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표현은 얼마큼 해야 할까

주변의 트러블메이커를 만천하에 알리고 싶을 때

by 류리원

8년 전 우리 팀에 불성실의 아이콘 A와 성실함을 벗 삼는 B가 함께 있었던 한때의 이야기다.


A는 한마디로 ‘징징’ 대는 스타일이었다. 선후배 가리지 않고 주변에 일을 미루고, 실적이 될 만한 것들은 본인이 가져가는 taker였다. 승진을 하기 위해 이런 진상짓이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었다.

B는 명분 없는 지시나 불의에는 투덜투덜 적당한 불만을 표출하지만, 그럼에도 성실하고 책임감이 있어서 윗사람들도 주로 그에게 일을 믿고 맡기곤 했다. B처럼 일을 미루고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에 대한 혐오감을 항상 숨기지 않았다.

윗사람들은 자연히 편하고 믿을 만한, 동시에 만만한 B에게 일을 많이 맡기면서 A와 B의 갈등이 깊어져갔다.


[주변 사람들이 억울함을 얼마나 알아줄까]

같은 부서원들은 알고 있었다. A의 진상정도와 B의 억울함을.

그리고 B만큼은 아니더라도 A에 대한 불만은 나 역시 있었고 부서 내부에도 깊숙이 깔려있었다.

B는 A에 대한 불만을 여기저기 드러냈다.


그러나 A의 과거 정상적 모습(그래봐야 타인 대비 양호하진 않으나)만 알고 있던 사람들은 A의 진화 상태를 제대로 알지 못해 B에게 공감해주지는 못했다.

“A가 그 정도는 아니야. 잘 지내봐.”


A가 진상이라는 것이 온 세상사람들에게 알려졌더라면 B의 억울함도 좀 줄었을까.

B의 억울함과 A에 대한 혐오는 거기에서부터 정점으로 치닫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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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의 양과 전파의 힘은 비례하지 않다]

왤까. 왜 전파력을 잃었던 걸까. 한부서의 동료들이 스무 명이 넘는데 그들이 한 마디씩만 했어도 200명에게 도달하는 데까지는 만 하루도 걸리지 않았을 것인데 왜 보탬이 되지 못했던 걸까.


내가 B를 보며 안타까웠던 부분은

B가 주변에 넋두리를 늘어놓는 그때부터 전파력이 힘을 잃었다는 것 때문이다.


첫째로, 사람들은 ‘개인’과 ‘개인’의 일에 관심이 없다.

보통 사람들이 입에서 입으로 옮기기 좋아하는 화제는 아주 얄궂게도 누가 크게 피해를 입었다거나 누가 크게 사고를 쳤을 때인데, 개인이 개인을 괴롭힌 일은 누군가에게 옮길 정도로 대단한 일이 아닌 것이다.


둘째로, 소문은 사람들을 조심시킨다.

어떤 정의로운 누군가가 다른 이에게 B의 억울함을 말로 옮겨줬다 치자. 들은 사람이 A의 정상인 시절만 안다면 공감해주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공감받지 못한 자는 다시 옮기는 것을 시도하지 않는다. ‘조심’스러워진다. 한 다리 건너 남의 일로 괜히 '말 옮기는 사람'이 되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다. 거기서 소문은 멈춘다.


막말로 B가 생명의 은인이 아닌 이상 누가 그렇게까지 나서줄까.

그러니 B가 넋두리 늘어놓은 사람이 많다고 공감을 받았다 해도 그 총합만큼 불의가 전파되지 않는다. 주변의 공감과 전파는 아무 상관없는 함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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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도둑, 트러블 메이커를 알리는 방법]

나의 억울함을 알리고 싶은 사람의 심리는

나와 주변에 피해를 준 월급도둑, 트러블 메이커가 ‘공공연한 나쁜 놈, 객관적 쓰레기’가 되길 바라는 심리일 것이다.

이해는 가지만 현실적으로 내가 알리는 것은 효과가 없다고 말해주고 싶다.사의 감사팀이 움직일 정도의 사건이 아니면 내 입으로 누군가 문제가 있다고 알리는 건 한계가 있다.


정말 알리고 싶다면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다른 사람들이 ‘직접 경험’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넋두리, 신세한탄으로는 겪고 있는 불의와 억울함은 그대로 전해지지 않는다.

느낀 다른 사람들이 경험하고 또 다른 사람에게 직접 경험을 전해야만 효과가 있다.


정말 답답하게 들리겠지만 사실이다.

지금 당장에야 ‘다른 사람에게도 또 그런 일이 일어나겠어? 날 때까지 언제 기다려.'라고 할 수 있는데

회사란 곳이 그런 곳이 아니다.


부서끼리 협업하고 부딪히는 일이 많아서 트러블메이커를 나만 알고 끝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트러블메이커가 ‘전방위적’ 가해자임을 진정 입증하고 싶다면 절대 그에 대한 나의 ‘비호감’을 알리지 말아야 한다. 나의 감정표현 양은 '0'에 가까워지도록 노력해야한다.


내가 알리는 순간 다른 이들은 조심할 것이고, 나만한 피해자는 나오지 않는다. 즉, 그 트러블메이커를 돕는 꼴이 된다.

게다가 더 최악은, 가장 입을 많이 연 내가 난감해지는 순간이 온다.


주변사람들은 바보라서 말 안 하고 가만있고, 속이 좋아서 참아주는 게 아니다.

물론 그 사람들이 정녕 제3의 피해자가 또 나오길 바라는 거국적 마인드로 때를 기다리는 것도 아니겠으나

직장의 모든 이들은 내 손에 파묻히는 게 가장 손해라는 걸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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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는 타인에 대한 내 감정표현이 영양가 없이 내 손해로 돌아오는 씁쓸함이 남는 곳이다.

정 밖으로 이것을 표출해야겠거든 회사 사정 다 모르더라도 나쁜자의 얘기는 회사밖 친구한테 하는 게 (지금 당장은 스트레스가 덜 풀릴지 몰라도) 결과적으로 더 낫다.



그래도 글을 씁쓸하게 끝내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지금 A는 B밑에서 B를 팀장으로 모시며 일하고 있다. 회사에도 나쁜 끝과 성실한 끝은 꼭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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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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