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한 잔에 되살아난 오래된 기억
* 이 매거진은 Eli 작가님과 공동으로 하는 글쓰기입니다.
취미나 선호라는 말보다 <취향>이라는 단어가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취향의 사전적 정의는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방향'입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섬세하게 고르고 그것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그러고 보니 '취향을 가꾼다'는 말도 멋집니다. '가꾼다'는 표현이라니, 화분도 아닌데 말이에요. '가꾸고 있다'니까 지식과 경험은 조금 부족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정원을 보살피듯 아름다운 것을 찾고 키우는 모습 자체로 근사합니다.
- 차라는 취향을 가꾸고 있습니다. (여인선)
한겨울에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만 마시던 시절이 있었다. 바람이 살을 베는 듯 불어도, 손끝이 얼얼해도, 나는 늘 차갑고 투명한 얼음컵을 들고 다녔다. 뜨거운 음료를 왜 마시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따뜻한 건 답답해”라고 대답했다. 뚜렷한 이유가 없었다. 그냥 늘 그래 왔으니까, 내 습관이 그렇다고 믿었으니까. 뜨거운 음료를 마시면 몸속 깊은 곳이 천천히 풀리는 느낌이 싫었다. 마치 오래 눌러둔 감정들이 열에 녹아 흘러나올까 봐, 준비되지 않은 마음이 불쑥 드러날까 봐 나는 차가운 것을 선택했는지도 모른다.
세 달 전, 아주 사소한 계기로 다도를 만났다. 누군가 건넨 한 잔의 차. 김이 천천히 피어오르고, 연한 향기가 공기 사이로 번져가는 그 찰나, 오랫동안 떠오르지 않던 기억이 조용히 내 안쪽에서 걸어 나왔다. 스무 살 무렵, 막내 이모 집에서 마셨던 따뜻한 차 한 잔. 문을 열면 은은한 향이 먼저 맞이하던 집, 차를 우릴 때 주전자 뚜껑에 맺히던 작은 물방울들, “춥지?”라며 내 앞에 놓아주던 작은 찻잔. 그 모든 장면이 오래 덮여 있던 먼지를 털어내듯 또렷하게 되살아났다.
그때는 왜 그 따뜻함이 좋은지 알지 못했다. 차는 왠지 고루해 보였다. 하지만 작은 찻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쥐면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말하지 못한 고민도, 흔들리던 감정도 차의 김 사이로 천천히 흩어지는 것 같았다. 테이블 위에서 찻잔이 채워지고 비워지는 동안, 이모는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우리 사이엔 졸졸 흐르는 물소리만 들렸다. 두 번째 우린 차를 마실 때 혀끝에 닿던 떫은맛은 금세 사라지고 부드러운 단맛이 뒤따랐다. 막연하게 차를 좋아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언젠가는 이모에게 다도를 배울 수 있겠지. 좋은 차를 나누며 천천히 나이 들어도 좋을 거야.’ 시간이 충분하다고, 언젠가는 자연히 그날이 올 것이라고 믿었다.
그 ‘언젠가’는 오지 않았다. 이모는 말기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퇴원하면 차를 마시자고 했던 우리의 약속은 끝내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모에게 다도를 배우겠다는 생각은 빈자리만 남긴 채 사라졌다. 이모가 떠난 뒤에도 나는 오랫동안 뜨거운 차를 피했다. 그 온기가 아련한 추억을 건드릴까 봐, 마음속 얼룩을 다시 물들일까 봐 차갑기만 한 음료에 더 집착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유도 없이 뜨거운 차가 떠올랐다. 그저 갑자기, 오래전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듯.
초가을, 촉촉한 비가 내리던 날 나는 다도 선생님을 만났다. 선생님이 미리 우려 온 차를 한 모금 마시자 향이 입안에서 부드럽게 맴돌다가 이내 달게 사라졌다.
“이거 무슨 차예요? 왜 이렇게 맛있어요?”
“차는 차나무의 잎으로 만든 걸 말하고, 그 외의 건 대용차라고 해요. 6대 다류가 있어요. 녹차, 백차, 황차, 청차, 홍차, 그리고 흑차. 지금 마신 건 청차 중에서도 무이암차예요.”
그다음 날도 뜨거운 차가 생각났다. 또 그다음 날도. 그렇게 아주 천천히 나는 차와 가까워졌다. 다도와 관련된 책을 구입해 읽고, 영상을 찾았다. 요즘 나는 다도를 배운다. 물 온도를 맞추는 일, 찻잎을 살피는 일, 찻물이 잔으로 흐르는 순간을 바라보는 일. 그 모든 과정이 조용한 위로처럼 느껴진다. 차를 우릴 때 손끝에서 은은한 온기가 퍼지고, 그 온기가 마음 안쪽에 닿을 때마다 이모의 목소리가 되살아난다. 이제는 아프지 않다. 오래전 받지 못했던 온기가 지금에서야 나에게 도착한 것일까.
차를 마신 뒤 단맛이 은근히 이어지는 감각을 ‘회감’이라 부른다. 좋은 차일수록 그 여운이 오래 남는다. 이모가 내게 처음 따라준 차도 회감이 좋은 차였다는 걸, 20년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차를 우릴 때마다 마음이 조금씩 풀리고, 감정의 결이 부드럽게 느슨해진다. 나는 마침내 온기를 피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이모에게 다도를 배우지 못한 건 여전히 아쉽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이모가 내게 남긴 건 기술이 아니라 ‘마음을 대하는 태도’였다. 차를 우려 주던 조용한 손길, 따뜻한 것 앞에서 망설이지 않던 미소, 내 마음의 속도에 맞춰 찻물을 따르던 순간들. 어쩌면 그 모든 것이 이미 오래전부터 나를 가르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다만 내가 그 사실을 깨닫는데 시간이 조금 더 필요했을 뿐이다.
찬 음료만 마시던 나는 이제 매일 뜨거운 차를 우린다.
그리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온기라는 것은, 비록 늦게 도착하더라도 결국 한 사람의 마음이 머물러야 할 자리를 잊지 않고 찾아온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