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군 훈련과 군대 단상

by 은한

어제는 예비군을 다녀왔다. 멍하니 앉아있는 시간에 차라리 잘 졸기 위해 집에서 나초와 맥주를 한 캔 마시고 왔는데 꽤 효과가 좋았다. 그래도 시간이 남자(군대에서는 시간이 이상하게 흐른다) 머릿속에서 육십갑자 가로10x세로6 순서를 순으로, 세로로, 대각선으로 떠올리면서 시간을 보냈다. 처음에는 속도가 더뎠는데 이리저리 굴려보니깐 어느 정도 패턴이 인식되면서 육십갑자의 위치가 익혀졌다. 훈련이랍시고 동네를 한 바퀴 돌 때는 잠시나마 겪은 무참한 통제에서 잠시나마 해방감이 느껴졌다. 동네를 걸으면서 홍대의 개성 넘치는 가게들의 네이밍, 간판, 내부를 들여다보며 흥미를 느꼈다. 그러다가 내가 군대에 갔던 시기의 세운을 떠올리며 군생활을 돌이켜봤다.

2012 壬辰년, 2013 癸巳년. 마침 壬子 물바다의 인성 대운으로 바뀐 시기여서 훈련소에서조차 손에서 책을 떼지 못했다. 5분,10분 남을 때마다 짬짬히 책을 6권 읽어댔고, 자대에 가서도 계속 독서를 이어가 말년에 기록해본 결과 전역 전까지 총 129권을 읽었다. 12,13년도도 천간에 인성이니 책을 놓을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12년 지지로는 인사신 삼형살이 가중되고, 13년 지지는 진사 천라지망에 묶이는 시기니 그 당시의 구속감, 갑갑함이 이해된다. 삼형살을 가지고 군대에 가면 아무 사건 없이 전역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군대에서 생긴 크고 작은 사건 사고가 떠오를 때면 아직도 치욕감, 부끄러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군대는 좋든 싫든 재밌든 지루하든 21개월이란 시간 동안 꽁꽁 얽매여있어야 하는 공간이고, 나는 그게 싫고 지루했다. 아직도 군복을 입을 때 느껴지는 착복감만으로도 그때의 누적된 감정이 은연중에 다시 불려와 끈질기게 따라붙는다. 입도 떼기 싫고 발도 떼기 싫어진다.

군대야말로 강제적인 집행권을 가진 편관스러운 조직이다. 편관을 용신으로 쓰는 양인격이야 군대에서도 잘 적응하고, 직업 군인까지 하는 양인격 후임도 있었다. 나처럼 편관을 살인상생-인성으로 녹여삼켜야하는 사람은 그 통제감에 치를 떨었을 것이고, 팔자에 편관이 중중한 사람은 군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관심병사가 될 것이고, 식신제살이 원진,귀문과 엮여서 발현되면 탈영, 자살로도 이어질 것 같다. 군대라는 국가기관의 편관을 도대체 어떻게 식신으로 해결할 꺼란 말인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전투화를 신어서인지 그새 발바닥이 쓰렸고 물집이라도 잡힐 것 같았다. 어떤 혐오감은 곧 바로 신체적인 증상으로 드러나기도 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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