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먹는 대가로 말을 해야 하는가
학교는 학예회를 한다.
직장은 학예회가 필요 없다. 회식이 있으니까.
회식 때만 되면 사람들은 공작새가 된다.
누구 날개가 더 화려한지 뽐을 낸다.
그 회식이 임원의 주재이거나 인사평가철이라면 더 그렇다.
공작새들이 촌스럽게 대놓고 ‘저는 이걸 잘해요’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은근슬쩍, 말끝에 자신의 자랑을 내포한다.
듣는 사람도 알긴 안다.
예를 들면,
자신이 야근을 하다 9시가 넘어 건물 히터가 돌아가지 않아 감기에 걸렸다는 얘기로 자신이 많은 업무를 하고 있음을 은근슬쩍 고백.
까다로운 거래처 어느 곳이 올해에는 좀 조용해졌다는 얘기로 자신의 업무 능력을 은근슬쩍 어필.
외부 누군가의 결혼식에서 더 높은 임원을 만났다는 이야기로 자신의 인맥을 드러내며 은근슬쩍 고과평가자를 압박.
은근슬쩍 얘기해도 자랑임이 분명 티가 나는 저런 얘기는
나의 적성에는 정말 맞지 않는다.
그렇지만 입 다물고 있기에는 나만 내세울 것 없는 비둘기가 된 듯해서 기분이 찜찜하다.
그 밖에도 학연, 지연, 주식, 코인, 골프, 부동산. 주변의 핫하다는 이야기들은 모두 등장한다.
여기서라도 입을 열고 싶지만 사람들에게 자신 있게 얘기할 만큼 그에 관한 지식이 없다.
[그곳은 고통의 밥상]
자기 자랑도, 아부도, 비위 맞춤도 그 어떤 것 보다도 업무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고지식한 나에게 회식은 늘 고통의 자리이다.
회식을 주재한 사람의 기억 속에 남고 싶어서 애쓰는 사람들처럼, 나도 나의 업무 성과를 그 사람이 기억해줬으면 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 밥 먹는 자리에서 날개를 피우는 것이 그렇게 불편할 수가 없는 것이다.
꼭 회식자리에서 말을 많이 해야 할까?
첫째로,
만일 자랑도 하기 싫고 남에게 공유할만한 지식을 뽐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닌데, 말은 좀 하고 싶다면 질문을 하는 것을 추천한다.
주재자를 비롯, 누군가 뽐을 내고 있다면
“오 그런가요? 그건 어디가 유명한가요?”라는 식으로 잘 들어주고 있음을 표시하면 된다.
그럼 사람들은 나를 점잖게 듣고만 있었는데도 적극적으로 회식에 참여한 사람으로 인식한다.
둘째로,
굳이 말하고 싶지 않으면 말하지 말자.
말하지 않아도 공작새들은 날 지식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니 신경 쓸 필요 없다.
그리고 날개 펴던 공작새들도 알고 있다. 그날 자신들이 좀 무리했다는 것을.
입 열고나서 이불 킥하는 것보다는 공짜밥 먹고 집에 와서 편히 자는 것이 더 낫다는 걸 그들도 안다.
난 그 편을 택했다.
그리고 부디...
밥상 차린 사람만 말하고 먹는 사람들은 후회스러움과 숙취로 고생하게 하는
고통의 밥상 좀 안 만드는 센스 있는 조직장들이 이 세상에 많아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