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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rah May 14. 2024

학회 100배 즐기기

학회에 관한 몇 가지 조언


처음 해외 학회에 참가했을 땐 발표를 잘하고 세션을 잘 듣는 것이 주요한 목표였다.

그 당시에는 발표 자체가 긴장되고 어려운 일이어서 다른 것을 신경 쓰기 힘들었고, 듣고 싶은 세션 목록을 만들어서 이른 아침부터 저녁까지 열심히 들었지만 그게 다였다.

작년에는 달랐다.

다른 연구자들과 네트워킹하면서 협업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것과 내 연구 참여자를 찾겠다는 목표가 추가되었다.

목표는 중요하다.

모든 일에 목적이 있을 필요는 없고, 때로는 그 자체로 귀중한 경험이 되는 일도 많지만, 같은 일을 하고 같은 경험을 하면서도 궁극적인 지향점이 무엇이냐에 따라 그 경험의 질과 의미와 귀결이 달라지는 경우도 많다.

매우 생산적이고 여러모로 유익했던 작년 미국보건학회와 비교해 보면 더욱 그렇다.

학회에서 듣는 세션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휘발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세션 자체는 굳이 대면 학회가 아니라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많다.

하지만 학회장으로 함께 걸어가면서, 같은 세션을 옆자리에서 함께 듣다가, 점심시간에 한 테이블에 앉아서 식사를 하다가, 세션이 끝난 이후에 함께 연구 이야기를 나누다가 얻게 되는 네트워킹 기회는 학회가 아니라면 얻기 힘들다.

작년 미국보건학회에 참석하면서 알게 된 사람과 함께 논문 두 편을 작업 중이고, 또 Caucus on Refugee and Immigrant Health라는 학회 내 소모임을 알게 되어 그 모임의 External Secretary로 일하면서 분기별로 웨비나를 진행해오고 있다.

그리고 그 학회에서 만난 사람들을 인터뷰해서 박사 논문에 활용할 뿐 아니라 별도의 논문 작업도 진행 중이다.

그래서 올해 참석했던 학회도 발표를 잘하는 것, 세션을 열심히 듣는 것도 주요한 목표 중 하나였지만, 네트워킹을 열심히 했다.

발표가 끝나고 찾아가서 궁금한 것을 질문하다가 내가 만나고 싶었던 연구자와 연결되어 만나기도 했고, 우연히 같은 테이블에 앉아 식사를 하던 사람을 내 연구 참가자로 섭외하기도 했다.

새로운 리서치 커미티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되어 참가 신청도 했다.

같은 세션을 듣다가 옆자리에 앉은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가 개발 중인 도구를 번역해 줄 수 있는 사람을 발견하기도 했다.

내가 포닥으로 연구하고 싶은 주제를 이미 연구 중인 연구자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연락처도 주고받았다. (내가 진행 중인 웨비나에 연사로 초청해 연구에 대해 더 깊은 이야기를 듣기로 했다.)

목적의식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면 정말 많은 것이 이뤄질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곳이 바로 학회다. 그런 학회를 즐기고 십분 활용하기 위한 몇 가지 이야기다.

1. 내 안의 E를 끌어낸다.

나는 본래 내향적인 사람이다.

친하고 편한 사람들과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걸 좋아하지만, 처음 만나는 사람이나 잘 맞지 않는 사람들과 오랜 시간 이야기 하다 보면 진이 빠진다.

그래서 학회는 일종의 연극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내면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사람의 외면을 보고 판단한다. 자신감 있게 행동하면 그냥 저 사람은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한다.

이번 학회에서는 눈 마주치는 거의 모든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특히 이 학회는 내가 관심 있는 좁은 주제에 관한 학회라 어떤 사람이 내 연구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을지 몰랐다.

그래서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사람, 에스컬레이터에서 함께 올라가는 사람, 점심시간에 우연히 같은 테이블에 앉게 된 사람 등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면서 내가 활동하는 소모임에 대해 홍보하기도 하고 연구 소개도 하고 내 연구에 있어 도움이 되는 사람도 많이 만났다.

2. 내 연구를 쇼케이스한다.

