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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한 Mar 13. 2018

사랑니 수술

스무살적에 빼려던 사랑니를 여지껏 방치하고 있다가 오늘에서야 기어코 뽑아버렸다. 사랑니를 뽑으러가는 지하철에서 사랑니에 대해서 검색해보았다. 사랑니는 17~25세라는 나이에 자라나는 치아인데, 못 이룬 첫사랑의 기억처럼 아프게 자리잡힌다고 해서 사랑니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기름기를 뺀 어원으로는 살 안에 박힌 이라고 해서 '살안니'였는데 그게 받침 탈락하면서 '사랑니'로 변형된 모양이다. 다른 말로는 지혜를 얻는 무렵에 생기는 이라고 해서 '지치(知齒)'라는 단어도 있던데, 중국에서 보다 보편적으로 쓰이는 말이라고 한다. 사랑에는 '깊게 생각하다'라는 옛뜻이 있다고도 적혀있다. '살 안'이라는 말도 약간의 상상력을 발휘해보면 굳이 받침 탈락이 아니어도 사랑과 아예 무관하지는 않아보인다.


중학생 때부터 사랑니를 발치한 친구들의 실감나는 공포담에 잔뜩 겁먹었더랜다. 간혹 온라인 게시물으로 올라오는 악명 높은 사랑니 수술 후기는 상상만으로도 커다란 고통과 혐오감이 들었고, 저게 나와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이길 그저 바라기만 했다. 불행하게도 사랑니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썩어갔고, 한 번씩 음식물을 잘못 씹을 때면 안면 근육을 멈춘 채 어금니와 사랑니 사이에 낀 방해꾼을 쫓아내야 했다. 어느날 문득 여자친구가 사랑니를 빼라고 얘기했을 때 무의식적으로 질색하며 거부했지만, 사랑니가 저려올 때마다 하나 둘씩 다짐이 쌓였고 더 이상 여자친구의 조언과 나의 다짐을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수술하기 전, 치과 의자 위에서는 실로 다양한 정신적 시도가 있었다. 진심으로 믿어본 적 없는 신들이 애타게 그리워져서 이름을 마음 속으로 불러보았다. 깨달음과 고통에 익숙한 그들의 얼굴과 그 누구보다도 많이 불렸을 그들의 이름을 나 또한 떠올려보는 데서 왠지 모르게 위안이 되었다. 종교는 괜히 있는 게 아니고, 그렇게도 많은 사람들이 괜히 종교를 믿는 게 아니다. 그 다음은 마취도 없이 살갗에 파고든 맹독을 발라내는 용맹한 관운장을 떠올렸다. 그리고 인류의 수많은 전쟁 속에서 힘없이 죽어나간 무수한 역사적 아무개들에게 심심한 애도를 보냈다. 고등학생 때 심취한 자기계발 서적의 자기 암시 요법을 얄팍하게 써먹었다. 군대에서 익혀본 불교 명상의 지침대로 심호흡을 하며 나를 지켜보았다.


수술중에는 말도 안 되는 상상으로 감촉을 치환시켰다. 사랑니를 갈고 있는 이 톱날을 달의 표면을 뚫는 우주공학적 기계로 상상했고, 잇몸에서 벌어지는 진동을 달 내부에서 벌어지는 격동적인 지진이라고 상상했다. 우주는 지금 고통받고 있다. 달에서 목성으로, 목성을 돌고 있는 어느 위성으로 위치를 옮겨가며 전우주적인 고통을 실감했다. 맹렬히 폭발하는 초신성까지 떠올랐다. 마취를 해서 감각은 무뎌졌지만 뿌리가 닿아있는 곳에는 어떤 본질적인 고통이 뚜렷하게 담겨있었다. 그 고통은 잠시 맹점 속에 가려져 있는 그대로 느끼지 못하겠지만(상상만으로 몸서리치게 끔찍하지만) 분명한 실체로서 존재하고 있었다. 그것에 경계심을 담아 본격적으로 응시하려는 순간 수술은 갑작스레 끝마쳤다. 수술은 예상보다 고통스럽지 않았다. 그동안 느낀 공포감이 무안할 정도로 아무것도 아니었다. 집에 돌아와 마취가 풀리고도 별 다른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사랑을 알 무렵에 자라고, 사랑을 어느정도 해 본 나이에 썩었고, 애써 무시하다가 결국에 뽑아버린 사랑니에 대해 생각해본다. 내가 뽑은 사랑니에는 지나치게 부풀려진 공포의 추억과 환상이 게걸스럽게 담겨져있다. 사랑니는 의사의 냉정하고 정교한 손짓으로 여러 조각으로 깨져서 하나씩 하나씩 잇몸을 빠져나갔다. 잇몸에 새살이 돋아나면 사랑니의 빈자리를 한동안 어루만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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