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 나는 게임을 좋아했을까?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게임을 즐겁게 했던 기억보다는 몰래 하다 걸려 아버지께 금지당했던 기억이 더 선명하다. 초등학교 6학년 때는 플레이스테이션을 사달라고 졸랐다가 "다 큰 게 무슨 게임이냐"며 혼났던 일도 있었다. 게임기란 절대 우리 집 안으로 들어올 수 없는 금단의 물건, 내게 게임은 선악과 같았다. 금지될수록 더 원하게 되는 금단의 열매였다.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게임에 대한 갈망과 금기 사이에서 갈등하며 지냈다. 부모님의 눈을 피해 친구 집에서 몰래 게임을 즐기거나, 피시방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내 청소년기의 일상이 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상황은 변하기 마련. 내가 고등학생, 여동생이 중학생이 되었을 즈음,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어느 날 동생은 아버지께 닌텐도를 갖고 싶다며 조른 적이 있었다. 나는 "우리 집에 게임기는 절대 들어올 수 없겠지"라고 내심 비웃었다. 하지만 다음 날 집으로 배송된 닌텐도. 아마도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내가 게임과 게임기에 집착하고 수집하기 시작한 것은.
그 후로 나는 모든 종류의 게임기를 소유하게 되었다. 일을 하며 돈을 벌게 된 후 가장 먼저 산 것이 플레이스테이션이었다. 심지어 두 대를 사서 하나는 집에, 하나는 사무실에 두었다. 몇 달 후에는 엑스박스와 닌텐도도 구입했다. 실제로 갖고 놀지 않아도 신상 게임기가 나오면 줄을 서서라도 구매했고, 다 깨지 못한 게임이 줄줄이 쌓여있어도 신상 게임이나 할인 게임 알림이 뜨면 곧바로 결제 버튼을 눌러버렸다. 심지어 결혼식 전날에도 '블러드본'이라는 게임을 즐기며 시간을 보냈다. 그만큼 게임은 나에게 소중했고, 어쩌면 어린 시절의 결핍을 채우는 방법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내와 결혼한 후에도 내 게임 사랑은 식지 않았다. 아내가 출근하고 난 뒤나, 그녀가 잠든 후에도 나는 여전히 게임 콘트롤러를 놓지 못했다. 하지만 아내의 임신 소식과 함께, 나는 서서히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기 시작했다. 출산이 다가오면서 현실이 나를 덮쳤다. 나는 아직 아이를 키우는 것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하지만 게임을 완전히 그만두는 것은 쉽지 않았다. 결심을 하고 모든 게임기를 팔아버렸다가도, 당근마켓에 저렴한 중고 게임기가 올라오면 다시 사게 되곤 했다. 이런 악순환을 네 번이나 반복했다.
다행히 아내는 이해심이 많았다. 그녀는 나에게 게임을 그만두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랬다면 나는 반발심에 더 게임에 빠져들었을지도 모른다. 대신 그녀는 정말 효과적인 방법을 제안했다. 그녀의 아이디어는 간단했다. 내 게임 공간 주변에 아기의 사진을 붙여놓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별것 아닌 것처럼 보였지만, 이 작은 변화가 나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게임을 하다 문득 아기의 사진과 마주칠 때마다, 나는 잠시 멈추고 생각하게 되었다. 2시간 동안 게임을 하려던 계획이 1시간으로 줄어들고, 1시간 게임을 하려던 날에는 아예 하지 않기로 결심하곤 했다. 아기의 사진은 나에게 새로운 책임감과 의지를 불어넣어 주었다. 이 과정에서 나는 어린 시절부터 이어온 게임에 대한 집착과 마주하게 되었다. 그것은 단순한 취미가 아닌, 오랜 시간 동안 쌓아온 감정적 짐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이제는 아버지가 되어, 내 아이에게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아버지로서의 책임감이 어린 시절의 상처와 집착을 조금씩 치유하는 듯 하다.
물론 지금도 나는 완전히 게임을 그만두지는 않았다. 하지만 예전과는 확연히 다르다. 게임 시간은 크게 줄었고, 대신 아기를 위한 준비와 아내와의 시간이 늘어났다. 무엇보다 게임에 대한 나의 태도가 변했다. 더 이상 강박적으로 집착하지 않고, 건전한 취미로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이 경험을 통해 나는 변화란 항상 극단적일 필요는 없다는 것을 배웠다. 때로는 작은 동기부여, 그리고 자신의 내면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우리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 나의 게임 콘솔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지만, 이제 그 옆에는 우리 아기의 초음파 사진이 함께 있다. 그리고 그 사진은 내가 진정으로 소중히 여겨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매일 상기시켜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