학회는 다른 사람의 연구에 대해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지만, 내 연구와 연구자로서 나라는 사람을 알리는 기회이기도 하다.

그렇다 보니 짧은 시간 동안 내 연구를 소개할 기회가 많은데, 이번 학회에서도 그랬다.

1분 내외로, 지루하지 않게, 내 분야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어도 이해할 수 있는 평이한 언어로 전달할 수 있는 엘리베이터 스피치를 연습해 가면 도움이 된다.

또 요즘엔 QR 코드도 많이 활용하는 추세다. 나도 발표 슬라이드 마지막 장에는 앞으로 내 연구 계획과 함께 내가 리드하고 있는 웨비나과 참여 중인 그룹의 QR 코드를 넣었는데 많은 참가자들이 그 슬라이드의 사진을 찍었다.

3. 팔로우업 한다.

짧은 학회 기간보다 더 중요한 건 학회 이후다.

보통 업무나 일상에 치여서 후속조치를 취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학회에서 들은 내용은 곧 머릿속에서 사라지고 주고받은 연락처도 어디엔가 묻혀서 잊혀버리면 아무 의미가 없게 된다.

나는 학회에 가면 노트북을 가지고 정리를 하는데, 슬라이드는 찍어서 바로바로 에버노트에 업로드한다.

에버노트에서는 PDF나 사진 파일 안의 텍스트도 검색할 수 있기 때문에 슬라이드를 찍어놓고 잊어버리더라도 나중에 필요한 내용을 검색할 수 있다.  

또 발표를 들으면서 발표에 관련된 함의도 함께 정리한다.

발표자가 어떤 걸 했는데 굉장히 좋았다든지, 어떤 식으로 말하는 건 굉장히 별로였다든지 하는 내용을 기록해 두고 나중에 내가 발표할 때 참고한다. 더불어 팔로우업 할 내용도 함께 정리한다.

명함들도 잃어버릴 가능성을 대비해서 받으면 바로 핸드폰으로 찍어 에버노트에 업로드해두고 팔로우업 할 내용에 짧게라도 기록해 둔다.

이번 학회에서도 그렇게 했는데 메일 보낼 사람들에게 모두 메일을 보내고, 팔로우업 해야 하는 것도 모두 완료했다.

학회 일정 중에 만난 한 교수님은 아예 나를 만난 자리에서 내게 주기로 한 파일을 보내는 일정을 캘린더에 내 이메일과 함께 등록하기도 했다.

사람은 모두 다 잊어버린다.

그걸 감안해서 잊어버리지 않도록 기록해 두고 후속조치를 취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이렇게 학회를 마치고 나면, 핸드폰이나 노트북으로 쉽게 검색 가능한 학회 슬라이드와 여러 연락처와 많은 가능성을 가진 관계, 발표와 관련된 여러 함의가 남게 된다.  

4. 즐긴다.

다 마음먹기 나름이란 말이 있다.

세상만사 모든 것에 공히 적용되지는 않겠지만, 많은 것이 정말 마음먹기에 달린 것 같다.

학회 참석 자체는 고된 일이다.

아침부터 일어나 바쁘게 학회장을 이곳저곳 뛰어다녀야 하고 발표 준비도 해야 하고 사람들과 어색한 대화를 이어나가야 할 때도 많다.

그래도 달리 생각하면 학회는 내 지평을 확장하는 기회다.

내 연구 관심사와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학문적인 여정에서의 동반자를 만날 수 있는 기회고, 내 연구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을 찾고 내 연구를 홍보하고 옹호할 수 있는 기회다.

특히 내가 관심을 가지는 분야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때로는 외롭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도 있었는데, 나와 비슷한 분야에 열정을 가진 사람들 속에서 일종의 연대감을 느끼기도 했다.

이왕 하는 것 기쁜 마음으로 즐긴다면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경우가 많이 있다. 학회도 그렇다.

오늘은 또 어떤 연구자와 마주치게 될지, 어떤 연구자와 연결되어 함께 멋진 연구를 해나갈 수 있을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즐기면, 더 유익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연구자들의 건승을 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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