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의 잡초 속에서 감사의 꽃을 키우기까지.
* 이 매거진은 Eli 작가님과 공동으로 하는 글쓰기입니다.
감사는 특정한 사건에 좌우되는 감정이 아니므로 변화나 역경과 상관없이 오래간다. 감사를 느끼려면 감정적으로 적극적인 관여가 필요하다. 자동으로 감사를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그 감정을 느끼고 경험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좋은 시기에도 어려운 시기에도 지속하는 내면의 충일감이 형성된다.
- 감사하면 달라지는 것들. (제니스 캐플런)
Q. 오늘 감사 일기를 써주세요.
그릇을 씻다가 또 접시를 깼다. 손끝이 말을 듣지 않아 잔이 미끄러지는 소리를 여러 번 들었다. 유리 조각이 바닥에 흩어질 때마다 마음도 함께 부서지는 것 같았다.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굳은 손가락은 예전처럼 섬세하지 않다. 펜을 잡을 때도, 키보드를 칠 때도 마음이 먼저 멈추었다. 글을 쓰고 싶었지만, 단어들은 새끼손가락 끝으로 흘러내렸다.
쓰지 못하는 동안 나는 자주 다른 작가들의 글을 읽었다. 정갈한 문장, 단단한 생각, 아름다운 표현들을 보며 입을 꾹 다물었다.
‘저 사람은 쓸 수 있는데, 나는 왜 안 될까.’ 비교는 내 안에서 금세 불평으로 변했다.
불평은 잡초다.
뿌리를 찾기도 어렵고, 한 번 자라면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처음엔 작은 비교로 시작되지만, 어느새 내가 잃은 것, 하지 못하는 것, 부족한 것들만 세고 있다. 잡초는 감사의 꽃이 피기도 전에 마음 밭을 덮었다. 하루가 피곤할수록, 다른 이의 삶이 눈부셔 보일수록 내 밭에는 불평의 잡초가 키만큼이나 무성해졌다.
내가 다시 쓰게 된 건 필사 모임에서 만난 문우들 덕분이었다. 손은 불편했지만, 책 속에서 좋은 문장을 찾고 질문을 만들면서 불평의 풀들을 조금씩 베어 나갔다. 붕대를 풀고 재활을 하며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펜 끝에 집중하는 순간 모든 생각은 흩어졌다. 한 문장을 다 쓰는 데 예전보다 두 배의 시간이 걸렸지만, 그 느림이 오히려 위로가 되었다.
그때 알았다. 감사는 이렇게 느린 속도로 자라는 것을. 불평은 저절로 자라지만, 감사는 매일 돌보지 않으면 금세 시든다는 것을 말이다. 하루의 끝에 감사 일기를 적는다.
“오늘은 접시를 깨지 않았다.”
“부드러운 햇살을 만났다.”
“책을 읽다 감동해 눈물을 흘렸다.”
어색하고 억지 같던 문장들이 시간이 지나자 감사의 빛이 되었다.
문장 필사와 시 필사 모임에서 문우들과 함께하는 시간도 소중했다. 손끝으로 글자를 따라가다 보면, 문장이 내 삶을 관통한다. 우리는 서로의 삶을 완벽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같은 문장을 통해 잠시 연결되었다. 누군가는 사랑에 대해 쓰고, 누군가는 상처를 기록했으며, 또 누군가는 고요한 하루를 적었다. 그 속에서 우리는 각자의 감사의 조각을 발견했다.
감사는 그렇게 자라났다. 크게 피어나지도, 화려하게 드러나지도 않았지만, 어느 날 문득 마음을 돌아보니 작고 단단한 꽃 한 송이가 피어 있었다. 불편한 손가락으로도 쥘 수 있을 만큼 가볍고, 시들지 않을 만큼 강했다.
불평은 잡초처럼 너무 쉽게 자라지만, 감사는 돌봄을 필요로 한다.
불평은 ‘없음’을 바라보게 하고, 감사는 ‘있음’을 보게 한다.
감사의 꽃은 한 송이만 피어도 마음 전체의 풍경을 바꾼다.
그 향이 마음속 어둠을 덮고, 내일을 조금 더 견디게 한다.
나는 자주 그릇을 깬다. 글을 쓰다 여러 번 멈춘다.
깨지는 유리 소리에도, 여전히 무언가를 붙잡으려 애쓴다.
삐뚤어진 글씨 속에 내 진심이 있고, 불완전한 손끝에도 생이 있다.
불평이 잡초라면, 감사는 꽃과 같다.
잡초를 모두 없앨 수는 없지만, 꽃을 피우는 손길이 멈추지 않는 한 마음의 밭은 여전히 살아 있다.
오늘도 그 밭 앞에 앉아 펜을 든다. 느린 손끝으로 한 글자씩, 감사를 심듯 삶을 써 내려간다.
<알림>
그동안 "필사하며 나누며"의 매거진을 Eli작가님과 함께 했습니다. 각각 10편씩 모두 20편의 글을 썼습니다. 일주일에 한 편, 마감일을 정하고 쓰는 글의 힘에 놀랐습니다. 쉽게 써진 날은 딱 하루 있었어요. 고민의 흔적들이 제 휴대전화 메모장에 지금도 잠들어 있습니다. 매일 보고 글감을 적는 동안 참 좋았습니다.
Eli작가님이 아니었다면, 그리고 라이킷을 눌러 주신 독자님이 아니었다면 제 마음 밭은 오랫동안 불평의 잡초로 가득했을지 모르겠어요. 이번 기회에 감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필사하며 나누며"의 글은 잠시 휴식기를 가진 뒤 계속됩니다. 더 좋은 글로 보답하도록 읽고 사유하고 쓰겠습니다. 저희를 잊지 마시길 부탁드립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