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이상 소년이 아니니까
임신한 아내와 숲 속의 팬션에서 보낸 2박 3일의 워케이션은 모든 순간이 행복했다. 아내는 입덧이 심해 오직 '첵스초코'만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곳엔 시리얼에 타 먹을 우유가 없었다. 당연히 매점에 우유가 있을 줄 알았는데... 그래서 팬션의 모든 직원들이 총동원되어 우유를 찾아다녔고 결국 팬션 지배인님께서 근처 카페에서 받아다 주셨다. 지금 생각하니 그것도 참 재밌고 소중한 기억이다.
우리는 서울로 돌아오자마자 병원으로 향했다. 퇴실 당일 곧바로 산부인과 진료일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내가 진료를 받는 동안, 나는 갑자기 심리적인 압박에 압도되어 버렸다. 마치 목줄에 묶인 채 오토바이에 끌려가는 강아지가 된 느낌. 아내와 즐겁게 보내려고 휴가기간 업무를 조금 미뤘던 게 부담이 되었던 것 같다. 아내 앞에서 절대 보이기 싫은 그런 감정이 날 뒤덮어버렸다. 산부인과 일정이 촉박했던 것도 불안감을 가중시키는 데 한몫 했다.
나는 일상에 압도되고 해야할 것들에 쫒기는 감정이 무엇보다 싫다. 그런 감정이 들면 곧바로 얼굴에 티가 나기도 하고 그 모습을 본 아내가 내 불안함을 자기 탓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아내는 언제나 그렇게 느끼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아내가 죄책감을 갖게 되면, 나는 그것을 달래야 한다는 부담감에 다시 사로잡히게 되고, 점점 힘듦의 굴레는 커지게 된다. 물론 나도 아내를 달래야 한다는 부담을 느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안다. 아내도 나도 다른사람의 심정 변화에 시시각각 반응할 필요는 없지만... 감정이라는 것은 그리 쉽게 맘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병원을 다녀온 후, 마음을 회복하는 데 이틀이 걸렸다. 밝고 긍정적인 마음을 유지하고 싶었지만, 축 늘어진 마음은 뽀송해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시간은 밤 12시. 아내는 잠들어 있고, 나는 TV를 보며 손발톱을 깎고 있었다. 조용한 방 안에 손톱이 깎이는 소리만이 딱딱 울렸다. 그 순간, 안방에서 아내가 소리를 질렀다.
"빨리 도와줘!"
나는 놀라서 안방으로 달려갔다. 아내는 잠에서 깨지도 못한 채 괴로워하고 있었다. 아내는 종종 악몽을 꾼다. 하지만 이렇게 큰소리로 '도움'을 청한 적은 처음이었다. 나는 꿈 내용도 묻지 않고 얼른 아내를 안아주었다. 아내는 덜덜 떨다가 내 품에서 다시 잠들었다.
잠든 아내의 얼굴을 보니 마음이 싸하게 아려왔다. 아기를 가진 후 그녀는 일상의 모든 것에서 고군분투하는 것 같았다. 부른 배로 회사도 다니고 운동도 가고, 매주 도예와 글쓰기 작업도 꾸준히 이어가는 그녀는 꿈에서조차 편안할 수 없었다. 강하게만 보이던 아내가 동시에 한없이 여린 존재처럼 느껴졌다. 평소에는 강한 마음으로 모든 것을 견뎌내려 하지만, 그녀는 사실 쉽게 상처받고 두려워하는 아이 같았다. 그걸 알게되었다.
아내는 나의 돌봄과 도움이 필요하다.
그녀 앞에서 더이상 지친 모습을 보이지 않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했다. 나의 지친 모습은 그녀를 불안하게 만들 것 같다. 꿈속에서도 도움을 외치는 아내와 그녀가 품고 있는 사랑스러운 아기를 위해, 나는 더 강해져야 한다.
아내는 종종 내게 힘들면 자기에게 기대도 된다고 말하지만 절대 그러고싶지 않다. 누군가는 부부가 서로에게 기대는 것이 평등한 관계라 말하지만 그것이 항상 좋은 결과만을 가져온다고 믿지 않는다. 남편은 아내에게 기대는 사람이 아니다. 지치고 힘들때 사랑하는 아내에게 잠시 위로를 받을 수는 있겠지만 그게 아내에게 기대도 된다는 뜻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내가 감당해야 할 무게도 벅찬데 남편의 무게까지 감당하게 할 수는 없으니까.
꿈인 줄도 모르고 잠결에 내게 도와달라 외치는 아내와 그녀가 품고있는 사랑스런 아기를 위해 나는 더 강해져야지... 라고 오늘 또 다짐한다. 난 더이상 소년이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