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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gancia Jul 07. 2020

엄마의 손가락과 바꾼 고양이.

손가락을 물려 뼈가 녹아도 포기할 수 없는 고양이 사랑...


- 깨톡!!

(지나다니다 차돌 보이면 들고 와~^^)

- 깨톡!!

(피트 병에 물 좀 얼려 놔라~ 내일 가지고 오면 더 좋고^^)

- 깨톡!!

(공원 들르면 그릇 놔둔 곳 있지?? 화장실에서 물 떠다가 놓고 와)

왼손으로 메시지를 확인하며 걸음이 빨라진다. 동시에 나도 모르게 “휴~” 한숨이 나온다. 1년 365일. 아침저녁으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파트 뒤편, 공원, 학교 쪽문에 휙휙 나타나는 그림자~

그렇다. 바로 친정엄마다.


내가 20대 중반 한창 회사 일에 매진하던 그때. 10년 넘게 한 직장을 묵묵히 다니시던 엄마는 돌연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하셨다. 커리어 우먼이었던 엄마가 직장을 그만둔다는 것, ‘그래 이제 엄마도 쉬실 때가 된 거지’라고 생각했지만 그다음 말씀에 가족들은 충격을 받고 말았다.


“엄마 애견샵 할 거야. 강아지 미용.” 

두둥~~ 컴퓨터 자판만 두드리던 엄마의 극적인 반전이란 이런 것일까~  엄마 혼자만 이 일을 한다는 것이 아니라 서울에서 영어 관련 회사에 다니시던 아빠도 함께 일을 하자고 한 것에 동생과 나는 더욱 놀랐다. 주말부부로 많이 힘드셨는지 며칠 고민하시던 아빠도 다시 집으로 내려오셨다. 추진력이 좋은 엄마였지만 못내 걱정도 되었다. 하지만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 어릴 때부터 나와 동생의 머리를 잘라주셨던 아빠는 강아지 미용도 전문가 못지않게 금방 해내셨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분은 고양이 미용도 시작하셨다. 강아지들은 아무리 사나워도 엄마의 카리스마에 꼼짝 못 했었는데 고양이 미용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마취를 하지 않았기에 매번 물리거나 긁히는 일이 다반사여서 양손과 팔은 늘 상처투성이였다.


아픈 팔을 하고서도 고양이의 매력에 푹 빠진 엄마는 길고양이들에게 점점 눈길을 주기 시작하셨다. 그 녀석들에게 이름도 지어주었는데... 내가 아는 녀석들의 이름은 “달봉이, 달식이, 달자, 달희~~” 달덩이 같은 얼굴이 동글동글 예뻐서라고 하셨다~ 매일 가게 뒤편으로 오는 아이들을 살뜰히 돌보았다.


그러다 일이 터졌다. 고양이 미용도 중 손가락을 심하게 물린 것이다. 강아지는 한번 물고 입을 벌린다고 하는데 고양이는 앙앙앙 계속 같은 부위를 꽉꽉 물었다고 했다. 왼쪽 엄지손가락을 심하게 물린 적은 처음. 일반 상처보다 오래가겠지만 곧 아물겠거니~ 약을 발라 붕대를 감고서 손가락이 아려도 엄마의 미용은 계속되었다. 진통제를 먹고 참으면서...


친정엄마가 다친 것을 나는 한참 후에야 전화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아마 그 모습을 직접 목격했다면 큰 병원에 어떻게든 끌고 갔으리라. 결혼 후 아이를 낳고 돌이 안되었을 때, 그해 여름은 유난히 더웠고 집 밖으로는 나갈 수 없는 나날들이었다. 아이를 안고 재우는 도중에 엄마의 전화 한 통이 왔다.


“집에 가서 두 번째 서랍 밑 쪽 보면 통장 있을 거야. 비밀번호는 ****, 엄마가 이모에게 빌린 돈은 갚았으니까 아빠에게 말 안 해도 돼..... 그리고~~”


“엄마 무슨 말이야?? 나 무슨 말 인지 잘 모르겠어요!"


“전신마취를 해야 한다네. 혹시 엄마가 못 일어나면 아들보다는 딸이 꼼꼼하게 일 처리할 것 같아서 이야기하는 거야. 무슨 말인지 알았지?? 아~~ 그리고 오지 말아. 아이 대리고 큰 병원 오는 거 아니야. 엄마 들어간다.”


“.........” 


전화를 끊고 아이를 안고서 오열했다. 당장이라도 달려가야 했지만 이기적인 딸은 엄마라는 이름으로 아이를 병원에 데리고 갈 수가 없었다. 아프다고 말하지 않은 엄마가 미웠다. 그리고 설마 이대로 무슨 일이 생길 것만 같아 조마조마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었다. 다행히 엄마는 전신마취 수술을 받고 깨어나셨다. 염증으로 녹아내린 엄지손가락뼈 한마디를 잃으셨지만... 뼈가 녹아내릴 때까지 참을 수 있었다는 것에 가족들도 병원도 경악했다. 얼마나 아픈 날들을 이를 악물고 견뎌 내셨을까? 지금도 생각하면 눈물이 날 것 같다.


그 후 가족들은 고양이 미용을 심하게 반대했다. 또 그런 일이 없으라는 법은 없었으니까...


“그래도 손을 잃지 않은 건 내가 그동안 고양이들을 돌봐줘서가 아니었을까?? 나는 괜찮아. 이 일을 계속하고 싶어. 이렇게 손가락을 잃었으면 그 녀석들이 미워야 정상인데 하나도 안 미워. 그냥 사랑스럽고 예쁘고 길에 있는 녀석들이 안쓰러울 뿐이야. 그러니 내 맘을 좀 알아줘...”


결국 엄마의 고집에 두 손 두발 다 들어버렸다. 그 후 여전히 미용은 하시지만 불편한 왼손 때문에 가족들의 도움을 받는다. 차돌을 구해오라는 건 추운 날 돌을 달궈서 신문지에 돌돌 말아 수건으로 감싸기 위해서다. 그렇게 고양이들 집에 넣어주면 추위를 조금은 따뜻하게 있을 수 있으니까...

여름에 반대로 피트 병을 얼려 같은 방법으로 고양이 집에 넣어놓는다. 녀석들은 귀신같이 그걸 알고 더위를 그곳에서 식힌다. 혹시라도 떠다 놓은 물이 오염될까 봐. 혹은 한겨울에 얼어버릴까 봐 새 물을 꼭 떠다 놓으라고도 하신다. 살아있는 동물들에 대한 배려이자 사랑인 것이다.

엄마의 불편한 손을 보며 투덜투덜 말이 많았던 나였다. 하지만 친정집에 가는 길 풀숲에 익숙한 글자가 보였다. 엄마의 글씨체...

결국 고양이에 대한 엄마의 사랑은 가족의 사랑으로 연결되는 고리였을까... 그 후 엄마가 고양이를 챙기러 나가는 걸 보면 뒤 따르며 지켜본다. 가까이 오지 않았던 녀석들이 눈을 맞추며 곁으로 오고~~ 챙겨간 고기를 자기 대신 새끼에게 먹이는 모습에서 잔잔한 감동을 느낀다.


분명 싫어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소중한 생명이고 더불어 살아가는 거라고 엄마는 믿고 계신다. 엄마의 왼손 엄지 손가락과 바꾼 고양이 사랑. 나 역시 집 밖을 나설 때 작은 봉지에 고양이 사료를 챙긴다.

딸도 이렇게 엄마를 닮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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