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의 선, 시의적절한 태도

필사하며 나누며

by Eli

*이 매거진은 fragancia작가님의 필사 모임에서 제공된 자료를 토대로 했음을 알려드립니다.

*이 매거진은 fragancia작가님과 공동으로 하는 글쓰기입니다.




최상의 선은 물과 같다. 다툼 없이 만물을 이롭게 하고 뭇사람이 꺼리는 곳으로 흐름으로써 물은 도에 가까워진다. 삶에 있어서 선이란 땅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마음에 있어서 선이란 메아리치는 골짜기가 되는 것이다. 사회에 있어 선이란 친절해지는 것이다. 다스림에 있어서 선이란 질서정연해 지는 것이다. 일함에 있어서 선이란 유능해지는 것이다. 행위에 있어서 선이란 시의적절해지는 것이다. 다툼이 없으므로 허물이 없다.

-길을 찾는 책 도덕경, (켄 리우, 노자) -


질문 : 말과 행동에 있어서 '진실하고 시의적절한 선'을 실천하기 위해 새해에 가장 먼저 바꾸고 싶은 태도는 무엇인가요?




거의 매일 수영을 한다. 수영은 나의 보람이고 흐르는 물의 에너지를 내 몸으로 끌어오는 의식이다. 모난 데 없이 순리대로 흐르며 스며들어 생명을 키우 물의 기운을 빌려 나는 좋은 사람으로 하루를 살자고 마음먹는다. 그 다짐과 각오의 시작은 풍덩, 하고 물에 뛰어드는 순간부터인 것이다. 과장해서 표현한다면 마치 물에 뛰어들지 않거나 물에 뛰어들 수 없으면 나는 좋은 사람이 될 기회가 없다는 느낌을 받는 것처럼 말이다.


새해가 시작되었다고 달라진 것은 없다. 해는 어제도 떴고 해가 바뀐 오늘도 떴다. 똑같은 공간에서 어제와 다름없이 흐르는 시간에 놓인다. 그러나 나는 어제의 그 사람이 아니다. 매일 물에 뛰어들지만 한 번도 같은 수영이 아니듯 오늘은 어제와 다른 시간인 것이다. 어제와 다른 상태의 몸과 어제와 다른 감각으로 수영은 미묘하게, 또는 크게 차이가 난다. 어떤 날은 몸이 날아다니고 어떤 날은 수영장 바닥으로 가라앉는 저항을 느낀다. 하루를 사는 내 정서와 태도도 내가 처하게 되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그렇게 매일 다르다. 어떤 날은 살 만하다고 웃고 어떤 날은 살아야 할 이유를 찾느라 고개를 떨군다.


"시의적절한" 태도를 갖는 것!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다고 했다. 새 시간을 사는 나는 묵은 인간이 아니라 새 인간이다. 묵은 인간이 버티고 있다 해도 새인간이다. 새인간이어야 한다. 풍덩, 하고 뛰어든 물이 어제와 다른 새 물인 것처럼 어제와 다른 삶의 기회가 오늘 주어진 것이다.


물에 뛰어드는 행위는 나의 자발적 선택이지만 수영을 좋아하는 것과 매일 수영장을 찾는 일은 다르다. 쉬운 일이 아니다. 갈까 말까 내적 갈등을 이겨내야 하고 시간을 내야 하며 수영을 핑계로 다른 일에 지장을 주면 안 된다. 몸 상태도 잘 관리해야 한다. 감기에 걸리거나 작은 상처라도 생기면 수영을 하기 어렵다. 이 모든 변수에도 불구하고 내가 매일 수영을 하는 것은 수영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 마음에는 위선도 거짓도 기타의 수식어도 필요 없다. 오직 수영을 하며 살겠다는 열망과 방향이 내 마음 깊은 곳을 통과해 물리적인 몸을 일으키고 행동하도록 이끈다. 이것이 수영에 대한 "시의적절한 태도"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다면 삶에 대한 "시의적절한 태도"는 무엇일까.


종종 오래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오래 살기 위해 건강식을 하고 오래 살기 위한 정보에 민감하며 가능한 오래 살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쉽게 공감하지 못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저변에는 '뭐 사는 게 그리 좋다고' 하는 부정적인 시선이 깔려있다. 80, 90 노인이 되어도 수영을 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으면서도 오래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은 다른 방향이고 모순이다. 이런 모순이 나에게 있는 걸까.


삶은 불확실하고 복잡하다. 태도를 바꾸고 관계를 정리하고 이러저러한 계획을 세운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스스로를 다독여 인내하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하며 여러 가지 생존 기술도 필요하다. 그러나 꼭 필요한 양념처럼 고통과 시련이 찾아오고 실망이 나를 주저앉힌다. 이런저런 드릴(세부적인 개별 방법)로 수영을 개선할 수 있는 것처럼 사는 일도 그랬으면 좋겠다. 삶에는 고정된 드릴도 없고 설사 드릴을 안다고 해도 변수가 많아서 일관되게 적용하기 힘들다. 삶의 기술에 정답은 없기 때문이다. 접영이 힘드신가요? 발차기를 강화해 보세요. 자유형이 잘 안 나간다고요? 물을 잘 잡으면 돼요. 관계가 너무 어렵다구요? 발을 더 빨리 차보세요. 돈이 없나요? 레인 5바퀴를 도세요. 노년과 죽음이 두려운가요? 쉬지말고 5바퀴를 더 돌아보세요.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뭐 이랬으면 좋겠다.


"눈이 부시게"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드라마에 참여했던 유명 배우가 어느 시상식에서 다음 대목을 낭송했다.


"대단하지 않은 하루가 지나고 또 별거 아닌 하루가 온다 해도 인생은 살 가치가 있습니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질문에 대한 답을 할 차례다. 사는 일이 불확실하고 언제나 결핍된 욕망만 확인하는 나날이라고 해도 인생은 살 가치가 있고 그 가치를 누릴 수 있는 오늘이 축복이라는 것. 물속에 '풍덩'하고 들어가 힘차게 스트로크를 하며 매일 새롭게 수영을 하듯 새해라는 새 시간 안으로 '풍덩' 들어왔으니 지나버린 과거의 후회나 아직 살지 않은 미래의 불안을 가불 하지 말고 오늘을 살아가자는 것. 내가 다시 눈을 들어 결심해야 할 태도는 바로 이것이 아닐까.


".... 어니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외로이 서서/어두워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백석,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중에서)


수영은 물과의 싸움이 아니다. 물을 이용해 물을 타며 즐기는 것이다. 물의 저항을 타고 넘는 일(글라이딩이라고 한다)이며 그 흐름에 맡기는 것이다. 눈부신 하루와 싸우지 말고 유연하게 글라이딩을 하자. 일상의 물살에 휩쓸리는 것이 아닌 물살을 끌어안는 "시의적절한 태도"가 하루를 "눈 부시게" 할 것이다. 안녕한 하루가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더는 그 평범한 하루를 살 수 없을 때가 올 것이니 시선을 들어 자신이 가야 할 물길을 바라보고 발을 차는 것, 그것이 사는 일이다. 외로움과 불안으로 흔들릴 때 달라진 것이 없어 보여도 같은 것은 하나도 없는 신비하고 이상한 하루. 그 시간 속으로 풍덩, 뛰어들어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를 생각하며 나는 오늘도 나의 삶에서 발차기를 한다. 이것이 매 순간 내가 추구해야 할 "최상의 선"이자 "시의적절한 나의 태도"이다.


"행위에 있어서 선이란 시의적절해지는 것이다. 다툼이 없으므로 허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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