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뭘 잘하니?'라는 말 앞에서 나는 멈췄다.

내 입으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 수도 있다.

by 류리원

회사에서 부서를 이동하거나 새로운 윗분이 오시면 종종 듣는 얘기가 있다.

"자넨 뭘 잘하나?"

할 말이 없다. 도대체 한국인의 정서상 대답을 하라고 묻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자기 어필 시대와 겸손이 미덕이라는 이념 사이 어느 노선을 가야 하는지 택하기가 어려운 건 나만의 고민인 건가.


다른 사람들은 저 질문에 이렇게 답하기도 한다.

"저는 술을 잘 마십니다", "저는 모창을 잘합니다."

이런 유의 대답을 들으면 업무, 지식은 차치하고 잡기조차 없는 내가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가 없다.


회의실이 아니고도 또 한 번 작아지는 순간이다.


직장인에게 특기나 자랑거리라면 서류상 즉, 나의 인사정보에 나와있는 것 들일 것이다.

뻔하지만 학력, 자격증, 어학점수, 고과, 과거 나의 보직을 포함한 경력들…

저 중에는 내 자랑거리라고 꼽을 만한 것이 딱히 없다.

[내가 가진 유일한 특기?]

딱 하나의 특기는, 내가 갖지 못한 서류상의 자랑거리를 보완하는 성실함과 책임감이다. 야근을 불사할 정도의 성실함은 꽤나 많은 노력과 체력이 드는 나만의 무기이다.


대신, “자넨 뭘 잘하나”라는 질문에는 답할 수 있는 특기는 아니고 누군가 나와 일을 해야만 알릴 수 있는 장기이다. 그런데, 저 추상적이고도 설명을 요하는 특기는 사실 특기라고 볼 수 있을까? 직장인에게 성실함과 책임감은 ‘디폴트값’이다. 당연히 지녀야 하는 미덕 같은 것.

그러니 더 이상 특기도 아니다.


[문서 설명 대신 구두 설명 필요한 나?]

그나마 가진 나의 작은 이력들은 어디 써놓을 정도는 안되고 대신 '질문'을 통해서 설명된다.


"00 씨는 어떻게 우리 회사에 오게 됐어요?"

"아 네 저는 관세사 공부를 한 적이 있어서 산업통상자원부에 지원했었는데요. 최종적으로 잘 안되고 합격한 여기로 오게 됐습니다"

"오 그럼 통상 쪽 잘 아실 테니 여기 수출업무에 도움이 되겠네요." → 특이사항 입력 완료


"이번에 새로 온 △△씨는 뉴질랜드에서 오래 살았다더라고요. 00 씨도 △△씨처럼 외국에 산적 있어요?

"네 저도 초등학교 때, 오래는 아니고 잠시 외국에 살았습니다."

"오 그럼 영어는 좀 하겠네요." → 특이사항 입력 완료


이런 식이니 누가 먼저 질문해주지 않으면 날 알릴 기회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건 질문에 답하고 나면 특기가 아니라 특이사항을 공유한 느낌이다. 별 효익이 없단 얘기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회사는 그런 식으로 다니면 안 되는 거였다.

내가 보기에 내가 장점이 없다고 해서

‘언젠가는 물어봐주겠지’하면서 질문이나 기다리고,

‘언젠가는 다른 사람들 보다 훨씬 성실하다고 특별히 인정해 주겠지’하면서 넋 놓고 있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

나에 대해 말이 없는 것은 그냥 조용한 것이지 겸손한 것이 아니다.



[뒤늦게 어필할 타이밍은 민망해서 잡을 수가 없다!]

내가 잘못된 방향으로 지내고 있었다는 걸 언제 깨달았느냐.

승진을 앞두었을 때와 선호부서로 보직을 옮기고 싶었을 때였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내 자랑 한마디를 안 하다가,

'저도 잘하니 승진시켜 주세요.', '저도 이런 거 잘하니 인기부서 보내주세요.'를

그때 와서 어필하기가 정말이지 생뚱맞았다. 그제야 설명을 하자니 거의 발버둥에 가까웠다.


그런데 내가 조용히 있는 사이에 다른 사람들은 알음알음 자신을 표현하고 드러내고 있었다.

그들은 갑자기가 아니라 '평소에' 자신을 표현하고 있었다.


[옆 사람의 입을 빌려서 나를 알리기]

내 입으로는 자랑이 어렵다. 어차피 잘난 체라고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남의 입을 좀 빌려야 한다.

회사에서 누군가 만날 일이 생기면 자랑이 아니라 '경험'인 듯 얘기하면서 나를 어필해야 한다.


이런 식이다

예: 출장 얘기가 나오면

"저도 첫 출장이 아직도 생각나는데요. 미국 출장이었는데 너무 긴장해서 아무 얘기도 들리지 않는 겁니다. 그래도 관세사 공부할 때 배운 내용 눈치로 알아듣고 통상 얘기로 한 시간 정도 잘 때운 것 같아요"

→ 한 시간이나 외국인과 대화할 정도이고 무역지식이 있다는 점 입력 완료


예: 요새는 긴급성 업무가 많다는 얘기가 나오면

"저도 지난주에 점심 먹고 들어오니까 팀장님이 2시까지 데이터를 정리하라는 거예요. 절대 못하겠다 생각했는데 온갖 함수를 다 써서 2시까지 하느라 먹은 점심이 다 체할 정도였습니다. 요샌 이런 일이 많으니 점심 먹고도 일찍 일찍 들어가 있어야겠어요"

→ 엑셀을 활용한 업무 처리속도가 빠르다는 점 입력 완료




[평소에 회사 사람을 만나면 한마디는 꼭]

진짜 이게 효과가 있을까 싶지만, 한두 번으로 끝내라는 것이 아니다.

만나는 사람에게 대화하는 15분 내내 저런 얘기를 하라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과의 대화에서 15분 중 한마디면 충분하고, 이런 식으로 평소에 나에 대한 이미지를 축적하면 정작 승진을 앞두고 선호부서로 지원할 때 굳이 그때 가서 나를 설명할 필요가 없다.

그때 가서 모창명가수나 말술처럼 재주조차 없는 나라고 탓할 필요도 없다.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은 나의 장점이 될 수 있다. 내가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서.

전문직 자격증도 없고, 어학점수가 낮고, 고과가 보통이고, 나한테 고과주는 사람보다 학벌이 낮 다해서 야근을 해가며 물리적 어필을 하는 것은 추천하지 않는다.

나의 경험상 가장 인정을 늦게 받는 길이었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르듯이 조금씩 전하는 나의 경험은 묵직한 내 장점이 되어 어디선가 정착할 것이다. 지금 당장 보이진 않지만 몇 년 쌓인 후 보상이 되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때 자신의 입으로 잘난 체하지 않고도 자랑거리와 특기가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있을 것이다.

나의 첫 번째 승진과 두 번째 승진이 달라지게 된 내 경험이다.


혹, 지금 당장 자신의 얘기를 하기에 입이 떨어지지 않는 분들이 있다 해도 난 채근하지 않을 것 같다.

나를 나타냄에 있어 수줍고 투박한 것이 무능력한 것은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 또한 실행하기까지 오래걸렸다.

그래도 언젠가는 누군가와의 대화에서 자신의 장점을 은근하게 보여줄 미래의 그날의 용기를 나는 미리 응원하고 싶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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