얕고 넓은 나를 설명하는 법

직급별 리브랜딩(Rebranding)

by 류리원

직장생활에 입문하던 그때까지는 직장이 필요한 인재가

스페셜리스트(Specialist)가 아니라 제너럴리스트(Generalist)라고 생각했다.

주변 사람들도 대부분 그렇게 생각했고 나도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고참 대리가 되었을 즈음,

(원래 많았는데 내 눈에 그제야 띈 것인지 그때부터 많아지기 시작한 것인지)

스페셜리스트들이 주변에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은 나보다 적은 양의 일을 하고도 더 많은 양의 인정을 받는 듯했다.


출신이 스페셜한 자, 장기가 스페셜한 자, 하물며...(내 입으로 이런 말을 할 줄은 몰랐지만) 집안이 스페셜한 자들까지... 하나씩은 스페셜한 무언가를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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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실 누군가와 나를 비교하면서 살아본 적은 없었다. 누군가의 무엇이 레퍼런스가 되지는 않을 만큼 나름의 자신감을 갖고 사는 젊은이였고, 어제의 나와 치열하게 싸우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 나이까지는 노력한 만큼은 성과가 나고 있었으니 자존감도 높은 편이었다.


그런데, 스페셜한 자들보다 회사일이 늘어나면서부터 나의 평범함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택배에 돌돌 말려 오는 뾱뾱이를 보면 나 같았다. 뭐 하나 툭 튀어나온 곳 없이 어쩜 그리 고를까.

뾱뾱이 같은 나는 에지 있는 스페셜한 자들보다 일을 더 많이 하는 것으로 내 자리를 굳건히 하는 방향을 선택했다.

그것을 눈치챈 리더들은 곧바로 많은 일을 내게 몰아주기 시작했다. 회사 차원에서는 정말 가성비가 좋은 직원이 되고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많이 일하면 일할 수록 성취감은 덜했다.

성취감이 덜한데 그 허기짐을 채울 것이 일 밖에 없었고 나를 소모해 가며 딜레마 가득한 쳇바퀴를 돌렸다.


나의 평범함이 이렇게도 숨기고 싶은 단점이란 말인가 고민하고 있을 때, 나의 가족 중 한 명이 말해줬다.

"신경 쓰지 마. 그래도 너는 조금씩 여러 개 잘하니까."

요새 말로 하면 T 성향, 늘 위로는 사치라던 그 가족 구성원이 나한테 그런 말을 해준 날

잠에 들면서 엄청 울었다.

나 스스로 나를 그렇게 위로해 볼 생각을 못했었던 지난날의 내가 너무 가여워서 정말 많이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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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너럴리스트가 필요한 곳'

요새는 정보도 많고, 정보의 소스도 다양하고, 그러니 장기가 많은 스페셜한 사람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래도 직장은 특별한 보직을 제외하고는 아직도 제너럴리스트가 필요한 곳이 훨씬 많다. 많은 수의 직원을 회사를 위해 돌려야 하는 그곳에는 다양한 색깔의 제너럴리스트를 뽑기 위해 인사팀도 따로 두고 인사 정책도 매년 바꾼다.

나는 빨주노초파남보 중에 초록색이 빠져있는 제너럴리스트인데, 보라색은 빠지고 초록색을 가진 다른 제너럴리스트를 보고 스페셜하다고 생각한 것 아닐까 짐작도 해본다.


'나를 위해 Rebranding'

자신의 평범함을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회사에서 배운 방법으로 자신을 다시 브랜딩 해보길 바라는 마음이 든다.

회사라는 곳은 '우리 회사가 00 하게 보이기' 위해 돈도 쓰고 직원도 쓰고 시간도 쓴다.

'소통이 잘되는 회사처럼 보이기, 글로벌 문화를 선도하는 것처럼 보이기, 품질에 타협 없이 보이기.'


그렇다면 우리도 평범함이 장기인 것으로, 조금씩 여러 개를 잘하는 것을 좋게 보이게 하면 된다.

