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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gancia Jun 23. 2020

다시는 이런 시간이  오지 않을 것 같아서...

당신에게 보여주지 못한 내 마음.

"사랑하는 벗"이라는 수식어를 가진 사람이 내 곁에 있다는 것은 더없이 행복한 일이다. 참된 친구는 피를 나눈 형제보다 더 친밀하게 고착하는 사람이니 그 존재 만으로도 삶을 더 빛나게 한다는 건 두말할 나위도 없다.


20대 중반. 어른이라고 말하기엔 채워지지 않는 틈이 곳곳에 보여 '어른 아이' 같았던 그때를 기억한다. 그나마 그녀가 있었기에 나는 점점 어른으로 성장해 가고 있었다. 여수로 향하는 버스표를 앞자리 그물 안에 접어 넣었다.


며칠 전 그녀는 이 달 안에 시간을 내달라고 말했다. 통화로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일 텐데 끝을 흐리는 말투가 목에 걸린 가시 마냥 마음에 걸렸다. 이렇게 뜸을 들일 아이가 아닌데, 직접 얼굴을 보고 말해야 할 정도로 중요한 일이라면 빨리 보는 편이 나을 거라 여겼다. 내가 어떤 말을 해도 귀를 기울여주고 칭찬과 격려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그녀를 만나러 나는 기꺼이 연차를 내었다.


두 시간 가까이 달려 도착한 여수 터미널. 하차하는 곳이 승차하는 곳과 뚝 떨어져 있어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멀리서 다가오는 키 큰 그녀를 보고 크게 손을 흔들었다. 거의 5개월 만에 보는 얼굴이 었지만 어제 본 것 마냥 웃으며 인사를 나눈 우리. 키 작은 내가 그녀의 얼굴을 올려다보았지만 예전과 다른 느낌은 받지 못했다. 좀 더 예뻐진거 아니냐며 농담을 주고받았을 뿐~


"오늘 막차로 가~ 맛있는 것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돌산대교 공원에 가서 밤바다도 보자. 응?"


"그래^^~ 오랜만에 봤는데 당연하지."


일주일에 3~4번 2시간이 넘게 통화하는 우리라 만나면 할 이야기가 없어야 하건만 할 말이 많다. 가족, 직장, 친구, 공부 그녀가 말하는 모든 말들이 아름다운 세상 같아서 나는 시선을 눈에 고정한 채 귀를 기울였다.


어떤 이는 만나면 침묵이 어색할 때가 있다. 눈동자를 굴리다 그게 싫어서 아무말 대잔치를 하기도 한다.  반대로 말의 멈춤이 대화의 연장선으로 이어지는 사람 곁에 있으면 편안해 지는건 당연한 일이다. 그 침묵의 시간도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만 같아서 덜컹거리는 시내버스에 서 있어도 숨소리는 안정적이었다.   

예정대로 맛있는 회를 수산시장에서 먹고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마시는 시간은 넘치도록 좋았다. 저녁이 가까워 올 무렵 돌산대교가 보이는 공원으로 이동하여 불빛이 켜지는 그 다리 앞에 우두커니 섰다. 바닷바람이 다소 차갑긴 했지만 여수는 언제나 밤바다가 예쁜 곳이니까... 그리고 어린 시절 내 꿈도 이곳에서 곱게 피어났었으니까... 바다, 대교가 보이는 공원, 사랑하는 친구, 200원짜리 길다방 커피.

이제 말할 때도 되었다고 생각했다. 오전부터 저녁이 오기까지 기다렸던 그녀의 말~


"음... 나 중국에 가. 2년 전에 너에게 이야기했었지? 다음 달이야."

"정말 가려는 거야? 엄마랑 동생은 어쩌고..."


어렴풋이 예상은 했었던 시간. 그 2년이란 시간이 이렇게 빨리 흐를 거라고 생각지 못했다. 나도 모르게 울컥하여 언성이 약간 높아졌다. 내가 무슨 자격으로 친구의 앞길을 막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가족은 달랐다. 어린 시절 사고로 돌아가신 아버지, 그 사고로 다리를 못쓰시는 어머니, 7살 지능의 남동생. 가장인 그녀의 양쪽 발목엔 보이지 않는 무거운 족쇄가 채워져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오랜 시간 그 발목을 끌면서도 꿈을 이루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살갗이 벗겨지고 아물고 다시 벗겨지고 했는지 뻔히 아는 내가 그 상처를 또 건드리고 있었다.


"지금 가지 않으면 다시는... 다시는 못 갈 것 같아서... 너에겐 만나서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


직감이란 참 무섭다. 우리가 이렇게 만나는 시간은 오늘이 마지막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나뿐 아니라 그녀도 하고 있는 듯했다. 참 바보같이 우리는 땅만 바라보았다. 방금 전까지 완벽했던 바다, 대교, 바람, 달달 커피는 무의미한 것처럼~ 눈물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사람을 안다는 건 무엇일까? 단지 이름을 머릿속에 기억한다고 해서 그를 잘 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가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삶의 목표, 가치관, 성장배경, 성격 등 무수히 많은 것들을 알고 있을 때 비로소 그 사람을 "안다"라고 말할 수 있다.


나는 그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꿈을 향해 가는 발걸음을 늘 응원하고 있었는데... 그 꿈을 내가 없는 곳에서 이루려했다. 당당히 자신만의 길을 가겠다고 용기내어 말한 그녀였다. 머릿속으로는 당장 "잘 생각했어. 잘 다녀와. 우린 또 만나면 되니까..."라는 말이 나왔어야 했는데 눈물이 입을 막아버렸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우리는 공원을 내려와 터미널로 향했다. 나를 잘 아는 그녀도 말이 없었다. 응원과 자랑스러움 아래로 서운함, 아쉬움, 슬픔이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아침에 만났을 때 환하게 웃던 얼굴이 붉게 충혈된 눈에 물기를 가득 담고서 버스에 올라 멀어지는 그녀에게 손을 흔들었다.


13년이 흐른 지금도 나는 그날을 후회하고 있다. 친구는 자신의 꿈을 찾아 중국으로 향했고 몇 년이 흘러 그 꿈을 함께 이룰 사람을 만나 결혼을 했다. 가끔 한국에 들어오긴 했으나 아주 잠깐 안부전화를 나누었을 뿐 전처럼 나와의 시간을 만들지는 못하였다.

각자의 가정이 생기고 시간의 흐름에 기대어 그날의 서운함과 아쉬움은 희미해졌지만 가족들과 여수 돌산대교 공원으로 가는 길 나는 생각했다.


너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그 날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나에게만 절절했던 시간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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