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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gancia Jun 20. 2020

나는 오늘도 신발을 탄다.

우울한 감정을 벗어나기 위한 걷기...

'이러다간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너 어쩌려고 그러는 건데...'

편하게 쉬어야 할 공간의 집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낳아주신 고마운 시댁에서, 그리고 내가 이 세상에 있게 해 주신 친정부모님에게서... 3중으로 보기 좋게 깨졌다.


내편이 아무도 없다는 생각이 들 때면 나는 한바탕 신나게 울어버린다. 울고 나서도 묵직한 감정이 남아있을 때 좀처럼 잠을 이루기가 힘들다. 몸에 붙어있는 어두운 감정들을 툭툭 털고 다시 웃어 보이고 싶다. 제발... 제발...


아이의 개학이 생각보다 늦어지기도 했지만 족저근막염 때문에 잠깐 걸어도 통증으로 힘겨웠다. 결국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한동안 멈춤. 정지해 있는 시간 동안 언제쯤 다시 걸을 수 있을지... 정말 다행스럽게도 천천히 좋아졌고 아이도 학교를 가니 더 이상 걸림돌은 없었다.


아침. 아이를 등교시키기 위해 나오면서 나는 가벼운 운동복을 입고, 긴 머리를 질끈 하나로 묶어 까만 캡 모자에 구겨 넣는다. 사랑스러운 아이가 교문으로 들어서면 이제 온전한 내 시간이다. 미리 준비해 놓은 빠른 템포에 음악을 틀고 빠르게 걷기 시작한다.


봄이 지나고 아파트 단지를 둘러싼 작은 산은 연둣빛에서 녹색으로 변하고 있다. 주택단지로 들어서 아기자기한 꽃들이 보인다. 자꾸 내 걸음을 붙잡는 어여쁜 그녀들... 카메라를 들이밀고 어느 각도에서 가장 예쁜지 이리저리 폰을 돌려본다.  '아차차 그만 멈춰!!'

 

귀를 통해 들리는 음악에 맞춰 발은 빠르게 움직이지만 생각은 더디다...

왜 이렇게 나를 우울한 감정으로 몰아넣어 지난 저녁 눈물을 흘렸는지 걸으면서 생각에 잠겼다.

'나만 이런 건가? 다른 사람은?'


"인간의 삶은 죽음이라는 벽, 하루는 24시간뿐이라는 시간의 절대적 한계라는 벽 앞에 있다. 인간의 삶은 벽 자체다. 그런 점에서 모든 인간은 본질적으로 우울한 존재다." - 당신이 옳다.


사실 우울한 감정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극히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우울함"을 부정하면 할수록 자꾸만 따라오는 건 비관적이고 부정적인 생각들 뿐이었다. 지극히 본질적이고 일반적인 감정 앞에서 가끔 나는 무참하게 무너진다.


그렇다면 무엇으로부터 나를 우울함으로 몰아넣고 있는 걸까?

아내, 엄마, 딸, 며느리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느낌에 사로잡혀 우울함을 호소하고 있는 건은 아닐까?


꽃들에게 끌렸던 시선이 다시 걷고 있는 길을 향한다. 내가 지금 가고 있는 길. 가려고 하는 길. 10cm 앞을 보며 걷는 건 아니었다. 시야는 100m, 혹은 200m 앞을 보며 내딛고 있다.

'바로 앞에 우울한 감정만 보는 거니? 저 멀리 보렴. 그만하면 되었어. 흘려보내. 괜찮아 괜찮아.'

어느 정도 생각이 정리되었을 때는 이미 1시간 정도 신나게 걸은 후다. 이마에서 귀로 흐른 땀방울은 어느새 목을 타고 흐르고 있다. 등줄기에 송골송골 물기가 스며들어 끈적한 감각을 깨운다.

돌아왔던 길을 다시 뒤돌아 본다. 신발을 타고 크게 한 바퀴를 돌아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아이를 데려다준 시작점. 그 교문 앞보다 훨씬 더 가벼웠다.


신발을 탔다. 신발을 타면서 우울한 나와 만났다. 나는 이 만남을 통해 나를 돌아보고 힘들어 한 자신을 다독였다. 그리고 신발에서 내려왔을 때 미로소 크게 웃었다. 


위대하고 거창하고 복잡하지 않아도 지금 이 시간 이 순간 잘하고 있다고... 그렇다고...


나는 오늘도 신발을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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