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go-along 인터뷰를 수행하고 있다.
go-along 인터뷰는 참여적 관찰과 전통적인 인터뷰를 결합한 연구 기법으로, 연구 참여자가 주로 가는 곳을 따라가면서 진행하는 인터뷰다.
내 연구 주제인 난민 여성의 삶과 보건의료 접근성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전통적인 방식의 인터뷰와 go-along 인터뷰를 병행해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다.
지금까지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시리아에서 온 17명의 여성을 인터뷰했고 총 5번의 go-along 인터뷰를 마쳤다. 인터뷰 장소는 보통 연구 참여자들이 자주 가는 월마트, 병원, 아랍 가게, 공원 등이었다.
난민분들이 대부분 다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지만 최근 함께 go-along 인터뷰를 갔던 분은 여러모로 너무도 안타까웠다.
남편이 암에 걸렸고 (인터뷰를 한 난민분들 중에 심장병이나 당뇨, 고혈압 등의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장기적인 스트레스 노출과 만성질환 간의 상관관계에 대한 연구가 많은데, 이것도 후속 연구를 하고 싶은 주제 중 하나다) 인터뷰를 했던 분도 당뇨를 앓고 있었다.
아이는 셋인데 두 아이도 유전 때문인지 질환을 앓고 있다 했다.
(학교 근처에 가본 일도 없고 글을 읽을 수 없는 분이라 정확한 질병명조차 모르는 눈치였다. 본인의 나이도 몰랐다.) 막내아들도 심장에 이상이 있다고 했다.
암에 걸린 상황이라 병원에서는 되도록 일을 하지 말고 집에서 쉬어야 한다고 하지만, 미국의 비싼 월세와 전기/수도세, 다섯 가족의 생활비 등을 감당하기 위해, 남편은 주 6일 아침 10시부터 저녁 9시까지 식당에서 일하고 있었다.
남편이 아픈 데다 밤늦게까지 일을 하니, 아이들을 데리고 병원에 가거나 장을 보는 건 자연스레 엄마의 역할이었다.
집에 자동차가 한 대 있지만 남편이 차를 가지고 일을 가니, 병원에도 마트에도 아이 셋을 데리고 버스를 타고 다니고 있었다.
그날은 함께 버스를 타고 월마트에 가는 일정이었다.
쌍둥이 유모차에 4개월 아기, 2돌도 채 되지 않은 아이를 태우고 7살이 된 아이는 걸려서 함께 버스를 타고 월마트로 향했다.
미국 재정착 난민의 경우, 미국 시민이 누리는 여러 사회복지 혜택을 다 누린다.
이를테면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지원되는 food stamp 같은 프로그램의 혜택도 받을 수 있다. 가구 수와 소득 수준에 따라 매월 food stamp 카드에 돈이 충전되면 그걸 가지고 마트에서 식재료를 살 수 있다.
난민이 미국에 오면 재정착을 도와주는 기관에서 보험과 food stamp 등을 신청해 주기 때문에 모두 카드는 받는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가구수나 소득 수준이 유동적이기 때문에 해당 프로그램의 지원자격이 된다는 것을 증명하는 방대한 서류를 정기적으로 보내야 하는데 영어는 차치하고 본인의 언어조차 읽고 쓰지 못하는 난민들에게 서류를 작성하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보통 그 서류를 작성하라고 우편으로 공지가 오는데 서류가 영어로 되어 있다 보니, 여러 다른 서류들에 묻히기 십상이다.
그러다 어느 날 장을 보러 가서 food stamp 카드가 먹통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거다. 영어를 하는 사람이라면 관련 기관에 전화를 해서 어찌 된 사정인지 알아보겠지만, 교육 수준도 낮고 영어도 서투른 사람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날도 그랬다.
장을 다 보고 카드로 결제하는데 문제가 생겼는지 결제가 되지 않았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그 난민분의 표정은 내내 밝았는데 그때 점원 앞에서 그분의 표정은 잘못을 저지르다 들킨 아이처럼 굳어있었다. 인터뷰의 통역을 도와주던 분이 중간에서 통역을 하고 결국 다른 방법으로 결제를 했다.
다음은 약국.
미국의 의료 시스템은 매우 복잡한데, 우선 응급 상황에 가는 urgent care 나 응급실(emergency room)을 제외하면 대부분 사전 예약을 해야 진료를 받을 수 있다.
그리고 진료를 본 다음에 바로 그곳에서 약을 받을 수 없고, 병원에서 자신의 집 근처나 자신이 지정한 약국으로 전산망을 통해 처방전을 보내면 그 약국으로 가서 약을 받는 시스템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처방전이 늦게 도착하거나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문제가 자주 발생한다.
장을 보고 월마트 안에 있는 약국에 가서 둘째 감기약을 찾는데 약이 없다고 했다. 아직까지 시스템상으로 들어온 것이 없다고.
당장 아이는 열이 나는데, 엄마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다행히 남편의 처방전 기록은 있어서 약을 받을 수 있었는데 진통제였다. 암의 통증을 진통제로 가라앉히며 일을 하는 모양이었다.
돌아가는 길에, 카드가 안 되는데 어떻게 할 거냐고 물으니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아이의 약을 못 받았는데 그건 어떻게 할 생각이냐고 물으니 그것도 어떻게 하는지 모르는 눈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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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민의 삶이야 어디서든 고달프지만, 아무런 준비 없이 전쟁과 분쟁으로, 여러 다른 이유로 갑작스레 뿌리 뽑혀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난민들의 삶은 너무도 힘겹다.
예전 시리아 난민분과 인터뷰를 하는데, 난민분이 말했다. 전쟁 전 시리아는 너무 아름다웠다고. 이렇게 분쟁이 일어날 줄 누가 알았겠냐고.
인터뷰를 하면서 느낀 건, 난민이 되고 싶어 난민이 된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
어느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건, 어떤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건 아이들에게 더 나은 미래를 물려주고 싶어 하는 부모들의 마음은 다 똑같다는 것.
모두 여러 역경과 고난,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뿌리를 내리고 하루하루를 살아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는 것.
한 난민 여성의 말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계속된다.
"because no matter what, life goes on. Good or bad, it will go on." (무슨 일이 있어도 인생은 계속 돼요. 좋든 나쁘든, 삶은 계속되죠.)
그 삶의 여정에서 나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무겁게 고민하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