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개발한 설문지를 테스트하기 위해 아프간 난민분들을 만났다.
앞선 인터뷰가 늦어져서 두 번째 인터뷰는 점심시간 즈음 도착했는데 감사하게도 점심을 준비해 두셨다.
불라니라는 음식인데 우리나라의 전 같기도 하고 부침개 같기도 한 음식이다.
얇게 한 반죽 안에 야채를 넓게 펴서 부친 것도 있고 감자를 잘게 썰어 넣고 부친 것도 있는데 우리나라 전을 매콤하고 짭짤한 소스에 찍어먹듯, 매콤한 소스를 함께 내왔다.
바삭바삭하고 쫄깃쫄깃한 맛이 꼭 한국의 부침개 같아 반가웠다.
음식을 함께 먹으며 수다가 그리웠는지, 음식을 내온 난민분은 통역해 주는 친구와 함께 한참을 수다를 떨었다. 통역사가 나에게 중간중간 통역을 해주었다.
여러 난민 여성을 인터뷰하다 보면 공통된 점이 있다. 많은 난민이 만성 두통과 불면증에 시달린다.
이번에 만난 여성도 만성 두통과 불면증에 시달리는데 최근에는 숨을 쉬기 힘든 증상도 생겼다고 한다.
통역해 주는 분도 난민 출신인데, 그 말을 듣고는 자신도 두통과 불면증, 탈모에 시달리고 있다고 했다. 최근에는 흰머리도 많이 생겼다고 덧붙였다.
미국의 높은 월세, 불확실한 미래, 가족이나 친구도 없고 말도 통하지 않아 고립되고 외로운 생활, 현지에 두고 온 가족에 대한 걱정 (대부분 가족들이 현지에서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고 실제로 친척이 탈레반에 살해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자신은 비교적 안전한 삶을 꾸려가고 있는데 가족들은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다는 사실로부터 오는 죄책감과 무력감 등 여러 요인으로 스트레스를 받는다.
흔히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라고 한다.
정말 그렇다. 여러 연구를 통해 밝혀진 바에 따르면 만성적인 스트레스는 혈압, 급성 심근경색 등 여러 심혈관 질환의 발생과 연관되어 있고 여러 면역 기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예전 인터뷰를 한 난민들 중 미국에 오랜 기간 거주한 난민 중에 고혈압이나 당뇨, 암 등 만성질환에 시달리는 사람이 적지 않았고, 심장에 문제가 생겨 이미 여러 번 심장 수술을 받은 사람도 있었다.
며칠 전 만난 그분은 아무리 슬퍼도 눈물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슬픔이 너무 커서 가슴에 응어리가 진 것 같고 목 아래가 아픈 것처럼 느껴지는데 눈물은 나오지 않는다고 그랬다.
난민 분이 내게 보여주기 위해 가져온 여러 약병을 보며 그저 그분의 말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미국 내에서 난민을 대상으로 하는 많은 사업은 단기간이라는 것이다.
매년 미국에 들어오는 난민의 수가 많다 보니 난민정착기관에서는 거주한 지 오래된 난민을 돌볼 여력이 없다.
한 편으로 미국에서 수행되는 여러 연구나 대규모 사회설문조사는 난민 지위를 비롯한 이주 배경을 물어보지 않는다.
심지어 시리아, 이라크 등에서 온 사람들을 구분하는 카테고리가 없어서 중동에서 온 사람들은 스스로를 백인으로 기입해야만 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난민들의 장기적인 건강은 관심을 가진 소수의 연구자들이 수행한 몇 개 연구를 제외하면 크게 알려져 있지 않다.
그래서 최근에는 미국에서 진행되는 조사의 인종 구분을 보다 세분화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는데, 어떠한 인구에 대한 데이터가 없으면 그 인구의 필요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이나 프로그램에 대한 논의조차 어렵기 때문이다.
박사후연구원으로 내가 하고 싶은 연구도 그런 거다.
난민의 장기적인 건강에 대한 현황을 파악하고, 필요를 해결하는데 보탬이 될 수 있는 사업을 기획해 적용해 보는 것.
장기적으로는 근본적인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거시적인 정책 차원에서도 영향을 끼칠 수 있게 되는 것.
얼마나 걸릴지 모르지만, 끝까지 가보고 싶다.
눈물조차 나지 않는, 크고 깊은 슬픔의 깊이를 나는 상상하기 조차 힘들지만 나의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으로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