- 어느 부서를 보내도 잘 적응할 수 있다

- 어느 보직으로 보내도 금방 모드변환이 가능하다

이것을 뭐라고 할까? 바로 '일머리'다.


평범한나 = 제너럴리스트= 일머리가 좋은 사람

이것이 나를 야근에서 구해줄 리브랜딩 철학이다.


'경력, 직급별로 일머리를 어필할 방법은 다름'

① 사원님 일머리 어필하기

사원님은 천지를 분간함에 있어 가이드가 많이 필요하다. 언제는 컬러프린트를 하고 언제는 PPT 세로 포맷을 써야 하는지 처음에는 모를 수밖에 없다.

이것은 사원님이 모자라서도, 센스가 없어서도 아니다.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선배들도 알고 있다. 그러니 뭐만 해도 칭찬받던 아가 시절처럼 기본만 해도 선배들의 기대감을 충족할 수 있다.

회사에서는 사원님에게 범위 이상의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드라마 '미생'의 장백기 씨를 보면 알 수 있다.)


시킨걸 '정확히'알고 있으면 된다.

- 이번 달 우리 팀의 매출 목표가 얼마인가

- 이번 분기 팀예산이 얼마인가

- 상반기 우리 제품 콘셉트가 무엇인가.

팀장님이 물어봤을 때 정확히(숫자라면 신경 써서 기억) 답을 해주면 된다.


② 대리님 일머리 어필하기

대리님은 맡은 일에서 '한 발짝만 더' 나아가 있으면 된다.

- 이번분기 우리 팀 매출 목표는 지난달 대비 어떠한가

- 우리 팀 예산사용 진도는 같은 조직 내 다른 팀 대비 어떠한가

- 상반기 우리 제품 콘셉트가 작년 대비 반응이 어떻게 다른가

팀장님이 물어봤을 때 '변동, 변화, 추이'에 대한 부분을 갖추어 말해주면 된다.


③ 과장님 일머리 어필하기

과장님은 어제까진 대리였지만, 이제 간부의 수습단계를 준비해야 한다.

그러니 팀장님이 '한발 더'나갈 준비를 하게 해줘야 한다.

- 이번 달 매출은 이러니 다음 달엔 00이 전망됩니다.

- 예산 사용진도가 이러하니 다음 달에 부족하지 않도록 이번 달에 00 정도로 사용해야 합니다.

- 시황을 살펴보니 이런 특이사항이 있어 00을 지켜보겠습니다.

안 시킨 조사도 한 번쯤 하면서 팀장님이 '전망'을 할 수 있도록 단서를 주면 좋다.


④ 차장님 일머리 어필하기

팀장님이 뛰는 첫발을 같이 뛰어줘야 한다.

결정을 '유도'하고 신속한 결심을 이끌어내야 한다.

- 현황, 추이, 전망을 다 종합해 보니 다음 달엔 A를 해야 좋은데 2안으로는 B가 있습니다.

- 시황을 보니 가격을 맞춰주면 우리가 손해지만 다음 달 전망이 이러하니 이번 달엔 필요할 것 같습니다.

우려사항은 00가 있습니다.


결정하는 팀장님이 부담이 없게 '대안'과 '우려사항'을 제시하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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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모든 직급의 '일머리' 어필에 있어 방점을 찍는 킥이 있다.

"복잡한 일은 귀찮아서 먼저 빨리 끝내버렸다."

이 말이 magic word다.


직장인에게 이것만큼 유능하고 사랑스러운 멘트가 있을까.

복잡한걸 빨리 끝낸 능력에도 감탄할 마당에, 미루지 않고 끝냈다니 태도까지 완벽하다는 느낌을 주는,

겸손은 충만하고 어필의 효과는 거대한 브랜딩 시그니처 멘트다.


평범함은 모자람이 아니다.

스페셜한 걸 여러 개 갖고있는 일머리 복합체임을 잘 브랜딩 해보자.

여태까지 한 야근은 앞으로라도 알뜰하게 인정과 보상받고

여러분의 퇴근길이 어제보다 조금 나아지시면 좋겠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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