."

"내가?"

말을 하고 미안했는지 아이가 나를 꼭 끌어안았다. 나보다 5센티가 더 큰 녀석의 표정을 볼 수 없어 "엄마가 언제?"라며 손으로 등을 툭툭 쳤다. 분명 아이의 품은 따뜻한데 내 가슴은 따끔거렸다. 


손 씻고 양말 세탁기에 좀 넣어. 물통 바로 빼놓고, 숙제 먼저 해야지, 폰은 나중에 보고. 집에 온 아이를 졸졸 따라다니며 잔소리를 늘어놓던 내가 아이의 말문을 닫게 만든 건 아니었을까. 아이가 질문하면 "이것만 하고"라고 내 일을 하기 바빴던 날들이 스쳤다. 일을 마치고 "방금 물었던 거 다시 말해 줄래?" 하면 녀석은 지금 다른 거 한다며 자리를 피했다. 인간관계의 핵심이 경청과 존중임을 책에서 그렇게 읽었어도 정작 아들과의 관계에서는 적용하지 못한 내가 부끄러워졌다.  그동안 경청하지 않는 엄마를 보며 아이의 기분은 어땠을지 돌이켜봤다. 집에서 하지 못한 말들을 담임선생님 앞에서 신나게 떠들었을 아이의 밝은 얼굴이 눈앞에 그려졌다. 




거실을 돌아다니는 아들을 불러 꼭 안아주었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다시 아이의 품에 안겼다. 

"많이 들어주고, 많이 칭찬해 줄게. 미안해. 우리 아들."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다만 내가 어린 아들을 끌어안고 양옆으로 왔다갔다 흔들었던 반동을 녀석은 똑같이 따라 했다. 빵을 먹다 마지막 유치가 빠진 날, 그 틈 사이로 흘러나온 웃음이 내 몸에 천천히 스며들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