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소모되고 있을 때
회사를 다니면서도 공부가 필요했다.
부족한 나를 채우기 위해.
엑셀, 프레젠테이션, 외국어공부, 파이썬, 회계, 원가...
이것저것 학원을 다니면서 공부하기 시작했다.
퇴근 후에 학원을 가기 위해서는 야근할 일이 없어야 하니 하루를 일찍 시작한다.
1시간 잠을 줄이고 1시간 더 일찍 퇴근해서 갖은 눈치를 보며 퇴근을 한다.
그 와중에 칼퇴근하는 내게 어인 일냐고 누가 물으면 어떤 핑계를 대야 할지도 나가면서 고민한다.
누구라도 내가 노느라 퇴근하는 줄 알까 봐 괜히 불안해하면서.
혹시 잘하는 게 많지 않아 이런 걸 배우러 가는 나의 부족함을 누가 알까 봐 전전긍긍하면서.
학원이 끝나면 앉을 틈 없는 지하철에서 인강을 보며 복습을 하고
피곤해서 집에 오는 길에는 마트에서 산 샐러드로 대충 때우고 어질러진 집을 치우고 잔다.
[하루를 알차게 썼지만 보람이 없다]
처음에는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는 이 시기가 언젠가는 나의 인생을 비옥하게 만들어줄 수 있을 것이라는 추상적인 믿음을 가지고 움직였다.
그렇지만 한 달이 지나고 반년이 지나면 ‘자기 계발’이라는 명분이 더 이상 나의 원동력이 되지 못하는 순간이 온다.
체력은 한계가 있고 그 사이에 이를 통해 회사에서 얻은 성취감이 없을 확률이 크기 때문이다.
지칠 때쯤 O튜브에 우리는 ‘자기 계발’, '투잡으로 성공한 사례', ‘의지 다 잡는 멘털 관리법’, ‘아침형 인간의 시간 소비’ 등등을 찾아보면서, 다시 용기를 얻어봤다가 맘속으로 포기도 해봤다가 답을 찾지 못하고 잠에 든다.
다음날 일어나서 사업이라도 해볼까 퇴직금을 계산해 보지만 턱없이 부족해 다시 일을 하고 학원으로 출발하는 쳇바퀴에 탑승한다.
[나만 가루가 되나요]
남들도 이렇게 ‘가루’가 되도록 사는지 궁금해지곤 한다.
가루가 되도록 나 자신을 갈아 넣는 이곳은 회사요, 내 가게도 아닌 곳.
보람이나 성과만이 유일한 답인데 어느 순간 ‘금융치료’조차 힘이 되지 않는 한계가 왔을 때 정말 막막하다.
학교에서 공부하는 거였다면 결과가 더 빨리 나왔겠지만, 사회는 그렇지 않다.
A를 입력했다고 A는 보이지 않고 수많은 변수들로 인해 B가 나오거나 A를 찾는 데까지 시간이 만만치 않게 걸린다.
나를 소비하고 지쳐가는 시간을 겪다 보면, 이 시간이 나 자신을 위해 쏟아부은 시간이라기보다는 회사에 내 돈과 체력을 써가며 밑바진 독에 물 붓는 것 같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정말 받고 싶은 위로는 따로]
“네 회사도 아닌데 그렇게까지 할거 뭐 있어. 너만 상하지.”
"언젠가는 잘 될 거야. 계속 잘 버텨봐. 다 널 위한 거야."
이런 얘기는 정말 위로가 되지 않았다.
지금 당장 이걸 잘하지 않으면 인정도 못 받고 승진도 늦을 걱정을 하는 나에게 저런 말이 도움이나 될까?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분들에게 아래와 같은 이 말을 꼭 해주고 싶다.
★내가 받고 싶은 위로였으며, 그 어느 한 문장이라도 위로가 되길 바라면서★
어려우면 안 하는 사람들이 회사에 훨씬 많다.
그런데도 그 책임을 포기하지 않은 당신이 너무 장하다.
안타깝게도 직장은 여전히 내 가족이 아니라서 장하고 기특하다는 칭찬을 들을 수 있는 곳은 아니다.
하지만 아주 명확한 것이 하나 있다.
만일 당신이 원하는 결과를 못 얻더라도, 무언가 잘 못해내더라도 당신은 크게 비난받을 사람이 절대 아니라는 것을 주변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다. 혹시 비난하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그것은 질투이고 견제이다. 열심히 하고 해내고야 마는 당신에 대한.
사람들이 당신이 무슨 학원을 다니고 하루를 어떻게 사는지는 모르지만,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는 모두가 똑같이 느끼고 있을 것이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는 아니고
사회는… 독 안에 두꺼운 휴지 같은 것이 든 곳이라 물이 차오르는데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는 곳이다.
그리고 다들 자신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 내가 실제로 부족해서가 아니다.
그러니 자신을 더 가루로 만들어 빠른 결과를 얻어내겠다고 압박하지 말자.
지금 이 속도는 아주 많이, 벅차게도 충분하다.
독에 물이 가득 차오른 날, 그 위에 떠 있는 꽃을 같이 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